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연구원, 15개 근골격계질환에 치료 불충분…"잘못된 디자인"
지원사격 나선 해외학회…"학문적 진실 어긋나는 황당한 일" 지적
최근 보험사들이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보고서를 근거로 체외충격파치료 압박에 나서면서 의료계 반발이 커지고 있다. 학계 역시 해당 연구의 디자인이 부적절하다며 이의를 제기하는 상황이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이 지난해 발표한 2022년 의료기술재평가보고서가 뒤늦게 논란이 되고 있다. 이후 보험업계가 체외충격파치료 보험금지급 기준 강화를 검토하고 있으며, 일부 보험사들이 해당 연구를 인용해 치료 자체를 막으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탓이다.
이 보고서는 의료기술 재평가의 일환으로 24개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체외충격파치료 권고결정 및 최종심의에 대한 내용이다. NECA는이중 5개 남짓의 질환에 대해서만 '조건부 권고'하고 나머지는 '불충분' 등급으로 평가했다.
이중 조건부 권고 질환은 ▲석회성 어깨병증 ▲대전자 동통증후군 ▲근막동통증후군 등이며 ▲족저근막염 ▲아킬레스건염과 관련해선 이를 제외한 발·발목 건병증은 불충분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외에 ▲비석회성 어깨병증 ▲내측상과염 ▲무혈성 괴사 ▲내전근 건병증 ▲거위발 건병증 ▲비골근 건병증 ▲듀피트렌구축 ▲드퀘르벵 병 ▲방아쇠 수지 ▲발바닥 섬유종증 ▲근육 염좌 ▲골수 부종 ▲오스굿씨 병 ▲경골 스트레스 증후군 등의 질환에는 치료 효과를 입증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학계는 해당 연구가 충격파치료 효과를 아주 부정하고 있지 않다고 봤다. 특히 관련 연구에서 조건부 권고는 최고 등급이나 다름없어 유효성이 입증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불충분 등급을 받은 질환에서도 마찬가지다. 관련 임상 연구가 없을 뿐 실제 효과는 주사 등 침습적인 치료와 비교했을 때 더 비슷하거나 더 나은 수준이라는 것. 충격파치료 자체는 환자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에서도 긍정적이다.
충격파치료는 보존적인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권고하지 않음' 등급을 받은 질환도 없는 만큼, 다른 치료보다 효과가 떨어지지 않는다면 유효하다는 게 학계의 분석이다.
■보험업계, 보험금 지급 미루고 가입자에 "권고 어렵다" 공지
하지만 공공기관 보고서에 충격파치료를 조건부 권고하거나 불충분하다고 명시되면서 보험업계 악용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 같은 단어 선택은 실제 효과와 달리 해당 치료가 부적절하다는 인식을 주기 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현장에선 보험업계가 기존보다 심사를 까다롭게 해 보험금 지급을 지연시키거나 NECA 보고서를 인용해 환자의 치료 접근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다.
NECA 보고서가 법적으로 보험금 지급 거절 사유가 될 수 없는 만큼, 그 대신 환자 불안감을 증폭시키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게 학계 분석이다.
실제 한 손보사의 보험금 지급 안내문을 보면 "NECA 연구결과 체외충격파치료는 임상적으로 효과성이 확인되지 않아 권고결정이 어려운 불충분 등급"이라고 명시돼 있다.
다른 손보사 역시 "체외충격파 등을 반복·지속적으로 치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증상의 개선, 병변 호전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 현장조사 및 의료자문이 진행 될 수 있다"며 "체외충격파 등 재활물리치료 관련 보험사기에 연루돼 처벌을 받는 위법사례가 늘고 있으니 각별한 주의 부탁드린다"고 공지했다.
특히 보험업계는 올해 충격파치료 청구 건을 조사해 과잉진료 의심 사례를 찾고, 이를 토대로 보험금 지급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보험업계는 일정 횟수 이상의 치료를 받으면 의사소견서나 의료자문을 요구하겠다는 방침인데, 지급 거절 근거로 NECA 보고서가 인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이와 관련 한 정형외과 개원의는 "보험사들이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 몇개월씩 보험금 지급을 늦추면 환자들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환자가 특정 치료에서 이런 경험을 하면 보험금이 거절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이를 피하게 된다"며 "병원 입장에서도 환자들에게 이로 인한 민원을 받으면 위축돼 치료를 덜하게 된다. 현재 충격파치료에서 이런 흐름을 보이는 것 같은데 실제 주변에서 충격파치료를 받는 환자가 줄었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신빙성 논란 불거진 학계…"연구 방법 자체가 잘못됐다"
NECA 연구의 신빙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충격파치료 효과에 긍정적인 문헌이 다수지만 NECA는 연구 근거로 부정적인 논문을 더 많이 채택했다는 것.
