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혈장치료제 속도전…혈장 부족·의학적 근거 발목

발행날짜: 2020-09-08 05:45:58
  • 현재 혈장 보유량 3상 임상도 진행 불투명…확보 총력전
    미국도 무작위 임상 없이 긴급 승인…효과성 여전히 의문

국내에서 코로나 감염증이 2차 대유행 양상을 보이면서 국산 혈장치료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혈장 부족과 의학적 근거에 발목을 잡혀 속도를 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현재 모아진 완치자의 혈장으로는 2상 임상을 진행하는데도 빠듯해 3상 임상이 불투명한데다 의학적 근거에 대한 의구심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국산 혈장치료제 개발이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혈장부족과 의학적 근거가 한계로 대두되고 있다.
7일 중앙방역대책본부 등에 따르면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과 GC 녹십자가 공동으로 개발중인 혈장치료제 'GC5131'에 대한 2상 임상이 순항중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GC5131'은 코로나 완치자의 혈액 중에서 유효 면역 항체를 추출해 농축한 고 면역 글로불린을 활용한 치료제다.

혈장치료제는 다른 치료제와 달리 과거 혈장 치료의 원리를 그대로 차용한다는 점에서 개발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 사실. 또한 이미 설비가 구비돼 있는 만큼 허가만 떨어지면 생산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

정부가 다른 치료제 후보에 비해 혈장치료제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다른 치료제와 달리 가장 빠르게 국산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 있는 이유다.

이로 인해 'GC5131'도 1상 임상을 건너뛴 채 2상 임상에 바로 돌입했다. 또한 2상 임상도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고대안산병원 등 6개 대형병원에서 동시에 진행할 만큼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다.

정부와 GC녹십자는 2상 임상을 통해 효과성을 확인하는 즉시 3상 임상에 돌입해 올해 안에 국산 혈장치료제를 내놓는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원료가 되는 혈장이다. 이는 혈장치료제의 고질적인 한계점이기도 하다. 대량으로 원료를 확보할 수 있는 다른 치료제와 다르게 혈장은 결국 완치자의 혈액 외에는 구할 방도가 없다.

현재 정부와 GC녹십자가 확보한 혈장은 2000여개에 불과하다. 한 사람의 혈장으로 1개에서 많아야 2개 이상 혈장치료제를 만들지 못한다는 점에서 적게는 2000개에서 많아봐야 4000개 분량밖에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마저도 2상 임상에 필요한 물량을 빼고 나면 사실상 3상 진행도 아직까지 요원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3상 임상에 가장 많은 물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렇게 모아진 2000개의 혈장의 절반 이상이 신천지 교인들로부터 나온 것도 한계로 꼽힌다.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신천지 교인들이 대거 혈장 공여에 동의했지만 일반 완치자의 경우 1만명이 넘는 인원 중 10%도 되지 않는 상태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과거 고대안산병원 등 4곳에서 진행하던 혈장 추출을 7일부터 전국 적십자사 헌혈의 집으로 확대해 접근성을 높이고 혈장 공여를 유도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전문가들은 여전히 혈장 확보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상 임상에 참여중인 A교수는 "아무리 기술과 설비가 있다고 해도 혈장치료제는 구조상 대량생산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우여곡절 끝에 그나마 2상은 진행되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유효성을 입증한다해도 제품화는 커녕 3상을 진행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고 털어놨다.

의학적 근거도 혈장치료제의 발목을 잡는 이유 중의 하나다. 실제로 아직까지도 국내는 물론 해외 의학계에서는 혈장치료제의 효용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가장 먼저 혈장치료를 승인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메이요클리닉에서 진행된 혈장치료 임상시험을 근거로 하고 있다.

환자 6만여명이 참여한 이 연구는 코로나 진단 후 3일 내에 완치자 혈장을 투여하면 30일 사망률이 21.6%로 3일 이후 혈장을 투여한 환자에 비해 사망률이 35% 낮아진다는 결론을 냈다.

하지만 이 연구는 무작위 이중맹검 대조군 임상이 아니었다. 대조군도 설정되지 않은 채 사실상 동정적 목적으로 이뤄진 치료를 후향적으로 분석한 연구였다는 점에서 과연 승인 근거가 되느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2상 임상이 진행중이지만 아직까지 이를 뒷받침할 근거들은 전무한 상황이다. 더욱이 국내에서 임상 중인 혈장치료제는 미국이 승인한 직접 수혈 혈장치료가 아닌 혈장분획치료제라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A교수는 "가장 중요한 점은 과연 치료에 얼마만큼의 항체가 필요하며 연령과 성별, 다른 기타 요인의 변수는 없는지, 또 이 항체를 유지할 수 있는지 하는 것"이라며 "메이요클리닉의 연구가 지적을 받는 이유도 결국 항체 농도를 비롯한 변수 통제가 되지 않은 것이 컸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2차 대유행 등 급박한 상황이다보니 현재로서는 백신과 치료제에 대한 모든 임상이 의학적 근거보다는 유효성에 대한 기대감을 확인하는 면이 더 큰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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