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의사의 좌충우돌 생존기…박성우의 '인턴노트'[47]
보호자를 달래는 과
웬만하면 마주치기 싫은 환자들이 있다. 같은 일을 해도 몇 배로 힘들고 시간도 많이 들고 협조가 안 되는 환자들이다. 첫 달, 과가 바뀔 때 조심해야 한다고 병동 간호사들이 귀뜸을 해준다.
"선생님 32호실 환자 많이 예민해요.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인턴의 푸념거리 중 '예민한'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환자가 귀족 지위라도 되는지 간호사를 시녀처럼 막 대하는 경우도 겪었다. 병원비를 냈으니 그 비용만큼 의료진을 괴롭혀야 겠다고 다짐한 듯한 환자도 보았다.
그런 환자들은 의료진에 대한 호칭부터 다르다. 간호사를 하대하는 것은 물론 여자 인턴에게는 '아가씨'라고 부른다. 장기 입원으로 병원 생리를 이해한 환자들에게는 교수님만 의사였다. 인턴과 레지던트는 교수님 밑에 딸린 사람이지 의사라고 여기지 않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다음으로는 소아과 환자군도 까다롭다.
사실 소아과 환아들은 울거나 보채는 것 이외에는 다루기 힘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아과 보호자들을 상대하는 것이 불편하다. 소아과 인수인계에 환아 부모를 조심하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전해지는 것은 괜한 말이 아니다.
부모의 마음인지라 자기 자식 병에 대해서는 모든 정보를 흡수하겠다는 생각으로 미리 접하고 온다. 몇몇 부모들에게 인턴은 적어도 자신들보다 이 병에 대해서는 지식이 없는 사람이다. 종합병원처럼 희귀 질환이나 중한 질환의 환아들이 많은 경우 그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대개 인터넷을 통해 질환을 접하다 보니 최근 의학 소견으로 업데이트되지 않은 정보들이 많다. 부모 자신들이 왜곡시킨 정보들도 환아 보호자들 사이에 퍼질 때도 있다. 의료진을 불신하거나 업신여길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병의 특성은 이러이러하다"고 설명하면 "우리가 찾아본 것은 이러이러하던데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런 것은 둘째 치더라도 채혈을 해야 하는 경우 반발은 더욱 심하다.
생후 몇 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환아들은 혈관 자체가 작고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채혈이 어렵다. 그래서 간혹 목에 있는 정맥을 이용하는데 아기 목에서 피를 뽑는다고 부모들의 불평불만이 심하다. 하지만 이 방법은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채혈이 가능한 만큼 생각보다 자주 이용되는 채혈법이다.
어른들도 피를 뽑는다고 하면 20대 장정들도 눈을 질끈 감는데 아이들이 울면 채혈하는 입장에서 마음이 안쓰럽다. 어려운 채혈은 부모들이 협조할수록 더 편하게 뽑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간혹 "우리 피 검사 한 번만 할게" 하면 "저는 피 검사해도 안 울어요"라면서 의젓하게 조그마한 팔을 내놓는 아이들을 볼 때가 있다. 안 그래도 채혈해서 미안한데 고마운 마음이 든다.
환아 부모 중에서도 "선생님, 아기들 채혈 힘드실 텐데 마음 편하게 하세요. 한두 번 실패하는 거야 뭐. 나중에 다 아무는데요"라면서 채혈하기 전에 웃으면서 말하는 보호자도 있다. 인턴들 표현대로 '천사표 보호자'가 된다.
곁에서 한 번만에 안 되면 화낼 작정으로 노려보고 있는 부모들, 애기 많이 보채고 우니깐 잠시 치료실 밖에서 대기하시고 끝나면 불러드린다고 해도 기어코 아기 옆에서 봐야겠다며 버티는 보호자도 있다.
그런 경우 검사 분위기 자체를 어색하고 어렵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검사가 수월하게 잘 끝나도 의료진과 보호자의 관계는 찝찝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에는 그래도 부모 마음이 그런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도를 넘어 의료진의 관계를 교묘하게 이용해 라뽀를 엉망으로 만드는 보호자들이 있다.
예를 들어 증상에 대해 주치의에게는 설명하지 않고 나중에 회진돌 때 교수님께 직접 이야기하는 경우가 그렇다. 환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돌보는 간호사에게는 함부로 대하면서 의사에게는 예의를 갖추는 모습이다.
같은 팀원으로 일하는 의료진인데 그 안에 있는 서열을 악랄하게 이용하여 불신만 증폭시킨다. 소속이 없는 인턴을 하대하는 경우는 같은 편을 들어줄 사람이 없어 서럽기만 하다.
