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전달체계 개편은 전쟁?...'진료과'간 경쟁 심화 예고

발행날짜: 2019-09-16 05:30:59
  • "외래 이외 새 영역 창출하자" 내과·가정 등 학회별로 대응책 분주
    외과계는 표정관리…복지부‧심평원 "입원환자분류체계 유지"

|초점| "속된 말로 생존이 걸린 부분을 공론화시키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에게 기회가 왔다."

상급종합병원의 중증환자 비율 상승이 핵심인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이 발표된 이후 진료과목 간의 눈치싸움 수준을 넘어 전운마저 감돌고 있다.

이는 소위 대형병원 내에서 자신의 진료과목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것으로, 향후 각 학회 별로 중증질환 확대를 위한 전방위적인 대응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 노홍인 보건의료정책실장이 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16일 의료계에 따르면, 각 진료과목 별 학회들은 복지부가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을 발표한 이후 대응방안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중증환자 비중.

여기서 말한 중증환자는 그동안 상급종합병원 지정에 있어 주요 잣대로 작용했던 '전문진료질병군'에 속하는 입원환자로, 각 학회들은 이러한 전문진료질병군 속에 자신의 진료과목에 해당하는 질환을 포함시키는 노력을 전방위로 펼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상급에서 이름이 바뀔 중증종합병원에서는 상대적으로 전문진료질병군 비율이 낮은 진료과목은 병원 내 입지가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로 변화가 불가피하다.

당장 상급종합병원 내에서 전문진료질병군 비율이 낮았던 진료과목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현재 복지부 대책이 발표되자 손꼽히는 진료과목은 가정의학과를 필두로 소아청소년과, 이비인후과, 안과를 더해 내과 중에서도 '내분비내과'가 손꼽힌다.

가정의학과의 경우 3차 의료기관 내 입지가 더욱 좁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과 함께 앞서 가정의학과 외래진료를 중단한 경상대병원과 같은 사례가 확대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섞인 시각도 있다.

본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습니다.
이비인후과학회 임원인 한 A상급종합병원 기조실장은 "전달체계에서 3차 의료기관이라면 진료과목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새로운 역할을 부여해주는 것도 상급종합병원이 존재하는 하나의 이유"라며 "지방 국립대병원에서의 가정의학과 폐쇄는 충격이었다. 향후 이비인후과도 학회 차원에서 대응방안을 찾아 나가야 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그는 "정부 정책 때문에 부당하게 배려 받지 못하는 진료과목이 있다면 합리적이지 않다"며 "지속적으로 중증질환 대상 항목을 확대하기 위해 의견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내분비내과 교수인 당뇨병학회 임원 역시 "현재 기준으로 중증비율을 올리고 경증을 낮추라고 하면 환자의 절반을 내보내야 한다. 외래 진료 자체를 닫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왜냐하면 만약 이것 때문에 상급종합병원 재지정 탈락 혹은 의료질평가서 저평가를 받으면 수십억이 날라 간다. 병원 내에 입지가 대폭 축소되는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학회 차원에서 고혈압과 당뇨 관리 역할에 따른 합당한 수가를 요구할 예정"이라며 "새로운 영역을 창출하는 동시에 외래 중심에서 병동환자 관리로 변화가 예상된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기회가 왔다" 표정 관리하는 외과계

반면, 복지부의 단기대책을 둘러싸고 외과계는 향후 대응방향을 두고 신중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특히 2020년으로 예정돼 있는 3차 상대가치점수 개편과 맞물려 그동안 기피과로 분류됐던 외과계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것.

외과계는 의료전달체계 단기대책을 계기로 기피과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외과학회 관계자는 "개원가와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전체적으로 외과계는 이번 단기대책을 두고 전반적으로 기회가 왔다는 뉘앙스"라며 "다만, 천편일률적인 정책은 우려스럽다"고 신중한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외과계열 자체가 중증도가 높은 질환들일 대부분"이라며 "다만 이번 대책은 빅5 병원을 위시한 초대형병원에 환자를 몰리게 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외과 교수는 "전문진료질병군은 진료과목 별로 합의와 심사가 필요해 함부로 변경하기 쉽지 않다"면서도 "과목 간의 특수성을 반영해야 하는데 당장 진료과목을 배려해 수정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현재의 전문진료질병군 위주로 일단 가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복지부 "진료과목 미래, 논의할 시점"

단기대책 발표 이후 진료과목 간에 신경전 양상이 벌이지자 복지부에서는 새로운 진료과목의 미래를 조명해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단기대책으로 상급종합병원 내 진료과목의 업무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3차 의료기관에서 안과나 이비인후과 등이 전혀 필요 없는 진료과목은 아니지 않나"라면서도 "다만, 이제부터라도 진료과목 별로 상급종합병원에서 어떤 질환을 진료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현재 기조로 간다면 경증비율이 높았던 진료과목의 입지는 축소될 것 같다"며 "학회에 따라 중증질환으로 분류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본다. 학회 차원의 요구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전면적인 검토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로비 모습이다.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하지만 취재 결과, 상급종합병원 내 중증도 비율 여부를 가늠할 분류체계 재검토는 당장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연스럽게 내년도 예정된 상급종합병원 재지정에 있어서도 현재의 기준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전문진료질병군의 바탕이 되는 입원환자분류체계(KDRG 버전4.2)가 개정된 지 1년여 밖에 안됐기 때문이다.

이를 수행하고 있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018년 1월부터 최신 버전 의·치과 및 한의과 입원·외래 환자분류체계를 전행해왔는데, 새로운 입원환자분류체계를 마련하는 데에만 2년간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당장은 현재의 기준이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복지부와 심평원 관계자는 "현재의 입원환자분류체계는 미국과 호주 모형 등 중증도 해외 모형 등을 반영해 임상의학회와 2년 동안 만들었던 것"이라며 "당장 중증질환 분류를 새롭게 마련하는 것은 힘들다. 따라서 상급종합병원 재지정에 현재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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