충격파치료는 1990년대에 도입된 이후 기술 진보와 치료 프로토콜 개선을 거듭해왔는데 NECA가 채택한 논문 중 도입 초기 내용이 많다는 설명이다.
또 NECA은 근골격계질환 관련 진료과목 전문의들로 소위원회를 구성해 심의를 맡겼는데, 그 구성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 대한충격파치료학회는 소위원회 참여 위원을 파악한 결과, 충격파치료를 공부하거나 직접 시행한 경험이 없는 이들로 구성됐다고 밝혔다.
소위원회 구성을 보면 정형외과 전문의 2명, 재활의학과 전문의 2명, 마취통증의학과와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각각 한 명씩 들어가 있는데 이들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유관학회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 또 위원 다수가 수술치료를 주로 하는 교수들이어서 충격파치료에 전문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충격파치료학회 김재희 총무이사는 "연구의 실험 방법 자체가 잘못됐다고 본다. NECA가 인용한 논문 중 1990년대 초반 것이 있는데 30년이 지났는데 당연히 지금과 큰 차이가 있다"며 "당시엔 효과가 없었을지라도 지금에 와선 더 좋은 장비와 개선된 프로토콜로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 이런 부분이 반영되지 않았고 소위원회 구성 역시 충격파치료에 긍정적인 위원과 그렇지 않은 위원 간의 균형이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NECA 해명에도 반발 지속…세계학회까지 나서
NECA은 이 같은 지적과 관련해 특별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참고문헌 채택 및 위원 구성 절차를 고려했을 때 외부에서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NECA 관계자는 "신의료기술평가는 10년 넘게 진행해왔고 절차상 우려가 나올 수 있는 부분에 대해 국회의 검증을 받아 신뢰성 부분에선 걱정이 없다"며 "연구위원과 평가위원 구성은 임의로 하는 게 아니라 600~700여 명 규모의 재평가기획자문단에서 무작위로 추첨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개입할 요소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추첨된 인원이 어떤 이들인지 우리도 알 방법이 없어 편향 조사가 이뤄질 수 없다. 관련 의혹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뜻"이라며 "논문 선정 역시 두 명이 검토자가 독립적으로 선별·합의하는 절차를 거친 뒤 재평가위원회를 통해 최종결정하기 때문에 편향될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에도 학계 반발은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해외학회까지 나서 지지성명을 내는 등 지원사격에 나선 상황이다. 해외에선 이미 효과를 인정받아 상용화된 치료가 불충분 등급으로 나온 경우가 더러 있다는 것.
일례로 외상과염의 경우 2002년 미국 FDA 승인을 받고 일본에서도 충격파치료 대상으로 인정받는 질병군인데도 NECA 연구에선 불충분 등급을 받았다.
이와 관련 김 총무이사는 "세계충격파치료학회 등 국가별 학회들이 이번 사태에 황당함을 표하며 본 학회에 지지성명을 보내오고 있다"며 "학문적 진실과 어긋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으며 이를 해결하는 데 본인들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어 "충격파치료의 유효성은 이미 검증됐으며 전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실이다. 전 세계 충격파치료학회들이 관련 최적의 치료 프로토콜을 찾아 나가는 단계"라며 "이에 본 학회에서 NECA 연구에 대한 반박자료를 준비하고 있으며 세계학회들도 공동 대응을 약속한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특히 독일·일본에서는 아예 충격파치료 교과서가 편찬된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공공기관에서 이를 부정하는 보고서가 나오면서 반발이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는 것.
■국제충격파치료학회 개최…"세계적 근거 제시할 것"
세계학회 인사들이 모이는 국제충격파치료학회가 오는 7월 우리나라에서 개최 예정인 만큼 관련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국제충격파치료학회 조직위원회 박광선 사무총장 역시 NECA 연구에서 전문가 의견 수렴과정에 아쉬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보험사가 이를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다면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라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박 사무총장은 "근골격계질환에 무작정 충격파치료를 시행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단순히 의료비를 과다 지출했다는 이유만으로 실손보험 기준을 강화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특히 NECA 보고서를 인용해 충격파치료의 근거가 부족하니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는 7월 대구에서 세계적인 석학이 모여 학회를 진행해 국제적으로 충격파 치료가 얼마만큼의 근거를 갖고 진행되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라며 "국제적으로 충격파치료가 어떻게 인정받고 있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소개한다면 국민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정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