화성서 온 대의원회·금성서 온 집행부, 그들의 의료일원화

발행날짜: 2016-01-11 05:01:59
  • 50년간 시도·실패로 점철…의협 침묵이 역풍 도화선

|기획| 끝나도 끝나지 않은 의료일원화 논란
2015년 하반기에 재등장한 의료일원화가 의사 회원, 대의원회뿐 아니라 이해당사자인 한의계의 반대라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혔다. 메디칼타임즈는 일원화 추진의 당사자와 일원화의 직접 영향권에 놓인 의대생-한의대생을 만나 이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상> 화성서 온 대의원회, 금성서 온 집행부, 그들의 방정식
<하> 의대생-한의대생이 말하는 의료일원화
역사는 반복되는가. 역사의 불가역성이라는 말이 의료일원화 논의에서 만큼은 통하지 않는 것 같다. 무려 50년간 의료일원화는 시도와 실패라는 굴레로 반복됐기 때문이다.

시도하는 자와 반대하는 자의 싸움으로 귀결되는 싸움. 이번에도 승리는 반대하는 자의 손에 넘어가려 한다. 의사 회원들의 반응 뿐 아니라 일원화의 이해당사자인 한의계 역시 '일원화 반대'라는 기치 아래 합종연횡하고 있는 상황.

이쯤되면 시도하는 자와 반대하는 자의 당위성에 귀를 기울여 봐야 한다. 지치지도 않고 50년간 끌어온 싸움, 앞으로도 반복될 의료일원화 전쟁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화성에서 온 대의원회, 금성에서 온 집행부, 그들의 방정식

지난 11월 의료일원화를 들고 나온 의협은 나름 '비빌 언덕'이 있었다. 의협 집행부는 '대의원회의 뜻'을 받들어 의료일원화를 추진해왔다는 입장을 들었다.

추무진 회장의 말을 들어보자. "의료일원화는 의료계의 오래된 숙원사업으로, 최근 십수년간 대의원총회 수임사항이며 의협의 막중한 과제이기도 하다."

그럴싸했지만 대의원회는 외면했다. 대의원회는 "회원들의 정서와 어긋난, 내부적인 공론화도 거치지 않은, 내부적인 분란을 초래한다"며 "오히려 복지부와 한의사들에게 이용당하는 협의체를 통한 의료일원화 논의는 즉각 중지돼야 한다"고 되레 집행부를 압박했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

대의원회 운영위 관계자는 "과거부터 대의원총회 수임사항으로 의료일원화가 의결된 것은 맞지만 대의원회의 일원화 방향은 현 의협 집행부의 방향과 달랐다"며 "누구도 기존 한의사에게 의사 면허를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한 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의원총회의 의료일원화 관련 논의는 2010년 의료일원화 용어 등장 이후 5년간 구체화된 부분이 없다. 그간 논의는 주로 ▲한의사 대상 강의 금지 ▲한방 부작용 신고센터 설립 ▲한의사 무면허 의료행위 근절 ▲한의사 현대 의료기기 사용 금지 추진 등에 집중된다.

쉽게 말해 대의원회가 정의한 의료일원화의 사전적 의미란 다름 아닌 '한의사 말살'을 뜻한다.

반면 의협 집행부가 내놓은 일원화 원칙은 의대와 한의대 교육과정 통합뿐 아니라 의사-한의사 면허 통합이 포함된다.

문제의 시발점은 바로 의사-한의사 면허 통합 부분. 의료일원화를 한의사 말살로 해석한 대의원회는 이 대목에서 뒷목을 잡았다. 대의원회로서는 면허 통합을 "의협 집행부가 나서서 의사와 한의사를 동급으로 만들겠다"는 주장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의원회 관계자는 "일원화 방식이 구체화된 2009년 제61차 대의원총회만 봐도 수임요지에 분명히 기존 한의사에 대한 의사면허 부여 금지가 나타나 있다"며 "이는 2010년에도 똑같이 유지된다"고 강조했다.

흥미로운 점은 추무진 회장 역시 에둘러 표현했을 뿐 의료일원화를 '한의학의 말살'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다시 한번 추무진 회장의 말을 들어보자. "의료일원화가 되면 한의사 명칭이 사라지게 된다. 의료일원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의사를 면허제도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대의원회의 수임 사항, 집행부가 왜곡했나, 오해했나?

대의원회의 의중을 그대로 파악하고 있으면서 왜 집행부는 면허 통합을 들고 나왔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총론과 각론의 차이다.

집행부 관계자는 "대의원회가 아무리 한의학의 말살을 말한다고 해도 이는 추상적인 범주에 불과하다"며 "이를 실행해야 하는 집행부의 입장에서는 다른 층위의 이야기가 펼쳐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제도적으로, 정치적으로 의료일원화라는 과업을 추진하는 데에는 실행 방안이라는 구체적인 장치들이 필요하다"며 "의료일원화에 면허 통합이 없이 사실상 일원화하는 방안이 없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그는 "대의원회가 집행부에 의료일원화를 주문했지만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하라는 구체적인 제안은 없었다"며 "따라서 집행부가 나름의 방법론을 구체화시키는 것은 집행부의 고유 권한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나름 기존 면허 보유자에게는 현 면허제도를 유지한다는 '안전장치'를 마련해뒀음에도 순식간에 한의사에게 면허를 부여하려고 한 역적으로 몰린 상황은 억울하다는 것. 대의원회와 집행부의 목표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은 교육일원화 대목에서 확연해진다.

추무진 의협 회장
집행부는 의료일원화의 방안으로 의대와 한의대를 통합해 교육하는 교육일원화를 들고나왔다. 행간에 삭제된 의미는 이렇다. 사실상 일본의 일원화 모델처럼 교육일원화를 통해 의학 내에서 한의학을 흡수통합하겠다는 것이다.

