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후 전공의(대한전공의협의회 부회장)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장관 직속 기구로 지난 2017년,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에 의해 전공의 수련환경과 관련한 주요 정책을 심의하기 위해 구성되었다.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총 6개의 분과위원회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 교육평가위원회는 전공의 정원책정, 전공의 추가 수련, 수련 교과과목 등에 관한 사항을 논의한다. 2022년도 전공의 모집 계획은 지난해 10~11월 교육평가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서 심의를 마쳤고 레지던트 모집은 이에 따라 진행되어 12월 24일 합격자 발표까지 마쳤다.
그런데 지난 5일 보건복지부는 황당한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코로나19 치료기관에 미충원 정원 50명을 배정하고, 코로나19 치료 의료기관뿐만 아니라 내과 미충원 정원이 있는 수련병원은 총 50명까지 추가 모집할 수 있도록 하여 전국적으로 내과 전공의 최대 100명을 추가 모집한다는 것이다. 추가 배정 기준은 코로나19 병상 규모, 병상 운영 기간 등을 명시했다. 또한 복지부는 감염병 치료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 감염내과, 호흡기내과, 중환자실 수가 개선방안을 검토 하고 필수의료협의체에서 1분기 중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
복지부가 발표한 미충원 정원의 추가모집 및 정원 확대는 수련환경평가위원회에서 논의된 바가 전혀 없다. 내과 정원 확대에 대해서도 대한전공의협의회뿐만 아니라 내과학회 또는 의사협회와 논의한바 역시 없다.
정부 발표 후 지난 6일, 복지부 담당자에게 문의 시 '전공의 정원은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한다'는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 제8조를 들며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수련 환경을 논하는 자리이므로 정원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고, 논의할 필요도 없다"라는 답을 했다.
또한 이번 정원 확대로 충원되는 인원은 3월에서야 현장에 투입될 것으로 당장 코로나19 보다는 추후 감염병 위기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자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이라고 밝혔다.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복지부 직속 기구다. 정원 책정이 보건복지부의 고유 권한이라는 이유로 스스로 만든 절차인 수련환경평가위원회 논의를 생략한 것은 복지부의 전공의수련환경 개선 역사에 큰 오점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특히 교육평가위원회의 주요 업무를 전공의 정원 책정으로 명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정원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입장은 복지부의 수련환경평가위원회에 대한 이해 수준을 보여준 셈이다. 전문가 및 유관 단체와 단 한 번의 상의를 거치지 않은 것 역시 매우 독단적인 태도다.
복지부가 보였던 전공의 수련환경개선 및 양성을 위한 노력을 생각해볼 때, 내과 정원 증원을 통해 감염병 위기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주장은 매우 허황되어 보인다.
먼저 많은 수련기관이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전환되며 해당 병원의 전공의들은 중대한 수련의 질적 저하를 마주하게 되었다. 코로나19와 무관한 과목을 수련하는 전공의는 수련을 이어 나가는 것 자체가 어렵고 코로나19와 관련된 과목을 수련하는 전공의 역시 코로나19 이외 질환을 접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이러한 문제에 대비책을 마련해두지도, 마련할 의지도 없어 보인다. 전공의협의회는 해당 병원들에서 이동수련의 수요 및 필요성, 절차적 어려움에 대해 당사자와 논의하며 해결법을 모색하고 있다.
또 2019년 의사양성비용 국가지원을 활발히 논의하던 때에도 복지부는 특정 직종에 대한 양성 비용을 지원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며 국고지원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연차별 수련교과과정 개선을 위해 일부 예산을 편성했으나 2021년에도 26개 전문 과목 중 8개 과목 편성에 그쳤다.
바라건대, 복지부에서 진심으로 감염병 위기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자 한다면 내과 전공의 증원이 아닌 전공의 수련환경개선을 위한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행보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전문가 단체와 충분한 논의를 거쳐 의료 인력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주길 바란다. 전공의 증원이 필요하다면 감염병 치료의 질을 제고하기 위하여 감염내과, 호흡기내과, 중환자실 수가 개선방안을 검토 하고 필수의료협의체에서 1분기 중 방안을 마련 한 뒤 증원을 진행하여 수련 과정이 그 목적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한다.
또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자 한다며 정원 배정 기준을 수련환경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코로나19 병상 규모, 병상 운영 기간 등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결정을 철회하길 바란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전공의 수련환경을 개선하고자 노력한 병원에 가산점을 주는 등 목적에 맞는 추가 정원 배정의 기준을 명확히 수립하고 공개하여 보건복지부의 의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소통을 시작하길 바란다.
수련환경평가위원회 본회의는 2021년 11월을 마지막으로 실질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다. 소통이 부재한 상태에서는 개선을 이루어내기 어렵다. 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 홈페이지(http://cgmt.or.kr)에 적힌 '전공의 수련환경개선이 수련교육의 질 제고와 우수한 전문의료인력 양성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그 역할을 충실히 해 나아가겠습니다'라는 약속이 글로만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