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명 의료경제팀 기자
요즘 의료계 최대 화두는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의 향방이다. 국회를 통과하고 대통령 거부권 행사 결정만 남아 있는 상황에서 정부 및 국회 관계자를 만나서 종종 듣는 이야기가 있다.
대한의사협회가 투쟁을 하겠다며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었는데 현재 의료계를 지배하고 있는 법안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와 이야기해야 하냐는 것이다. 나아가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나고 싶은데 만남 자체가 어렵다는 우는 소리도 나왔다.
비상대책위원회의 사전적 정의는 '중대한 일이 일어나거나 일어날 우려가 있을 때 소집되는 조직'이라는 뜻이다.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는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게 '중대한 일'이라고 판단, 선거까지 거치면서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박명하 비대위원장은 당선 직후 언론과 인터뷰에서 '투쟁'을 앞세웠다. "투쟁에 최우선을 두고 있다. 스스로를 희생하고 투쟁의 열기를 모아 어떻게든 성공시키겠다는 열망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후 박 위원장은 국회 앞에 천막을 치고 철야 농성에 돌입했고,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법이 올라가는 것을 반대하며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그의 단식 투쟁은 본회의 부의가 가결되면서 3일만에 끝났다.
이후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모습이다.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이 결국 국회를 통과했고, 대통령 거부권에만 기대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 이 와중에 의사면허취소법은 거부권 대상에서 빠질 수도 있다. 어찌 보면 '투쟁'이 더 필요한 상황이 됐다.
실제로 의협은 13개 보건복지의료연대와 투쟁 수위를 높이고 있다.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과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이 단식투쟁을 하다 병원에 실려갔다. 박태근 대한치과의사협회장이 투쟁 바통을 이어받았다. 지난 9일에는 간무사가 앞장서 연가투쟁에 나섰고, 11일에는 치과 개원가 중심으로 휴진 파업이 이뤄졌다.
13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지난 8일 2차 부분파업을 예고하는 대국민설명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의료계를 대표해서는 이필수 의협 회장이 중심에 있었고, 박명하 위원장은 가장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보건복지의료연대가 함께 움직이는 형태를 띠고 있다보니 상대적으로 비대위의 투쟁 활동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비대위도 자체적으로 의사를 대상으로 파업 참여 여부 등의 설문조사를 진행하는가 하면 비용을 써서 대국민 설득을 위한 일간지 광고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설문조사 결과는 공표하지 않았고, 파업 참여를 독려하는 강력한 메시지도 보이지 않는다.
악법을 막겠다고 비대위를 따로 구성한 만큼 투쟁 관련 동력은 여기에 몰아주는 게 당연한 수순이지만 '보건복지의료연대'에 의협이 속해 있다는 이유로 집행부가 투쟁에 앞장서다 보니 비대위 존재의 이유가 약해지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의협 대의원회는 지난달 열린 정기대의원총회에서 비대위 활동 기한을 연장하기로 했다. 종료 시점은 대의원회 운영위에 위임했다. 이 때 비대위는 투쟁 관련 자체 제작 영상을 제작, 상영하며 대의원들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박 위원장은 "강력한 지지를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협상보다는 투쟁을 하겠다는 박명하 위원장이 당선 일성이 무색하게도 투쟁을 이끄는 리더의 모습이 약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간호법 통과를 필사적으로 막겠다는 의지로 물밑에서 협상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 "협상은 없다, 수정안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던 박 위원장의 강성 발언으로 봤을 때 협상은 염두에도 두지 않는다고 보인다. 그렇다보니 실제 국회와 복지부에서는 의료계를 위협하는 각종 법안 수정의 기회마저 사라졌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간호법의 향방을 결정지을 대통령 거부권에 대한 논의 일정은 오는 16일로 예측되고 있다. 이때까지 법안 통과에 반대하는 조직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높아야 하는 시점이다. 투쟁을 위해 만들어진 비대위의 목소리가 커져야 하는 때이기도 하다. 의협 집행부 역시 비대위가 투쟁 전면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13개 보건의료연대 안에서도 비대위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측면 지원을 해야 한다. 특히 "몸을 던져 악법을 막아내기 위해 선봉에 서겠다"고 이야기했던 박 위원장은 리더십을 누구보다도 십분 발휘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