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뉴스2기 필진 한림의대 의학과 1학년 이영민
거룩한 잉카의 땅, 페루 5부- 쿠즈코 편
밤새도록 버스 안에서 숨이 막히는 기이한 경험을 하면서 올라와서인지, 해발 3000m에서 맞이하는 쿠즈코의 아침은 하늘이 노랗게 보이는 어지러움과 함께 몽롱해 보였다. 장장 12시간에 달하는 장거리 버스의 경험이 처음이라서 그런지 온몸이 쑤셔 왔고, 잠시 올려다 본 하늘은 마치 손에 닿을 듯 말듯 가까이 있었다. 주변을 보면 이곳이 한 때 스페인의 식민지였다는 것을 보여주듯, 이베리아 반도 풍 특유의 건축물들이 즐비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멕시코와 콜롬비아, 그리고 페루의 여러 도시들을 다니면서 특징적으로 공통적인 점을 발견하였는데, 바로 모든 도시의 중앙에는 대광장과 그 옆에 대성당이 배열되어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스페인이 이 지역을 식민 지배하고 있던 당시 가톨릭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도시의 구조를 천편일률적으로 획일화시킨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쿠즈코도 예외 없이 시내의 한가운데에 광활한 광장과 그 옆에 대성당이 위치해 있었다. 해발이 높은 지역에 위치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건물 규모는 리마에 있는 그것보다 더 작았고, 그런 만큼 리마와는 대비되게 아기자기한 면모를 쿠즈코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여행자들이 쿠즈코를 가는 이유는 그 곳이 목적이어서가 아니라 수단이기 때문이 대부분이다. 바로 잉카 문명의 최대 유적지인 마추피추를 방문하기 위해서이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어서 쿠즈코에서 도시 관광보다는 마추피추를 가기 위한 교통 수단을 알아 보는데에 시간을 더 투자했다. 인터넷으로 마추피추 전초 기지격 마을인 아구아스 깔리엔떼스(Aguas Calientes)까지 가는 기차표가 대략 수백 불하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었는데, 실제로 현지에서 알아본 기차표 가격도 인터넷의 가격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편도로 약 1시간 여정이 걸리는 왕복 기차표 가격이 학생 기준으로 거의 200불에 달하는 걸 확인하고서는 도저히 기차로는 마추피추에 가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했다.(게다가 기차를 탄다고 마추피추 바로 앞에서 내리는 것도 아니다. 아구아스 깔리엔떼스에서 마추피추에 가기 위해서는 산을 올라가는 별도의 버스를 타거나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버스 가격도 고작 편도로 7분 남짓 타는데 12불의 고액을 받는다. 이렇게 교통수단이 비싼 이유는 대부분의 교통수단을 일부 업체들이 독점적으로 운영하고 있고, 이를 페루 정부에서 암묵적으로 허용해 줬기 때문이다. 실제로 페루 현지인들은 관광객들에 비해 훨씬 더 저렴한 가격에 마추피추행 버스와 기차를 이용할 수 있다.)
아구아스 깔리엔떼스는 주변이 험난한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서 철로를 제외하고는 도로를 통하여서는 접근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기차를 타는 방법 대안으로, 아구아스 깔리엔떼스까지 최대한 근접하게 지나가는 기차역까지 미니 밴을 타고 거기서 철로를 따라 약 12km정도를 걸어서 아구아스 깔리엔떼스까지 들어가는 차선책을 선택하기로 했다. 비용도 기차를 이용하는 방법의 20% 수준으로 배낭여행족들은 적지 않은 수의 관광객들이 이 방법을 이용한다. 다만 이렇게 마추피추를 가기로 결정하고 나서 해발 3500m의 험한 산지 12km를 걷는다는 상상을 하니 막막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와 더불어 쿠즈코에서 해야 할 중요했던 일로는 곧 가게 될 나라인 볼리비아 관광비자를 발급받는 일이었다. 한국인이 볼리비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직 무비자 상태로는 입국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반드시 1개월 관광용 비자를 발급받아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볼리비아 대사관에서 발급을 받아야 했다. 그 중 많은 관광객들이 비자를 발급받는 곳이 바로 페루 쿠즈코였기 때문에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들러야할 곳이었다.
그러나 정말 불운하게도 필자가 방문하던 당시 무슨 연유에서인지 쿠즈코 볼리비아 대사관이 무기한 파업에 들어가서 비자를 받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만일 볼리비아 국경과 접해 있는 페루 푸노(Puno)에 볼리비아 대사관이 없었다면, 남미의 전반적인 여행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었던 위기의 순간 중 하나였다. 그나마 같은 숙소에서 묵었던 배낭여행객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또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어려운 순간을 헤쳐 나갈 수 있었다.
조금은 힘들게, 남미의 이유인 마추피추를 향한 퍼즐 조각을 하나씩 끼워 맞춰 나가고 있었다. 이 퍼즐이 완성될 때, 온전한 마추피추의 그 모습을 완상하길 바라며 그 대장정의 전날, 여전히 숨이 찬 상태로 조금은 몽롱하게 숙소에서 눈을 붙였다.
