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과' 실행 옮기는 소청과…내년 5월 일반진료 전환 본격화

발행날짜: 2023-04-01 05:30:00
  • 지금도 소청과 대기시간 1시간인데…"수백 개 더 사라진다"
    마음 돌아선 개원의들…"단순 보상책으로는 붕괴 못 막아"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트레이닝센터 운영으로 회원들의 일반진료 전환을 돕겠다고 밝히면서 소아청소년과 개원가 붕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계획이 현실화한다면 경증 소아 환자가 2·3차 의료기관으로 몰리면서 전체 소아의료전달체계가 마비될 것으로 보인다.

31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이르면 오는 5월 트레이닝센터를 개설해 회원들에게 일반진료 관련 교육을 제공할 계획이다. 이는 지난 29일 이뤄진 소아청소년과 폐과 선언의 후속 조치다.

소아청소년과 개원가의 일반진료화 선언으로 전체 소아의료전달체계 붕괴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고질적인 저수가와 병·의원 운영비 상승으로 일반진료를 선택하는 회원이 늘어나면서 의사회 차원에서 이를 지원하기 위함이다. 개설 시기를 5월로 잡은 것은 소청과 개원가 비성수기와 센터 운영을 준비하는 기간을 고려한 결과다. 3~4월 소청과 성수기가 끝난 직후부터 교육을 시작한다는 것.

교육은 오프라인 형태로 상시운영되며 만성질환·미용·피부·통증 등의 커리큘럼을 기본으로 추후 회원이 원하는 강의를 추가한다는 방침이다.

소청과의사회는 이를 통해 1년이면 회원들이 일반진료 역량을 갖출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 5000여 명의 회원 중 50%가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는데, 실제 개원 사례가 이어진다면 참여율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소청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남아서 소아진료를 하려는 회원도 다른 회원들이 일반진료로 수익성을 개선하는 상황을 보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라며 "이런 흐름으로 1년이면 소청과 개원의들의 일반진료 역량이 확보될 것으로 보인다. 의사회 차원에서 학원을 차리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미 진행 중인 일반진료화…"성인진료하면 못 돌아가"

소청과 개원가의 일반진료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적어도 5년 전부터 이 같은 움직임이 계속돼왔고 이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회원 민의가 모이면서 소청과의사회도 행동에 나선 상황이다.

전국 소아청소년과의원 현황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8년 말 2221개소였던 소청과 의원은 지난해 말 2135개소로 감소했다.

지난 5년간 600여 개의 소청과 의료기관이 폐업한, 반면 개업한 곳은 500여 개에 그친다는 뜻이다. 이렇게 사라진 소청과 병·의원 의사들은 봉직의로 취직하거나 일반진료로 전환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개원이 활발한 수도권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같은 기간 서울특별시에서 폐업한 소청과 의원은 53개다. 소청과 간판을 유지하되 일반진료 비중을 늘린 곳도 많다.

이와 관련 안산의 한 소아청소년과 원장은 "이미 많은 소청과 의사들이 미용·내과·통증학회에 나가고 있다. 소아는 보호자 상담도 필요하고 진료·접종 등에 훨씬 많은 보조인력이 필요한데도 수가가 청구되지 않는 상담이 많다"며 "반면 성인진료는 너무 편하다. 일반진료를 하면 이전으로는 못 돌아간다. 안산만 해도 3곳의 소청과가 일반진료로 전환했고 본원도 30%는 만성질환자를 본다"고 말했다.

■소청과 수백 곳 더 사라질 듯…"진료 대란서 진료 종말로"

이 같은 기조에 지원이 더해진다면 보수적으로 잡아도 수년 안에 수백 곳의 소청과 의원이 사라질 것이라는 게 소청과의사회의 관측이다. 문제는 이제까지 100개 남짓의 소청과 의원이 사라졌을 뿐인데도 전국적인 소아 진료 대란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소청과 의원에서도 소아 진료를 받기 위해 30분에서 1시간을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경증소아환자가 2·3차 의료기관으로 넘어가면서 전체적인 로딩이 심화했다.

이에 빠른 진료를 위해선 병·의원 오픈 시간 전부터 밖에서 대기해야 해 '오픈런'이라는 단어까지 사용되는 실정이다.

병원계는 소청과의사회 계획이 실현될 경우 대기시간이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경증소아환자를 소화해야 할 개원가가 무너지면서 2·3차 의료기관까지 연쇄적으로 붕괴할 것이라는 우려다.

특히 소청과 의원은 야간·휴일 진료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다른 진료과보다 의료전달체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다.

이와 관련 우리아이들병원 정성관 이사장은 "경증소아환자는 1차 의료기관에서 담당하는 것이 맞지만 현 상황을 보면 이런 환자들이 중등증 소아환자와 함께 병원으로 들어오는 실정"이라며 "병원 입장에선 입원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경증환자가 늘어나니 의료진 피로도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소청과 개원가가 일반 진료과로 전환된다면 결국 더 많은 경증 아이들이 병원으로 올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되면 콧물약만 타가면 되는 아이들이 1~2시간씩 대기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마음 돌아선 개원의들…"일반진료화 막을 강력대책 시급"

소청과 개원의들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계기는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다. 복지부는 ▲중증소아의료체계확충 ▲소아진료 사각지대 해소 ▲적정보상 등을 통한 의료인력 확보 등을 큰 가지로 세부적인 대책을 내놨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소아청소년과 폐과 선언 기자회견 현장

하지만 지원이 2·3차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데다가 그마저도 충분치 않아 병·의원 운영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라는 것. 이밖에 ▲민·형사 책임에 대한 대책 부재 ▲인력 공백 대책 없는 시설 확충 ▲행정부담 과중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에 복지부는 소청과의사회 폐과 선언 이후 즉각 긴급대책반을 구성하고 정책논의를 제안하는 등 달래기에 나섰지만, 개원의들의 마음은 돌아선 모습이다.

이와 관련 임 회장은 "폐과 선언은 회원 민의를 수차례 확인한 뒤 진행한 사안이다. 이미 선제적으로 일반진료로 전환한 회원이 많고 다들 너무 만족해하고 있다"며 "정부 정책으로 소청과 상황이 반전된다고 해도 다시 소아진료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이 없다고들 한다. 이는 육체적·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강수가 정책으로는 상황 반전이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소청과 전문의 부족은 종별구분 없이 모든 의료기관이 겪고 있는 문제여서 수가만 높인다면 상급 의료기관으로의 인력 유출이 심화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전체적인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해 수가 외적으로도 소청과 전문의들이 각 종별에 머무를 이유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

이와 관련 정 이사장은 "환자가 몰리는 만큼 더 많은 의료진이 필요해지고 그렇게 되면 인력 확보에서도 경쟁이 붙을 수밖에 없다"며 "1차 의료기관도 야간·휴일 진료를 하려면 봉직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의료전달체계를 정확히 세우지 않으면 아무리 수가를 올린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만큼, 늦지 않게 전체 소아의료전달체계가 살아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기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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