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삶 '연극'에 빠진 비뇨의학과 의사 "삶의 활력"

발행날짜: 2023-02-27 05:10:00 수정: 2023-03-02 08:09:34
  • 고영수 타워비뇨의학과 원장
    "연기 경험, 환자 마음 읽는 데 큰 도움"

매주 수요일, 저녁 6시 30분.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바른세상아트홀은 시끌벅적해진다.

노란색의 유니폼을 입은 택시 운전기사, 화려한 용무늬가 그려진 셔츠를 입고 팔에 문신이 가득한 어깨 형님들, 그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흰색 중절모에 흰 정장을 차려 입은 중년의 신사. 살벌한 욕설을 주고받는 어깨들 사이에서 택시 기사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들은 조명이 켜진 무대 한 중간에서 동선을 맞춰보고 대사를 주고받으며 연극 '택시 드리벌'의 한 장면을 만든다.

극단 고삐 단원들의 <택시드리벌> 연습 모습.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상우 건국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조재구 고대구로병원 이비인후두경부외과교수, 고영수 타워비뇨의학과원장, 유동희 새롬이비인후과원장.

연습을 하고 있는 이 배우들의 정체는 모두 의사와 간호사다. 고려의대와 간호대 연극 동아리 '고삐'에서 활동했던 졸업생(OB, Old boy)팀이다. 예비 의사, 간호사였던 이들은 사회에 나와 전문가로서 역할을 하다 2018년 한씨연대기(연출 김미경)를 공연했다.

이후 약 4년 만에 고삐의 OB는 회장인 서동원 바른세상병원장을 중심으로 다시 뭉쳤다. 지난해 9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매주 수요일 저녁에 모여 약 5시간 동안 맹연습을 했고, 다음달 4일로 예정된 첫 공연이 어느덧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택시 드리벌은 영화감독 장진의 작품으로 39세 노총각 택시 기사에게 이틀 동안 벌어진 이야기를 담은 희극이다. 2015년 주인공으로 열연하기도 했던 김민교 배우가 연출로 나서면서 의사 배우들의 연기에 힘을 불어넣어 줄 예정이다.

극단 고삐에서 선보이는 '택시 드리벌'의 주인공 덕배역은 서동원 원장과 고영수 타워비뇨의학과원장(51)이 더블 캐스팅으로 맡는다. 이들을 포함해 의사와 간호사는 총 15명이 출연한다.

고 원장은 "매년 공연을 하자고 목표를 잡았는데 연습부터가 쉽지 않았다. 학교에 다닐 때는 1년에 2번씩 공연을 했고 방학 때 매일같이 모여 집중적으로 연습을 했다. 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일을 하다 보니 다 같이 모이는 것조차 힘들었다"라며 "7개월 연습을 해서 8회 공연을 하는 상황이니 매년은 힘들지 않을까"고 반문했다.

고영수 원장은 연극 <택시드리벌>에서 주인공 덕배역을 맡았다.

실제로 고삐 OB 멤버들은 병원장부터 대학병원 교수, 병원장, 개원의, 간호사 등 각자 다양한 위치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연습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지사. 그럼에도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연습에 임하는 이들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밝았다. 연극에 쓸 소품과 의상도 각자 배역에 맞게 직접 챙기며 의견을 나눴다. 택시 운전기사 역할인 고 원장도 노란색 택시 유니폼과 1980년대에 나온 '솔 담배'를 직접 마련했다.

고 원장은 "사회인의 입장에서 연극을 시도하니 확실히 역할이 주는 의미가 학생 때와는 다르게 다가온다"라며 "학생 때는 그냥 주어진 역할을 단순히 해내는데 그쳤다면 사회를 경험하고 세월이 흐른 만큼 인물의 입장을 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됐다. 20대에서 50대가 됐으니 삶의 경험치가 30년이 쌓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주인공을 맡은 고 원장은 1시간 40분 정도의 공연시간 동안 1시간 분량의 대사를 외우는 것도 고역이다. 암기도 암기지만 2시간 가까이 극을 이끌어 가야 하는 만큼 체력관리도 필요한 상황. 고 원장은 아침마다 하는 운동 시간을 1시간 더 늘렸다.

그는 "대사량이 엄청나다. A4 한쪽에 달하는 분량도 있다"라며 "김민교 연출은 감정을 입히면 대사는 저절로 나온다고 하지만 연기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어렵더라. 일단 암기를 하고 감정이나 리액션을 입혀가고 있다"고 말했다.

예과 1학년 때부터 '고삐'에 발을 들여 연극의 맛을 경험한 고 원장은 세월의 풍파를 꾀나 겪은 뒤 오랜만에 무대에 오른다. 그는 연극을 '또 다른 삶'이라고 표현했다.

<택시드리벌> 연출과 출연진

고 원장은 "너무나 뻔한 이야기지만 연극은 나의 삶에 활력소다. 내 진짜 캐릭터를 만드는 데 영향을 줬다"라며 "관객 앞에 서는 경험을 하다 보니 세상에 무서울 게 없어졌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전공의 시절 주변에서 돌아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앞장서서 부당함을 이야기했다"라며 "일례로 인턴일 때는 병원의 부당함에 항의하기 위해 인턴 파업을 4일 정도 주도했고, 레지던트 1년차 때도 부당한 사안에 맞서 의기투합 했다. 2년차에는 의약분업 파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대중을 움직일 때 앞에 서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연극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연극의 경험은 고 원장의 역할을 단순히 주인공에서 끝나지 않게 만들었다. 그는 각종 '기획'도 도맡고 있다. 이번 택시드리벌 연극은 3주 동안 총 8회의 공연을 하는데, 공연장 입구에 있는 전시실에서 권두현 작가의 회화 전시회도 함께 연다. 이 또한 고 원장이 주도했다. 전시 공간에 깔리는 배경음악도 통상적인 클래식이 아니라 택시드리벌 연극의 소리를 활용할 예정이다.

또 환자 진료에도 영향을 크게 미치고 있다고도 했다.

고영수 원장은 "연기 경험은 환자들 마음을 읽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라며 "환자가 들어올 때부터 어떤 사람인지 느낌이 온다. 과거 연극에서 경험했던 배역에서 말투 등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대응했을 때 환자의 만족도가 높을지에 대한 감이 먼저 온다"고 전했다.

한편, 극단 고삐의 '택시 드리벌'은 180석 규모의 바른세상아트홀에서 다음 달 4일 토요일 오후 6시 공연을 시작으로 주말마다 총 8회가 이어진다. 마지막 공연은 3월 18일 오후 6시다.

택시 드리벌 공연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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