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초음파 허용 판결,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들 고민은?

발행날짜: 2023-04-27 05:30:00
  • 환자 선택권 확대했다 과실로 이어졌을 때 책임 문제 "한의사 몫"
    한의계 "환자는 병의원 치료 효과 없으면 한의학 찾는다"

한의사의 초음파 사용을 허용하는 취지의 대법원 판단은 법조계도 술렁이게 만들었다. 의료소송에 관심을 갖고 있는 변호사로 구성된 한국의료변호사협회(이하 의변협)는 해마다 보건의료 분야 주요 판결을 선정하는데 지난해 12월 22일 선고된 한의사의 초음파 의료기기 사용 관련 대법원 판단도 여기에 들어갔다.

나아가 의변협은 26일 저녁 대법원 판결문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의료계와 한의계 의견을 들으며 함께 고민하기 위한 시간을 마련했다.

한국의료변호사협회는 26일 저녁 서울변호사회관에서 한의사 초음파기기 사용 대법원 판결에 대해 토론했다.

한의사인 P원장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환자의 신체 내부를 총 68회 촬영했다. P원장은 한의사가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했다는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대법원은 벌금형 판단을 내린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에 대해 세 가지의 새로운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지 ▲한의사가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면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지 ▲한의학적 의료행위의 원리에 입각해 이를 적용 내지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한 것임이 명백한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한의사가 한의학적 진단을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도 된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한의대에서 영상의학 및 진단 관련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대법원은 한의과 대학에서 전공필수로 진단학과 영상의학 등을 배워 실무교육이 상당히 이뤄지고 있고 한의사 국가시험에도 영상의학 관련 문제를 계속 출제해 교육을 지속적으로 보완, 강화하고 있다고 봤다.

김경수 변호사는 대법원 판단을 정리하고 의견을 제시했다.

김경수 변호사(법무법인 바른)는 "학교에서의 교육과 국가시험에서의 출제를 근거로 허용한다면 의학, 치의학, 한의학 모두에서 서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라며 "교육 및 평가가 면허 범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어느 정도까지의 교육 및 평가로 충분한가의 문제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대법원은 초음파 진단을 청진기에 비유하고 있는데 청진기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적절한지 잘 모르겠다"라며 "의료기기 자체의 위험성을 비교한 것으로 좋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영상의학회 김진환 법제이사는 한의대에서 배우는 진단학과 영상의학은 차원이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김 이사는 "초음파 기기 자체가 범용성 있고 대중성, 기술적 안정성을 갖고 있다고 해서 의료 진단에서 안전성 있다고 볼 수 없다"라며 "의료에서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은 시술자의 전문성과 지식에 매우 의존적인 검사이기 때문이다. 초음파는 전신, 다양한 장기에서 다양한 질환을 다양한 방법으로 진단한다. 같은 질환이라도 초음파 소견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의대 교육에서 영상의학은 해부학을 기반으로 각종 영상 진단법을 가르친다"라며 "임상적인 소견과 함께 통합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능력을 입체적으로 가르친다. 의대 교육 후 전공의 수련을 거치고 초음파 검사 인증의와 교육 인증의를 따야 하고 지속적으로 질관리를 한다. 한의대에서 영상의학만 배워서 진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잘라 말했다.

의료소비자 선택권 확대, 초음파 마케팅 수단 경계

대법원은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도 의료소비자의 '선택'권 확대 영역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범용성, 대중성, 기술적 안전성이 담보되는 초음파 진단기기를 한의사가 사용토록 허용하는 것은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 선택권을 합리적인 범위에서 보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보건위생상 위해의 우려 없이 진단이 이뤄질 수 있다면 자격이 있는 의료인 모두에게 그 사용 권한을 줘야 한다는 쪽으로 의료법 제27조 1항(의료인은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을 해석한 것.