선진국의 식당과 달리 한국 식당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모습들이 있다.
식당에서 아이들이 탁자 사이를 뛰어다니고 시끄럽게 소동피우는 모습이다. 선진국 식당에서는 아이가 앉는 좌석을 따로 만들어주거나 식당 안에 마련된 놀이방에서만 놀게 한다. 혹여 아이들이 소란을 피우면 엄하게 꾸짖는다.
독일의 한 식당에서는 아이가 식당에서 뛰어다녔다고 뺨을 때리며 야단치는 광경을 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예의 없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다른 손님들이 뭐라고 하면 부모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당신이 뭔데 남의 애한테 이래라저래라야" 하며 싸움이 나기 일쑤다. 아이들이 버릇없어지는 이유는 버릇없이 키우는 모자란 부모들의 문제가 더 큰 것은 아닐까.
병원에도 그런 환아 보호자들이 늘 있다. 같은 병동에 입원한 환아나 보호자들은 신경 쓰지 않고 병동이 떠나가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난동을 피운다. 의료진의 설명을 경청하기는커녕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에만 집착해서는 그대로 안 해준다고 소리친다. 의료진이 나태하다느니 표준적인 방법이 아니니 성을 내는 모습을 보면 식당에서 자기 자식에게 꾸중한다고 성 내는 부모들이 떠오른다.
마찬가지로 의료진이 위엄을 가지고 대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큰 소동 나는 것이 두려워 정당한 방법에 대해서도 사과를 해야 할 때, 의사와 환자 관계가 무참히 무너진다. 성을 내는 보호자들은 역시 큰 소리를 쳐야 일이 제대로 된다며 기고만장이다.
언론에서 '응급실에서 의료진에게 폭언 및 폭행'이라는 신문 기사 속 이야기들이 종합병원이라고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의료진에게 까다롭게 굴며 폭언을 일삼는 환자나 보호자를 마주치지 않은 인턴이 없었다.
소아과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 또한 인턴 시작 후 처음으로 이런 유형의 보호자와 마주쳤다. 소아과 병동으로 옮겨와서 처음 드레싱하는 환아였다. 환아와 보호자도 미리 만나보고 필요한 드레싱 물품이 무엇인지 살필 겸 먼저 병실로 향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챙겨왔다면서 위생관념 없이 손도 안 씻고 장갑도 챙기지 않았다고 버럭 성을 내는데 설명을 해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나는 드레싱할 때 환자 앞에서 물품들을 늘어놓기보다 필요한 물품들만 챙겨서 최대한 깔끔하고 낭비 없이 처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병실에 들어가기 전 입구에 놓인 알콜로 손 씻는 것은 당연지사. 이미 손을 씻고 왔음에도 어떤 물품이 필요한지 확인하러 왔다고 설명해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
결국 절차상의 문제가 없었음에도 병동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선생님들과 간호사들의 부탁으로 내가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알고 보니 바로 전 인턴에게서 조심하라고 인수인계 받았던 블랙리스트의 보호자였다. 인턴들 나름의 블랙리스트가 틀리지 않다는 것을 불쾌하게 체험했다.
종합병원 소아과 병동에는 치료가 여의치 않은 중한 질환의 환아들이 많이 입원한다. 소아과에서 일하다고 하면 아기들 보기 귀엽겠다는 말을 듣지만 안타까운 실상을 많이 마주한다.
서울에서 경남 진주까지 선천적으로 몸 속 장기의 좌우가 바뀐 환아의 트랜스퍼를 다녀왔다. 기형에 따른 영향으로 간이식을 받아야 했지만 공여자와 환아의 상태가 여의치 않아 수술을 포기했다. 진주까지 가는 3시간 반 거리의 트랜스퍼 여정 동안 보호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갔다.
늘 그렇듯 소아과 환아의 어머니들은 자기 탓에 자식이 고생한다는 그늘이 마음 한켠에 있다. 자신이 잘못돼서, 임신 도중 관리를 잘못해서 자식을 힘들게 한다는 죄책감이다. 그 마음의 그늘에 대해 희망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3시간 반을 보냈다.
트랜스퍼 가능 동안 환자의 상태가 안정적이면 같이 동행하는 인턴은 그나마 쪽잠을 잘 수도 있다. 비록 구조차 안에서 쪼그려 앉는 불편한 귀향길이었지만 아픈 자식을 둔 어머니의 마음 속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앞으로 한 달, 또 어떻게 험난한 소아과 환아 사이를 꾸역꾸역 헤쳐나갈 것인가. 가슴 아픈 사연들과 의젓한 환아들 사이에서 의사로서 인간으로서 진솔한 경험을 많이 할 것 같다.