추무진 회장은 "현재 한의사 수는 2만 2760명이고 매해 800여명씩 새로 배출돼 10년 후면 3만명을 넘어선다"며 "한의사 수 증가가 보건의료체제 전반에 여파가 미칠 우려가 크다"고 일원화를 통한 한의사의 자연소멸을 에둘러 강조했다.

의협은 일원화의 당사자인 한의사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흡수통합하겠다는 행간의 의미를 짐짓 모른 척했지만 한의사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한의사협회에 이어 한국한의과대학학장협의회 학장 및 원장 일동은 "의사협회가 의대-한의대 교육과정과 의사-한의사 면허를 통합한다는 황당무계한 내용을 선언했다"며 "추무진 회장은 의료일원화는 결국 한의사를 없애는 것이 목표"라고 비난의 날을 세웠다.

집행부의 원죄는 "Wrong time, Wrong place"

이쯤되면 황당해진다. 한의사들만 반대할 것 같은데 되레 의사들도 반대한다. 집행부에 오더를 내린 대의원회마저 "No"를 외친다. 집행부만 머쓱한 상황이다.

"회원들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집행부의 볼멘 목소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까. 억울하다는 집행부에도 원죄는 있다. 바로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서 의료일원화를 꺼내들었다는 것이다. 바로 의-한 정책협의체에서 뜬금없는 일원화라는 제안이 나온 것이다.

집행부가 순수하게 의료일원화라는 목적만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굳이 '지금' 의료일원화를 추진할 이유가 없다. 다시 말해 집행부는 한방 현대의료기기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의료일원화라는 방패막이를 들고 나왔다는 것이 더 합리적인 해석이다. 한방 현대의료기기의 허용 범위를 논의하기 위한 의-한 정책협의체에서 의료일원화 논의가 나온 것도 이런 의혹을 더욱 부채질한다.

더 큰 문제는 집행부의 상황 오독. 집행부는 의료일원화 주장으로 한방 현대의료기기 논의를 효과적으로 막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다수의 판단은 다르다. 오히려 일원화 주장이 한방 현대의료기기 허용에 힘을 실어준다는 분석이다.

최성호 개원내과의사회 부회장의 말을 들어보자. "복지부가 의협과 한의협이 함께 참여하는 정책협의체를 운용하려 한 이유는 간단하다. 의협이 참여하지 않은 정책협의체를 통해 복지부가 한의사 사용 가능 현대 의료기기 리스트를 발표하기란 심적인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복지부로서는 의협이 참여해서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에 합의했다는 핑계거리가 생겼다."

이는 복지부가 의협에 보낸 중재안에 그 의중이 잘 드러난다. 의료일원화를 하자는 의협에게 복지부는 교차진료 확대를 제안했다. 그 행간에는 "어차피 의료일원화를 주장했으니 그럴 바에야 미리 교차진료를 해보는 게 어때"라는 말이 생략된 셈이다.

의료혁신투쟁위원회는 의협 회관에서 화형식이라는 극단의 방법으로 회원들의 의료일원화 반대 여론을 표출한 바 있다.
추무진 회장, 그 침묵의 수사학(修辭學)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2015년 후반기에 등장한 의료일원화라는 단어는 또다시 과거형 유물이 될 전망이다. 여론에서 확인한 대로 일원화를 추진할 동력도 계기도 없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추무진 회장, 그 특유의 침묵이 이번에도 논란에 불을 붙였다는 점이다. 비대위와의 갈등, 35번 메르스 동료 의사 관련 대국민 사과, 의료정책연구실 인사 논란, 대의원회 운영위 규정 논란 등 매번 터지는 사건마다 침묵으로 일관한 자세가 이번에도 재현됐다.

왜 지금 갑자기 의료일원화인가에 대한 해명은 고사하고, 대한의사협회의 의료일원화 토론회에서 제기된 보수교육 후 한의사에게 의사자격을 주는 방안을 누가 제안한 것인지 첨예한 논란을 일으킬 때에도 추무진 회장으로부터 속시원한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의료-한방의료간 교차 진료 단계적 확대,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확대가 포함된 복지부의 중재안이 유출되고 나서야 의협은 마지못해 "회원들이 실제 합의해 준 것으로 오해할까봐 이런 내용을 함구하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심지어는 대의원회 역시 복지부의 중재안 내용을 모르고 있었다.

불신임까지 거론되서야 추무진 회장은 기자회견을 자처했지만 끝내 "의료일원화를 중단하겠다"거나 "의-한 정책협의체를 탈퇴하겠다"는 속시원한 말은 결국 나오지 않았다.

회원들 사이에서 퍼진 26일 복지부의 한방 현대의료기기 리스트 확정 발표설이 30일 발표설로 변경되는 사이에도 의협의 해명이나 대언론 대응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야말로 추무진 회장표 '침묵의 수사학'인 셈.

너무 멀리 가버린 의료일원화 논의는 결국 집행부의 묘수에서 계륵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일원화 카드를 버리기에는 레임덕이라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고, 일원화를 강행하기에는 추무진표 리더십이 아쉬운 상황이다.

한의사협회 김필건 회장은 12일 한방 현대의료기기 사용과 관련해 중대 선언을 포함한 기자회견을 연다고 선전포고를 놓은 상황. 공세를 방어해야 할 추무진 회장은 과연 어떤 대응책을 꺼내들까.

의사 회원들이 정부나 한의계에 대한 공격보다 현 의협 집행부를 향해 공격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점은 곱씹을 만 하다.

잠잠해 질 때까지 버틴다는 침묵의 수사학의 약발이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됐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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