대한한의사협회 역시 '소비자의 선택권' 관점에서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한홍구 법제부회장은 "30년 전만 해도 맥을 보고 복진하고 환자 얼굴과 혈색을 보고 진단을 내렸는데 주관적 요소가 많았고 객관성이 부족했다"라며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진단의 객관화를 이룰 수 있게 됐다. 공급 독점을 완화하면 의료소비자가 혜택을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의사들은 조선시대 사람이 아니라 과학지식과 합리화로 무장된 현대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다"라며 "현대과학기술 성과물도 한의학을 포함한 사회 모든 영역에서 사용하고 활용해야 한다. 한의사도 과학적으로 응용 개발된 진단의료기기를 사용하는데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서 변호사는 이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했다. 그는 "진단에 필요한 정보는 많을수록 좋을 수도 있다. 데이터는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조금이라도 더 낫기 때문에 대법원은 앞으로도 일정한 한계 안에서 다른 진단적 의료기기 사용도 허용하는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다만 한의학에서 현대의학의 의료기기를 진단에 사용하면 환자 입장에서는 현대의학의 질환에 대해서도 진단하는 것을 기대하거나 만약 한의사가 진단을 하지 못했을 때 그 자체를 과실로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의사가 의료법상 허용되는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해 진단행위를 하고 그 과정에서 환자에게 나쁜 결과가 생겼다면, 환자별로 진단하거나 의심할 수 있었던 병변을 놓치는 등의 과실이 있었는지 판단해야 한다"라며 "그 과실 판단은 적어도 현대의학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왼쪽부터 김진환 영상의학회 법제이사, 김경수 변호사, 이미영 의약품의료기기안전위원장(좌장), 한홍구 한의협 법제부회장

대법원이 한의사의 초음파 사용 허용 판단을 내렸지만 실제 한의계에서 초음파의 범용적인 사용은 별개의 문제다. 한의사의 초음파 사용은 건강보험 제도권 안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

변호사들도 대법원 판단을 근거로 한의사들이 초음파 사용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경계했다.

황다연 대외협력위원장(법무법인 혜)은 "권위의 법칙을 이용한 마케팅 기법이 있다"라며 "현재 한의사가 초음파를 사용하더라도 수가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한약을 짓는데 마케팅 비용에 녹일 수 있다. 초음파 사용이 마케팅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소비자에게는 권위의 법칙에 의한 설득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마케팅이든 아니든 초음파를 어떻게 쓸까 하는 것은 의료인의 판단 문제"라며 "대법원은 의료기기 자체가 위험하지 않다면 허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단을 했는데 이를 근거로 기기를 쓰더라도 책임이 따른다는 점은 분명하다. 초음파를 쓰는 만큼의 책임을 져야 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한다"고 의견을 더했다.

셀프측정 의료기기 사용 등 한의계가 꿈꾸는 진로 확장

법조계와 의료계의 우려 섞인 시선을 뒤로하고 한의계는 "대법원 판단이 시대 변화에 따른 올바른 판결이며 보다 진단의 객관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보이고 있는 상황. 한홍부 부회장의 발표에서는 대법원 판단을 근거로 한 한의계의 진료 확장에 대한 생각도 엿볼 수 있었다.

한의사의 셀프측정 의료기기 사용 가능성, 의사의 필수의료 영역 유입을 위한 한의사의 미용성형 분야 진출 등을 제시한 것.

한 부회장은 "환자들은 서양의학 치료를 받고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효과가 없을 때 한의학을 찾는다"라며 "한의학은 환자에게 치료 기회를 한 번 더 줄 수 있다"고 말하면서 한의원에서 일반인이 사용할 수 있는 셀프측정 의료기기 사용의 위법성, 진단 영역에서 한의사가 '상세불명의 추간판장애' 같은 의학적 진단명을 작성해 진단서를 발급하는 것의 위법성 등에 대해 법조계에 질문을 던졌다.

또 "의료자원은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필수의료에 대한 수가 현실화도 필요하지만 비필수의료, 간단한 미용에 관한 진료 영역을 중첩 영역으로 해석해 한의사나 치과의사가 시술 가능하게 하면 파급효과로 피부미용 영역에 몰려있던 의사들이 필수의료에 조금이라도 더 배치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소개하기도 했다.

초음파는 질병의 '확진'이 아니라 진단을 위한 보조적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함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한 부회장은 "초음파를 사용함으로써 오진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라며 "일례로 위가 아플 때 명치 부분이 아프다고 하면 환자 말만 듣고 위가 부었다고 생각하는데, 초음파를 보면 위벽 두께를 알 수 있다. 보통 위벽 두께는 3mm인데 그 이상이면 위가 부은 것"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위벽 두께를 확인하면서 위가 부어서 아픈지 과학적, 객관적 데이터를 얻는 것"이라며 "한의원에는 이미 간경화를 확진 받은 환자가 오는데 초음파를 통해 한의사의 치료 효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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