[48]편으로 이어집니다.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웬만하면 마주치기 싫은 환자들이 있다. 같은 일을 해도 몇 배로 힘들고 시간도 많이 들고 협조가 안 되는 환자들이다. 첫 달, 과가 바뀔 때 조심해야 한다고 병동 간호사들이 귀뜸을 해준다.
"선생님 32호실 환자 많이 예민해요.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인턴의 푸념거리 중 '예민한'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환자가 귀족 지위라도 되는지 간호사를 시녀처럼 막 대하는 경우도 겪었다. 병원비를 냈으니 그 비용만큼 의료진을 괴롭혀야 겠다고 다짐한 듯한 환자도 보았다.
그런 환자들은 의료진에 대한 호칭부터 다르다. 간호사를 하대하는 것은 물론 여자 인턴에게는 '아가씨'라고 부른다. 장기 입원으로 병원 생리를 이해한 환자들에게는 교수님만 의사였다. 인턴과 레지던트는 교수님 밑에 딸린 사람이지 의사라고 여기지 않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다음으로는 소아과 환자군도 까다롭다.
사실 소아과 환아들은 울거나 보채는 것 이외에는 다루기 힘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아과 보호자들을 상대하는 것이 불편하다. 소아과 인수인계에 환아 부모를 조심하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전해지는 것은 괜한 말이 아니다.
부모의 마음인지라 자기 자식 병에 대해서는 모든 정보를 흡수하겠다는 생각으로 미리 접하고 온다. 몇몇 부모들에게 인턴은 적어도 자신들보다 이 병에 대해서는 지식이 없는 사람이다. 종합병원처럼 희귀 질환이나 중한 질환의 환아들이 많은 경우 그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대개 인터넷을 통해 질환을 접하다 보니 최근 의학 소견으로 업데이트되지 않은 정보들이 많다. 부모 자신들이 왜곡시킨 정보들도 환아 보호자들 사이에 퍼질 때도 있다. 의료진을 불신하거나 업신여길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병의 특성은 이러이러하다"고 설명하면 "우리가 찾아본 것은 이러이러하던데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런 것은 둘째 치더라도 채혈을 해야 하는 경우 반발은 더욱 심하다.
생후 몇 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환아들은 혈관 자체가 작고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채혈이 어렵다. 그래서 간혹 목에 있는 정맥을 이용하는데 아기 목에서 피를 뽑는다고 부모들의 불평불만이 심하다. 하지만 이 방법은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채혈이 가능한 만큼 생각보다 자주 이용되는 채혈법이다.
어른들도 피를 뽑는다고 하면 20대 장정들도 눈을 질끈 감는데 아이들이 울면 채혈하는 입장에서 마음이 안쓰럽다. 어려운 채혈은 부모들이 협조할수록 더 편하게 뽑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간혹 "우리 피 검사 한 번만 할게" 하면 "저는 피 검사해도 안 울어요"라면서 의젓하게 조그마한 팔을 내놓는 아이들을 볼 때가 있다. 안 그래도 채혈해서 미안한데 고마운 마음이 든다.
환아 부모 중에서도 "선생님, 아기들 채혈 힘드실 텐데 마음 편하게 하세요. 한두 번 실패하는 거야 뭐. 나중에 다 아무는데요"라면서 채혈하기 전에 웃으면서 말하는 보호자도 있다. 인턴들 표현대로 '천사표 보호자'가 된다.
곁에서 한 번만에 안 되면 화낼 작정으로 노려보고 있는 부모들, 애기 많이 보채고 우니깐 잠시 치료실 밖에서 대기하시고 끝나면 불러드린다고 해도 기어코 아기 옆에서 봐야겠다며 버티는 보호자도 있다.
그런 경우 검사 분위기 자체를 어색하고 어렵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검사가 수월하게 잘 끝나도 의료진과 보호자의 관계는 찝찝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에는 그래도 부모 마음이 그런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도를 넘어 의료진의 관계를 교묘하게 이용해 라뽀를 엉망으로 만드는 보호자들이 있다.
예를 들어 증상에 대해 주치의에게는 설명하지 않고 나중에 회진돌 때 교수님께 직접 이야기하는 경우가 그렇다. 환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돌보는 간호사에게는 함부로 대하면서 의사에게는 예의를 갖추는 모습이다.
같은 팀원으로 일하는 의료진인데 그 안에 있는 서열을 악랄하게 이용하여 불신만 증폭시킨다. 소속이 없는 인턴을 하대하는 경우는 같은 편을 들어줄 사람이 없어 서럽기만 하다.
선진국의 식당과 달리 한국 식당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모습들이 있다.
