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처벌 규정 삭제 가시화…합법 테두리가 관건

발행날짜: 2019-04-12 06:00:59
  • 낙태 허용 임신주수 따라 다른 해석 나올 수 있어
    의료계와 논의 관심사로 부상...사회적 합의도 거쳐야

|초점=66년만에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

헌법재판소가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했던 법령들에 대해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낙태 수술에 대한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비합리적인 법안 개정은 당연한 일이라고 환영의 뜻을 보이면서 환자 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즉각적인 대처와 의학적 근거 마련을 위한 의료계와의 논의를 주문하고 나섰다.

7년만에 뒤짚힌 헌재 결정…법 개정 속도낼 듯

헌법재판소는 11일 대심판정에서 형법 269조 1항 자기낙태죄와 270조 1항 동의 낙태죄 조항에 대한 헌법 소원 심판을 열고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 불합치란 해당 법령들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법령에 대한 개정을 주문하는 결정이다.

위헌 결정이 날 경우 즉각적으로 모든 처벌이 중지되고 소급 적용으로 이미 내려진 처벌까지 모두 무죄로 판결이 뒤짚힌다.

낙태죄가 만약 위헌 결정이 났다면 결정 이후 즉각 모든 낙태 수술이 허용되며 이로 인해 처벌받은 의사들이 모두 무죄로 방면된다는 의미다.

헌재가 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도 현재 낙태죄에 대해 사회적으로 갈등이 여전하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낙태를 즉각 허용할 경우 일어날 혼란을 일정 기간이나마 막아보고자 하는 선택인 셈이다.

그러나 헌재가 2020년 12월 31일까지로 법령 개정을 주문했다는 점에서 국회를 비롯한 정부의 움직임은 매우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낙태에 대한 처벌 규정은 형법과 모자보건법,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등 세가지다.

형법은 의사가 낙태 시술을 했을 경우 2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는 것을 골자로 하며 모자보건법은 이에 대한 예외 조항을,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은 의사의 자격 정지 처분을 담고 있다.

우선 헌재는 이러한 법령들에 포함된 '의사'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 모두 헌법에 맞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사실상 법령 개정시 의사의 처벌과 관련한 모든 조항이 삭제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따라서 낙태에 대한 의사의 처분을 규정한 형법 270조는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과연 임신 몇 주 까지를 결정권을 보장하는 시기로 삼는가 하는 점이다.

헌재도 이 부분에 대해 입법의 여지를 남기며 국회로 공을 돌렸다. 주문을 통해 결정 가능 기간을 어떻게 정하고 언제까지로 할 것인지에 대해 입법 재량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국회와 정부는 이 부분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사회적 합의를 도모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만약 헌재가 주문한 2020년 12월 31일까지 입법이 되지 않을 경우 사실상 단순 위헌 결정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는 점에서 만약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임신 전 기간에 걸친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의료계, 담담한 반응속 기대감 표출…"혼란 최소화해야"

의료계는 이같은 헌재의 결정에 대해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다. 사회적 갈등이 첨예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혹여 불필요한 갈등이 있을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하지만 그동안 의사들을 옭아맸던 처벌 규정이 사실상 사라진다는 점에서 법 개정에 대한 기대감을 보이는 모습이다.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 김동석 회장은 "OECD 36개 국가 중에서 30개 나라가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며 "사회적, 경제적 정당화에 대한 이유로 낙태를 허용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나마 모자보건법이 개정된 이후에도 기형아 유발 가능성이 있으면 낙태가 허용되는 반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선천성 기형아는 허용되지 않는 비의학적 기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헌재의 결정이 이를 바로잡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단순 위헌이 아닌 불합치 결정이 나온 것에 대한 아쉬움도 표현하고 있다.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지 못한데 대한 실망감이다.

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법제이사는 "산부인과 의사들은 태아의 생명권을 물론 존중하지지만 여성의 건강권 역시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다"며 "헌재의 결정은 낙태죄를 전면 폐지해야할 사회적 정서가 적절하게 반영되지 못해 아쉬움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그나마 낙태죄가 여성의 신체를 국가가 통제하는 사문화된 법 조항이라는 인식으로 변화했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있다"며 "그래도 임신 초기만 낙태를 허용하도록 하는 불합치 결정은 아쉬움이 많다"고 덧붙였다.

특히 의료계는 앞으로 낙태에 대한 기준을 세우고 법령을 개정하는데 있어 의료계의 의견이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과거 형법과 모자보건법, 의료관계 행정 처분 규칙 등의 의학적 불합리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만큼 이번에는 이를 담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모양새다.

김재연 이사는 "앞으로 낙태의 주된 이유로 꼽히는 사회, 경제적 사유를 어디까지 인정할 지와 임신 주수별로 낙태 허용 범위를 어떻게 정할지 등 쟁점이 남아있다"며 "건강보험 적용 여부와 비용, 주수별 기준 등에 의료계의 의견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김동석 회장도 "산부인과 의사로서 법 개정에 있어 의학적 근거와 기준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것"이라며 "국회와 정부도 변화한 사회상에 맞춰 보다 적극적으로 법 개정을 추진해 더 이상의 갈등과 혼란을 막아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부와 의협도 이러한 헌재의 결정에 맞춰 법 개정 등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따라서 과연 정부와 의협이 어떠한 논의를 이어갈지도 관심사다.

법무부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문화체육관광부, 국무조정실은 관계 부처 합동 입장을 내고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관련 부처가 협력해 헌법 불합치 결정에 따른 후속 조치를 차질없이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의협 관계자는 "정부에서 이번 헌법 불합치 결정에 따라 의료계의 의견을 구한다면 전문가 단체로서 이에 충실히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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