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전공의 없는 1인실 병원에서 시작해야

권용진 교수
발행날짜: 2022-10-17 05:30:00 수정: 2022-10-17 08:13:51
  • 서울대병원 권용진 교수

윤석렬정부의 첫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의 키워드는 ‘필수의료’였다. 지난 7월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건으로 촉발된 논쟁이다.

이미 보건복지부는 필수의료 TF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새정부의 정책과제에 필수의료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있으니 국감에서 더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대안으로 제시된 것은 ‘의과대학 증설과 공공병원 강화’가 주였다. 원인분석을 제대로 하라는 주문도 있었다.

사실 필수의료가 무엇인지 아직도 명확하게 말하긴 어렵다. 국감에서 사용된 개념은 기존의 공급이 부족해진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필수의료를 공공의료와 연결시켜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개념과 원인분석이 명확해야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데 아쉽게도 지금까지는 그런 지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사실 필수의료 공급부족은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니다. 수요의 변동에 따라 서서히 일어난 일이다. 인구가 줄고 질병구조가바뀐 것이 큰 이유이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치료법이 바뀌는 것이 또 하나의 원인이다. 이에 맞게 공급체계를 조정했어야 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수요변화를 예측하고 그에 맞춰 공급망 구조와 가격을 조정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재원은 전략으로 정부가 지원하면 된다. 이게 기본방향이다.

오히려 이런 주문에 더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은 ‘환경의 변화’다. 대책이 마련되고 시행되고 효과가 나타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최소 5년이상은 걸릴 것이다. 지금이 엄청난 변화의 시기라는 점을 감안해 그 변화를 대책에 녹여내야만 한다. 한국의료의 혁신을 위해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면 다음 두 가지는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는 선진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다인실 병실’을 없애야 한다는 점이다.

언제까지 군대 내무반 같은 병실에서 커튼을 치고 옷을 갈아입고 잠을 자야한다는 말인가? 개인정보 프라이버시 보호 논쟁이 한창인 이 시대에 가장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있는 곳이 병원 다인실이다. 선진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국격에 걸맞지 않는 정책이다. 다인실 폐지를 전제로 인력 수급계획을 만들어야 한다.

다인실이 폐지되려면 현재 병원들의 병상을 줄이거나 신축해야 한다. 그 비용은 정부가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에 맞춘 인력기준으로 필수의료 인력 논의가 돼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둘째는 전공의 없는 병원이다. 전공의는 의사지만 피교육자다. 필수인력이 아니다. 전공의가 없어도 병원은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전공의 교육에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교육자들이 진료 외에 교육에도 시간을 써야 하고 그들의 부족함을 감시하고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전공의는 병원의 필수인력이다. 전공의가 없으면 대학병원의 입원도 수술도 불가능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전공의의 유무에 따라 할 수 있는 수술과 없는 수술이 결정된다는 점이고 입원시킬 수 있는 환자와 없는 환자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전공의는 피교육자로 한 병원에서 4년동안 수련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미국처럼 연차별로 다른 병원을 돌아다니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미국에 가서 1,2년 배우고 오는 것도 허용될 필요가 있다. 전공의 노동의 대체구조가 더 큰 쟁점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입원전담전문의와 전공의 정원의 확대와 그에 따른 의사인력의 증원 아니면 전문간호사의 활용이 대안이다.

이런 변화를 전제로 상상을 한다는 것이 다가오지 않을 미래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7월 OECD가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83.5년으로 일본 다음으로 가장 길다.

자살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강지표는 상위권이었다. 수십년 만에 이런 건강성과를 이룬 나라는 없다. 적은 재정으로 이만한 성과를 이뤘다면 의료계나 정부나 모두 칭찬받을 만하다. 이제는 국민들의 인식전환과 함께 의료체계의 구조조정을 해야 할 때다.

수요변화로 촉발된 필수의료 논쟁이 그 대책을 쉽게 마련하지 못하는 원인은 여기에 있다. 의사나 간호사나 그 어떤 병원 종사자도 더 이상 ‘국민의 건강지표 올리기’에 자신의 삶을 갈아 넣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선진 대한민국의 국민들 또한 마찬가지다. 5년후 10년후에도 3-4명이 한방에 입원해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갈등이 불가피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적 합의를 이루고 긴 안목으로 대책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의료계도 선택을 해야 한다. 기승전 수가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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