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 방지법 2주째...선후배 간호사 눈치싸움 치열

황병우
발행날짜: 2019-07-29 06:00:59
  • 저년차 간호사들 "직장 괴롭힘 인식변화 기대 크다" 환영
    상급년차 간호사 "내가 첫 사례될라" 근거 만들기 분주

#1.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2년차 간호사는 최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면서 교육을 받은 뒤 이를 이수했다는 사인을 했다. 법 시행 이후 나에게 해당하는 괴롭힘이 있었는지 생각했지만 멀리 있는 법보다 당장 가까이 있는 상급자가 더 부담스럽다.

#2. 최근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수간호사는 한 병원에서 20년간 근무한 수간호사가 보직해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년차 간호사가 괴롭힘 방지법을 거론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주장했다는 게 이유. 그 소식을 접한 이후 B 대학병원의 수간호사는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까봐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지난 16일 시행된 이후 2주가량의 시간이 지난 상황에서 병원 내 변화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불편한 눈치게임'.

일반 기업과 비교해 잦은 지시와 명령이 오가는 의료기관의 특성상 같은 상황을 두고 다르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상급자와 하급자 모두 서로를 의식하는 풍경이 벌어지고 있는 것.

지난 16일부터 시행된 '괴롭힘 방지법'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의료계의 경우 그동안 문제로 지적됐던 열악한 병원 노동환경이나, 간호사 태움 문화 등에 대한 해결책 중의 하나로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태움'과 같은 괴롭힘에 노출되기 쉬웠던 병원 내 저년차 간호사들은 이러한 변화를 반기는 모습이다.

그동안 태움 혹은 괴롭힘이 있더라도 서로 쉬쉬하던 상황이 괴롭힘 금지법이 대대적으로 시행되면서 외면하기 어렵게 됐고 문제를 제기하기에 부담이 줄어들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점수를 주는 것이다.

상급종합병원에 근무하는 1년차 A간호사는 "그동안 병원 내 괴롭힘이 지적돼도 해결책이 나와도 딴 나라 이야기 같은 느낌이 있었다"며 "사실 지금도 병동 내에서 크게 신경쓰는 사람은 없지만 대대적으로 언론에 뉴스화도 됐기 때문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A간호사는 "주변의 사례들을 들어봤을 때는 괴롭힘을 당하는 간호사가 결국 못 버티고 울면서 나가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었다"며 "경직된 조직문화속에서 나때도 그랬으니 당연히 그런 것처럼 넘어가는 인식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다만, 저년차 간호사들은 괴롭힘 방지법 시행과 별개로 병원 내에서 실현은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종합병원 2년차 B간호사는 "일부 상급년차 간호사들은 혼낼 때 꼭 이유를 말하고 신고할 것을 대비해서 증거를 모아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런 상황에서 저년차는 더 위축될 수밖에 없고 괴롭힘이 유무와 별개로 불신이 쌓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부담 늘어나는 상급년차 간호사…일부 병원 저년차가 수간호사 역평가도

반대로 상급년차 간호사들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굉장한 부담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특히, 괴롭힘 금지법의 특성상 신고자가 갑이 되고 피신고자가 을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

C종합병원 15년차 간호사는 "병원 내에서 사소한 일들이 많아서 괴롭힘이라는 게 결국 상황을 본인이 생각하기 나름이 될 수밖에 없다"며 "윗년차는 이 정도는 당연하다고 보는게 아랫년차가 나한테만 왜이러지라고 느낀다면 결국 그게 괴롭힘이 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서로의 직접적인 생각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하면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게 최선"이라며 "같은 상황을 두고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윗년차와 아랫년차 서로가 눈치를 보는 아이러니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상급종합병원 D수간호사는 젊은 간호사들이 이런 상황을 악용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D수간호사는 "환자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긴장감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1~3년차 간호사들이 그만두면서 윗사람 때문에 그만둔다고 하는 등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며 "특히 수간호사 평가에 저년차 간호사들의 역평가를 반영하는 경우도 있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법 때문에 더 힘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다"고 언급했다.

병원간호사회 박영우 회장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상황이 다 틀릴 수 있고 서로 절충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며 "오해의 여지를 두고 누가 재판관이 될 것인가. 사안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현장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중재 키 쥐고 있는 병원 제 역할 가능할까?

즉, 같은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지만 두고 저년차 간호사와 고년차 간호사들 모두 종류는 다르지만 부담을 느끼고 있는 상황.

이 같은 상황을 조율하기 위해서는 결국 병원이 정확한 기준을 정립하고 중재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된다는 것이 간호사들의 의견이다.

실제 많은 병원들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이행을 위해 교육을 실시하거나 캠페인을 여는 등 제도 안착에 힘쓰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도 많은 병원들이 이미 이전부터 존재하던 폭행대책위원회 등의 기구를 통해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어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A간호사는 "법이 시행 되도 결국 이를 해결해주는 기구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해도 해결 메커니즘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며 "내가 첫 사례가 되면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눈치만 보는 상황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닌 보여주기 식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서로 보복성 신고가 되지 않으려면 병원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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