- 6부에서 계속 -
밤새도록 버스 안에서 숨이 막히는 기이한 경험을 하면서 올라와서인지, 해발 3000m에서 맞이하는 쿠즈코의 아침은 하늘이 노랗게 보이는 어지러움과 함께 몽롱해 보였다. 장장 12시간에 달하는 장거리 버스의 경험이 처음이라서 그런지 온몸이 쑤셔 왔고, 잠시 올려다 본 하늘은 마치 손에 닿을 듯 말듯 가까이 있었다. 주변을 보면 이곳이 한 때 스페인의 식민지였다는 것을 보여주듯, 이베리아 반도 풍 특유의 건축물들이 즐비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멕시코와 콜롬비아, 그리고 페루의 여러 도시들을 다니면서 특징적으로 공통적인 점을 발견하였는데, 바로 모든 도시의 중앙에는 대광장과 그 옆에 대성당이 배열되어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스페인이 이 지역을 식민 지배하고 있던 당시 가톨릭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도시의 구조를 천편일률적으로 획일화시킨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쿠즈코도 예외 없이 시내의 한가운데에 광활한 광장과 그 옆에 대성당이 위치해 있었다. 해발이 높은 지역에 위치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건물 규모는 리마에 있는 그것보다 더 작았고, 그런 만큼 리마와는 대비되게 아기자기한 면모를 쿠즈코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여행자들이 쿠즈코를 가는 이유는 그 곳이 목적이어서가 아니라 수단이기 때문이 대부분이다. 바로 잉카 문명의 최대 유적지인 마추피추를 방문하기 위해서이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어서 쿠즈코에서 도시 관광보다는 마추피추를 가기 위한 교통 수단을 알아 보는데에 시간을 더 투자했다. 인터넷으로 마추피추 전초 기지격 마을인 아구아스 깔리엔떼스(Aguas Calientes)까지 가는 기차표가 대략 수백 불하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었는데, 실제로 현지에서 알아본 기차표 가격도 인터넷의 가격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편도로 약 1시간 여정이 걸리는 왕복 기차표 가격이 학생 기준으로 거의 200불에 달하는 걸 확인하고서는 도저히 기차로는 마추피추에 가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했다.(게다가 기차를 탄다고 마추피추 바로 앞에서 내리는 것도 아니다. 아구아스 깔리엔떼스에서 마추피추에 가기 위해서는 산을 올라가는 별도의 버스를 타거나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버스 가격도 고작 편도로 7분 남짓 타는데 12불의 고액을 받는다. 이렇게 교통수단이 비싼 이유는 대부분의 교통수단을 일부 업체들이 독점적으로 운영하고 있고, 이를 페루 정부에서 암묵적으로 허용해 줬기 때문이다. 실제로 페루 현지인들은 관광객들에 비해 훨씬 더 저렴한 가격에 마추피추행 버스와 기차를 이용할 수 있다.)
아구아스 깔리엔떼스는 주변이 험난한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서 철로를 제외하고는 도로를 통하여서는 접근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기차를 타는 방법 대안으로, 아구아스 깔리엔떼스까지 최대한 근접하게 지나가는 기차역까지 미니 밴을 타고 거기서 철로를 따라 약 12km정도를 걸어서 아구아스 깔리엔떼스까지 들어가는 차선책을 선택하기로 했다. 비용도 기차를 이용하는 방법의 20% 수준으로 배낭여행족들은 적지 않은 수의 관광객들이 이 방법을 이용한다. 다만 이렇게 마추피추를 가기로 결정하고 나서 해발 3500m의 험한 산지 12km를 걷는다는 상상을 하니 막막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와 더불어 쿠즈코에서 해야 할 중요했던 일로는 곧 가게 될 나라인 볼리비아 관광비자를 발급받는 일이었다. 한국인이 볼리비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직 무비자 상태로는 입국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반드시 1개월 관광용 비자를 발급받아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볼리비아 대사관에서 발급을 받아야 했다. 그 중 많은 관광객들이 비자를 발급받는 곳이 바로 페루 쿠즈코였기 때문에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들러야할 곳이었다.
그러나 정말 불운하게도 필자가 방문하던 당시 무슨 연유에서인지 쿠즈코 볼리비아 대사관이 무기한 파업에 들어가서 비자를 받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만일 볼리비아 국경과 접해 있는 페루 푸노(Puno)에 볼리비아 대사관이 없었다면, 남미의 전반적인 여행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었던 위기의 순간 중 하나였다. 그나마 같은 숙소에서 묵었던 배낭여행객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또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어려운 순간을 헤쳐 나갈 수 있었다.
조금은 힘들게, 남미의 이유인 마추피추를 향한 퍼즐 조각을 하나씩 끼워 맞춰 나가고 있었다. 이 퍼즐이 완성될 때, 온전한 마추피추의 그 모습을 완상하길 바라며 그 대장정의 전날, 여전히 숨이 찬 상태로 조금은 몽롱하게 숙소에서 눈을 붙였다.
- 6부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