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한마디에 긴장…건보공단·심평원 통합설의 역사

발행날짜: 2022-08-22 05:30:00
  • [의정피셜]참여정부때부터 등장한 보건 분야 기관 기능 재조정
    건보재정 관리와 지출 관리, 한 기관에서 해야 하나 의견 엇갈려

"공공기관의 통폐합을 통해 공공부문 효율성과 생산성을 제고하기로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이해 언급한 한 줄의 문장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공공기관이 있습니다. 바로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인데요.

이 두 기관은 보건복지부 산하 준공공기관인데, 큰 틀에서 '건강보험 재정'과 엮여 있기 때문에 기능이 비슷하다며 양 기관을 통합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권마다 등장하는 '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윤석열 정부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했습니다. '공공기관 혁신'을 내세우며 윤 대통령이 직접 공공기관을 통폐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통폐합의 주어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통폐합설에 늘 오르내렸던 건보공단과 심평원은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원회에서도 잠시나마 등장했던 주제이다 보니 더 그렇겠죠.

다만,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높은 편입니다.

건보공단 전직 한 임원은 "양 기관의 기능을 조정하고 조직을 개편하는 문제는 언젠가는 풀어야 하는 문제이지만 일자리와도 맞물려 있는 만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라며 "현 정권은 출범과 동시에 지지율이 너무 낮아져 실무를 맡아야 하는 공무원들의 기동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현실적인 전망을 내놨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공공기관 통폐합 이야기를 꺼냈다.

통폐합설의 역사 거슬러 올라가면 '참여정부'

어제오늘 나온 얘기가 아니라는 점도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데 힘을 실어줍니다.

정권 차원에서 건보공단과 심평원의 기능 개편 얘기가 처음 등장한 것은 노무현 정부 때입니다. 통합보다는 기능을 재편하는 방향을 검토했었죠.

심평원에 설치된 급여 관련 위원회 기능을 건보공단에 이관하고 심평원은 심사 전문기관으로 한다는 방식입니다.

더불어 건보공단의 재정운영위원회 역할을 강화, 확대해 '(가칭)가입자위원회'를 설치해 급여 및 지출 전반에 대한 가입자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도 나왔습니다.

당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건강보험 보험자 역할 재정립 연구보고서도 나왔고 학계, 시민단체 등이 기능 재정립 목소리를 높였지만 현실화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보다 시장주의적인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단일보험자 방식의 건보 제도를 다보험자 방식으로 바꿔 내부 경쟁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것. 구체적으로 건보공단 6개 지역본부를 자율경쟁토록 하고 건보공단 본부는 심평원과 통합해 과거 연합회 형태로 운영하는 등의 방안이 검토했습니다. 세부 추진을 위한 공청회까지 열렸지만 광우병 파동으로 동력을 잃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구체적인 통합안까지 등장하며 어느 때보다 통폐합에 가까이 갔습니다. 기획재정부 차원에서 양 기관 통폐합에 드라이브를 걸었고, 감사원 역시 건보공단과 심평원의 기능 조정을 권하기도 했죠. 당시 기재부는 불완전한 정보 공유로 인한 재정 부담, 양 기관 역량 부족, 재정관리 방만경영 등을 이유로 양 기관 통합을 추진했습니다.

기재부는 2013년 고용 복지분야 기능점검 계획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보건분야 기능조정 방안을 2가지 정도 제시했습니다. 1안은 건보공단과 심평원,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건강증진개발원을 통합해 '(가칭)건강보험통합공단'을 설립하는 것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건보공단과 심평원을 분리해서 운영하되 심평원은 진료비 심사 및 자동차보험 등 '심사평가'에 집중하는 전문기관으로 특화하는 방향입니다.

기재부 차원에서 두 가지 안을 놓고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국정 농단 사태로 추진동력을 잃었습니다. 무엇보다 주무부처인 복지부와 관련 기관인 건보공단과 심평원 모두 반대했기 때문에 통합이 쉽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재인 정권에서도 건보공단과 심평원 통합 문제가 국정감사에서 등장했는데 복지부를 비롯해 양 기관 모두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통합설'은 사실상 물밑으로 들어갔습니다.

건보공단과 심평원 통폐합 이야기는 정권마다 등장하고 있다.

건보재정 관리-지출 관리 통합 찬반론 팽팽

건보공단과 심평원 통합설에 대해서는 현재 정반대의 시각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추진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라 하루아침에 무 자르듯이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문제입니다.

건강보험 재정을 관리하는 조직이 진료비 심사까지 한다면 객관적인 심사가 될 수 없다는 주장과, 재정관리를 위해서는 어디에 돈이 나가는지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통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전자는 의료계가 주장하는 논리죠. 나아가 보험자인 건보공단의 본래 역할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심평원 관계자는 "심사 업무는 전문성이 강한 분야인데 양 기관을 당장 통합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심평원에 있는 전문 인력이 그냥 소속만 바뀌게 될 텐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습니다.

대한의사협회 전 임원은 "지금도 의료계에서는 심평의학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진료비 심사를 놓고 심평원과 대립하고 있다"라며 "재정을 관리하는 집단이 심사까지 한다면 그 갈등은 심화될 게 불 보듯 뻔하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실 건보공단에 1만7000명에 달하는 직원이 있는데 보험료 징수, 수납, 부과 등 본연의 업무를 잘 하고 있는지부터 돌아봐야 하지 않나"라고 반문하며 "4대 보험료 수입은 모두 전산으로 하고 있고 체납자 징수율 성적도 좋지 않다. 기관 통합을 통해 재정 건전화를 말하기 전에 건보공단의 현재 사업인 건강관리, 장기요양보험 사업 등을 제대로 수행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보험자가 재정 관리를 위해서는 지출 관리에도 책임이 있다는 정반대 의견이 맞서고 있습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보험자가 심사와 지출을 같이 하는 게 세계 공통 분위기다. 우리나라가 기형적인 것"이라며 "심평원은 난이도가 높은 전문 심사 기구로 남고 일반 심사를 비롯해 정책 관련 위원회는 건보공단에서 관리 하도록 기능 조정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지출까지 관리하기 위해서는 '적정수가' 실현이 함께 따라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부기관 한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단순히 기관 통합만 이뤄지면 의료계 입장에서는 통제 강화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라며 "병의원이 비급여에 의존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수가는 원가 이상으로 책정해야 필수의료도 살고, 양 기관 통합도 가능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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