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세브란스병원 폐암센터 임선민 종양내과 교수
친정복귀 2년만에 4세대 EGFR TKI 제제 가능성 확인
“환자 진료와 임상 연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은 생각보다 고된 일이네요. 그런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4세대 폐암치료제 개발이라는 성과를 낼 수 있어서 기쁩니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임선민 교수(종양내과, 폐암센터)가 친정 복귀 2년 만에 연구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임 교수는 스승을 따라 2015년 분당차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기초 연구와 글로벌 임상에 큰 뜻을 품고 5년 만인 2020년 모교로 돌아왔다.
복귀하자마자 닥친 시련 코로나19 확산
2020년 3월. 부푼 꿈을 안고 돌아온 병원 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가장 큰 장벽은 코로나19 대유행. 복귀와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로 인한 학술과 연구 활동 제한은 많은 계획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그런 와중에 쉴 세 없이 늘어나는 환자는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 환자가 많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눈으로 본 현실은 예상보다 힘겨웠다.
대부분 그렇듯 암 진단을 받은 환자에게 우선 필요한 건 심리적 안정이었고 치료는 차순이었다. 이러한 환자 상담을 수 십 개월 반복하니 육체와 정신의 피로는 극에 달했다. 게다가 진료 후에도 계속되는 폐암센터의 전반적인 운영과 책임, 환자 관리와 교육은 어깨를 짓눌렀다.
몰려드는 업무와 환자진료에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왔다고 느꼈고, 남는 시간에 연구하겠다는 계획은 결코 쉬운 도전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이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잡을 수 있는 건 철저한 계획과 자기관리였다. 여기에 차분함과 꼼꼼함도 한몫했다. 그 덕분에 매일같이 되풀이되는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주 4일 외래진료 후 남은 시간에 연구와 교육에 매진하고 있어요. 일이 끝나면 녹초가 되지만 집에서는 두 아이의 엄마 역할이 기다리고 있어요. 그래서 주말엔 최대한 쉬려고 합니다. 다시 또 출근하면 외래, 교육, 연구는 무한 반복이죠”
악조건 속에서 피어난 성과...4세대 TKI 치료제
그런 와중에 성과도 찾아왔다. 임 교수가 세브란스병원으로 복귀하려고 했던 열망 중 하나가 진료와 더불어 임상(중개) 연구였던 만큼 악조건은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연구 성과물은 경험으로 녹아들었고, 어느새 그는 새로운 치료제 개발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현재 임 교수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는 기존 폐암 치료제에 내성이 생겨서 더 이상 치료 옵션이 없는 환자를 위한 대안을 찾는 일이다. 폐암 환자의 희망으로 불리는 EGFR 돌연변이 TKI 제제는 현재 3세대까지 나오면서 생존율이 개선됐지만, 내성 문제 또한 세대를 거듭하며 발전하고 있어 여전히 치료를 방해하는 요소다.
따라서 그 해법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임 교수가 그 해결사로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은 BBT-176(브리지바이오社)과 BLU-945(블루텍프린트 메디슨社)라는 두 가지의 후보물질로 4세대 EGFR TKI 폐암 치료제에 해당한다.
BBT-176의 경우 개발 총 책임자를 맡아 신약가능성을 꼼꼼히 확인 중이다. 현재까지 전 임상을 거쳐 임상1/2상을 진행했고, 올해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 중간 결과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성과 공개를 앞두고 있다.
또 BLU-945는 미국 바이오사인 블루프린트 메디슨가 개발한 물질인데, 지난해 전 임상을 미국암연구학회(AACR)에서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내친김에 글로벌 임상1/2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폐암환자중 EGFR 돌연변이 환자들에게 쓸 수 있는 TKI 제제는 시간이 갈수록 내성이 생기기 때문에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약물이 계속 나와야 생존율을 높일 수 있어요. 현재 개발 중인 약물의 효과는 수용체 선택성이 높아 다제 돌연변이 발현에서도 매우 긍정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임 교수는 두 약물이 성공적으로 개발되면 3세대 약물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물론, 폐암환자의 생존율을 다시 한번 갱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적의 조합을 통해 EGFR 표적 치료제들의 내성 극복을 위한 연구도 한창이라 이 모든 옵션이 나오면 그야말로 칵테일처럼 다양한 치료법으로 맞춤형 치료에 한발 더 다가갈 것으로 확신한다.
임상과 진료 아우르는 교수 꿈꿔
임 교수의 목표는 뚜렷하고 명확하다.
그는 임상의라는 강점을 활용해 중개연구를 넓혀 궁극적으로는 더 나은 치료 옵션을 보다 많은 환자들에게 주길 원한다. 나아가 글로벌 신약 임상에도 더욱더 적극적으로 참여해 우리나라 환자들에게 보다 많은 치료기회를 주고 싶어 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세계적인 종양내과의사로 성장해 있는 꿈도 꾼다.
“많은 환자를 보면 그만큼 진료에 경험이 쌓이고, 많은 연구를 하면 가능성을 빨리 찾을 수 있어요. 게다가 앞으로 의료 빅데이터의 발전으로 환자 분석은 더 세밀해지고, 치료법은 더욱 정교해 집니다. 이때가 되면 폐암도 만성질환처럼 관리할 수 있는 시대가 곧 올 겁니다. 그 시대를 위해 제가 존재하는 것이고 그렇게 때문에 어느 한 분야도 소홀히 할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