식당에서 아이들이 탁자 사이를 뛰어다니고 시끄럽게 소동피우는 모습이다. 선진국 식당에서는 아이가 앉는 좌석을 따로 만들어주거나 식당 안에 마련된 놀이방에서만 놀게 한다. 혹여 아이들이 소란을 피우면 엄하게 꾸짖는다.
독일의 한 식당에서는 아이가 식당에서 뛰어다녔다고 뺨을 때리며 야단치는 광경을 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예의 없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다른 손님들이 뭐라고 하면 부모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당신이 뭔데 남의 애한테 이래라저래라야" 하며 싸움이 나기 일쑤다. 아이들이 버릇없어지는 이유는 버릇없이 키우는 모자란 부모들의 문제가 더 큰 것은 아닐까.
병원에도 그런 환아 보호자들이 늘 있다. 같은 병동에 입원한 환아나 보호자들은 신경 쓰지 않고 병동이 떠나가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난동을 피운다. 의료진의 설명을 경청하기는커녕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에만 집착해서는 그대로 안 해준다고 소리친다. 의료진이 나태하다느니 표준적인 방법이 아니니 성을 내는 모습을 보면 식당에서 자기 자식에게 꾸중한다고 성 내는 부모들이 떠오른다.
마찬가지로 의료진이 위엄을 가지고 대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큰 소동 나는 것이 두려워 정당한 방법에 대해서도 사과를 해야 할 때, 의사와 환자 관계가 무참히 무너진다. 성을 내는 보호자들은 역시 큰 소리를 쳐야 일이 제대로 된다며 기고만장이다.
언론에서 '응급실에서 의료진에게 폭언 및 폭행'이라는 신문 기사 속 이야기들이 종합병원이라고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의료진에게 까다롭게 굴며 폭언을 일삼는 환자나 보호자를 마주치지 않은 인턴이 없었다.
소아과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 또한 인턴 시작 후 처음으로 이런 유형의 보호자와 마주쳤다. 소아과 병동으로 옮겨와서 처음 드레싱하는 환아였다. 환아와 보호자도 미리 만나보고 필요한 드레싱 물품이 무엇인지 살필 겸 먼저 병실로 향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챙겨왔다면서 위생관념 없이 손도 안 씻고 장갑도 챙기지 않았다고 버럭 성을 내는데 설명을 해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나는 드레싱할 때 환자 앞에서 물품들을 늘어놓기보다 필요한 물품들만 챙겨서 최대한 깔끔하고 낭비 없이 처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병실에 들어가기 전 입구에 놓인 알콜로 손 씻는 것은 당연지사. 이미 손을 씻고 왔음에도 어떤 물품이 필요한지 확인하러 왔다고 설명해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
결국 절차상의 문제가 없었음에도 병동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선생님들과 간호사들의 부탁으로 내가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알고 보니 바로 전 인턴에게서 조심하라고 인수인계 받았던 블랙리스트의 보호자였다. 인턴들 나름의 블랙리스트가 틀리지 않다는 것을 불쾌하게 체험했다.
종합병원 소아과 병동에는 치료가 여의치 않은 중한 질환의 환아들이 많이 입원한다. 소아과에서 일하다고 하면 아기들 보기 귀엽겠다는 말을 듣지만 안타까운 실상을 많이 마주한다.
서울에서 경남 진주까지 선천적으로 몸 속 장기의 좌우가 바뀐 환아의 트랜스퍼를 다녀왔다. 기형에 따른 영향으로 간이식을 받아야 했지만 공여자와 환아의 상태가 여의치 않아 수술을 포기했다. 진주까지 가는 3시간 반 거리의 트랜스퍼 여정 동안 보호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갔다.
늘 그렇듯 소아과 환아의 어머니들은 자기 탓에 자식이 고생한다는 그늘이 마음 한켠에 있다. 자신이 잘못돼서, 임신 도중 관리를 잘못해서 자식을 힘들게 한다는 죄책감이다. 그 마음의 그늘에 대해 희망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3시간 반을 보냈다.
트랜스퍼 가능 동안 환자의 상태가 안정적이면 같이 동행하는 인턴은 그나마 쪽잠을 잘 수도 있다. 비록 구조차 안에서 쪼그려 앉는 불편한 귀향길이었지만 아픈 자식을 둔 어머니의 마음 속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앞으로 한 달, 또 어떻게 험난한 소아과 환아 사이를 꾸역꾸역 헤쳐나갈 것인가. 가슴 아픈 사연들과 의젓한 환아들 사이에서 의사로서 인간으로서 진솔한 경험을 많이 할 것 같다.
[48]편으로 이어집니다.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