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심장마비 환자는 왜 KTX에 올라 탔을까

모채영
발행날짜: 2020-08-10 05:45:50
  • 모채영 가천의대 학생(2학년)
    Medical Mavericks 대외협력팀장



|가천의대 의학과 2학년 모채영|"암환자들은 처음부터 지방 병원에 가지 않아요. 먼저 메이저 병원에 가서 입원을 했다가, 차도가 나아지면 집으로 돌아가고, 병세가 나빠지면 메이저 병원 응급실로 내원하죠. 그걸 몇 번이나 반복해요."

교수님은 씁쓸한 표정으로 숨을 골랐다. 몇 달 전, 가정의학과 강의를 듣던 중 내게 강렬하게 다가왔던 말이었다.

2020년 8월 현재 정부가 내세운 정책의 주요 골자 중 하나는 지역의사 수급이다. 의료취약지역은 대한민국 의료계가 안고 온 해묵은 문제이다. 그러나 정작 시골과 도시의 환자들은 지역에 있는 병원보다는 수도권의 대형 병원을 선택하는 것이 현실이다. 비단 암환자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스펙트럼의 환자들이 수도권 대형 병원을 선호한다.

정부가 말하는 '지역의사'의 손에 가 있어야 할 환자들은 서울의 메이저 병원 병동에 누워있다.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가 입원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응급실에서 입원시켜 달라고 호소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심지어 심근경색이 온 환자가 지방에서 KTX를 타고 올라와 본인이 원하는 병원의 응급실로 내원한 경우도 볼 수 있다. 의료인이 아니라 일반인의 관점에서 보기에도 기형적인 일이 매일같이 응급실에서 일어난다.

그러면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자신 또는 가족의 질병을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수도권 선호에서 비롯된 인식이다. 거대 병원이라면 의료의 질이 더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또한 강력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환자의 기대감에 병원이 미치지 못한다면 환자는 또 다른 '서울에 있는 큰 병원'을 찾아가고, 질병의 치료 기한은 자꾸만 늦어진다. 이러한 현상은 심각한 문제로 작용한다. 의료 수요의 수도권 집중을 가속화하고, 그에 따라 의료의 공급도 자꾸만 수도권 및 대도시 위주로 집중되며, 따라서 의료의 지역적인 불평등은 더욱 심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하지만 이것을 과연 환자들의 인식 문제로 치부할 수 있을까? 문재인 케어가 시행되면서 지금까지 비용의 문제로 인해 상급 종합병원을 찾지 못하던 환자들도 선택 진료비의 폐지로 비용적인 문제까지 해결되면서 더욱 쉽게 의사를 선택한다.

자꾸만 환자는 수도권으로, 대형 병원으로 몰리는 것이다. 이미 기울어 있는 인식에 더해 구조적인 부추김까지 더해지면서 '의료 생태계'가 이미 완전히 파괴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에 의사를 늘린다고 과연 환자들이 그 의사들에게 질병을 보일까? 아마 수도권 대형병원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증의 환자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문턱을 밟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역 의사를 수급하는 것은 지역 환자들의 의료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서이지만, 해당 수요는 이미 대도시와 수도권으로 몰려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이미 파괴되어버린 의료 생태계의 복구이다.

사막이 되어버린 땅에 나무를 심듯 의료 취약지역에 심어야 할 것은 의사가 아니라 의사와 환자들이 돌아올 수 있는 의료 체계와 소통 구조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수치만 해결하려고 하는 대책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악화만 불러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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