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중 의사 인력 수급추계 전문가 포럼 갖고 논의 본격화 예고
의협도 "인력 확대 문제 논의할 때 됐다" 공감…필요시 설득 의지도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의사 인력 확대'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줄곧 강경 반대를 외쳐왔던 의료계가 '증원'이라는 대명제 동의의 뜻을 표시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대한의사협회와 8일 서울 콘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열린 제10차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사 인력 증원에 대한 문제를 의제로 꺼냈다.
복지부에서는 이형훈 보건의료정책관을 필두로 차전경 보건의료정책과장, 송양수 의료인력정책과장, 임강섭 대외협력팀장이 참석했다. 의협에서는 이광래 인천시의사회장(전국시도의사회장협의회장)을 단장으로 이정근 상근부회장, 박진규 부회장, 서정성 총무이사,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이 자리했다.
복지부와 의협은 2020년 젊은의사 단체행동 당시 코로나19가 안정화됐을 때 의사인력 증원 문제에 대해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약 3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 코로나19가 엔데믹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복지부는 의사인력 증원 문제를 논의 테이블에 올렸다. 재논의를 3년 전 약속한 만큼 의협도 더 이상 '거부'만을 외칠 수는 없는 상황.
3시간에 걸친 격론 끝에 양 측은 의사인력 재배치와 확충에 대해 합의점을 찾았다.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적정한 의사인력 확충 방안 논의 ▲확충된 의사인력이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로 유입될 수 있는 방안 마련 ▲전공의 수련 및 근무환경 개선방안 마련 등 크게 세 가지에 대해 합의했다.
세부적으로는 ▲미래 의료수요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필요인력 수급 추계 ▲의사인력 수급 모니터링 등 객관적인 사후평가를 통한 정원 재조정 방안 마련 ▲이를 위해 의사인력 수급추계 전문가 포럼 개최 ▲확충된 의사인력이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로 유입되는 구체적‧종합적인 실행방안을 마련하고 철저하게 이행 ▲의료사고에 대한 법률 제정 등 법적 부담 경감방안 마련 ▲근로시간 단축, 연속근무 제한 등을 포함한 개선방안 추진 ▲전공의 1인당 적정 환자 수 추계 및 단계적 감축 ▲전공의 수련교육 내실화를 위한 제도적 지원방안 마련 ▲전문의 중심 의사인력 운영 개선방안 마련 등을 약속했다.
의사인력 확충에 대한 정부 기조는 의사인력 증원 관련 현안 등을 관장하는 임인택 의료정책실장을 직위해제하며 보다 강경하게 바뀌는 분위기다. 조규홍 장관은 직접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의사 증원 의지를 재차 강조하며 2025학년도 정원에는 반영하겠다는 구체적인 시점까지 제시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부족, 응급실 뺑뺑이 등 필수의료 인력 부족 문제가 사회적으로 화두가 되면서 정부는 모든 사안을 '의사인력 부족'과 연관 짓기 시작하며 의료계를 압박해왔다.
이형훈 보건의료정책관도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사 수 증원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은 경증환자로 인한 응급실 과밀화, 응급처치 이후 배후 진료 부족이 주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응급의료시스템의 혁신과 의사인력의 확대가 뒤따라줘야 한다"라며 "우리나라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OECD 최저 수준이다.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와 이에 따라 늘어나는 의료수요와 비교해 볼 때 의사 수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복지부가 파악하고 있는 해결책은 의료전달체계를 개혁하고 전문의 중심으로 필수의료를 재편해 나가야 한다는 것.
실제 복지부는 의협을 향해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라는 메시지를 여러 번 던졌다. 지난 3월 말에 열린 5차 협의체에서 이형훈 정책관은 "정총은 1년에 한 번 의협 정책을 논의하는 중요한 자리인 만큼 의료인력 양성을 위해 전문가 단체로서 심도 있게 논의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후 6차, 7차 협의체에서도 복지부는 의사인력 증원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이번 10차 협의체에서 이 정책관은 "의협은 더 이상 논의를 회피해는 안된다"라며 "의료계를 바라보는 국민의 매서운 눈을 마주 봐야 한다"고 한층 더 강하게 압박했다.
그는 "의사 수 확충과 의사가 지역 필수의료 현장에서 일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의료현장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보고 의협 정기대의원총회 등에서 의견을 수렴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해 줄 것을 수차례 요청해 왔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의사 수 증원에 대한 국민적 기대와 여론에도 의료계 내부 논의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의대 정원 논의는 여전히 의료계 내부에서 금기시하고 있고, 의협은 의료계 내부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의료현장에서 의사 역할과 전문성이 대한민국 보건의료 정책 혁신에 반영되지 못한다면 국민은 의협이 의사들의 권익 보호만을 최우선으로 하는 직능단체라고 평가받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복지부는 이달 중 의료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의료인력 수급추계 전문가 포럼을 구성해 과학적이고 근거에 기반한 의사인력 증원 논의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물론 의협도 동의한 부분.
차전경 과장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국책 연구 기관에서 필요 인력 수급 추계를 한 연구결과가 이미 여러 건 있다"라며 "각 연구의 변수에 대해 다양한 전문가 의견을 들어보려고 한다. 전문가 포럼 일정 및 구성에 대해서도 논의를 거쳐 확정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근 의협 상근부회장은 "의료정책연구소는 의사인력 추계에 대해 국책연구기관과 다른 결과를 갖고 있다"라며 "전문가 포럼에서 면밀한 분석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진퇴양난 의협, 강경한 반대 입장 내부 설득이 과제
의협은 의정협의를 통해 2020년 코로나19 안정화 이후(원점에서부터라는 전제조건이 붙었지만) '재논의'를 약속한 터. 이는 코로나가 영원하지 않는 이상 언젠가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럼에도 의협은 무조건적인 반대만을 외치며 발전적인 내부적 논의 자체를 전혀 하지 않은 상황이다. 오히려 지난 4월 열린 정기대의원총회에서는 의대증원 반대, 의대정원 축소 안건이 등장 회의를 무탈하게 통과하면서 집행부 수임사항이 됐다.
그럼에도 의협은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의사 증원을 약속하면서 반대를 외쳐온 의사들의 비판을 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정근 상근부회장은 오히려 "(의사증원 문제에 대해) 논의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며 반문한 이후 "수차례에 걸친 복지부의 요구에 대한 답도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도의사회장회의, 대의원회 운영위원회 등에서 의대 정원에 대한 의견을 교류해왔다"라며 "전문가 포럼 이후 결론에 따라 필요하다면 전체 대의원, 나아가 전체 회원을 상대로 설득 작업을 하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임시대의원총회에서 대의원의 뜻을 물어봐야 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의협을 대표에 의정협의체에 참여하고 있는 이광래 인천시의사회장(전국시도의사협의회장)은 "의사 수가 늘어나더라도 13년 후에나 이뤄지는 일"이라며 "공백기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복지부는 필수의료 강화는 의사인력 증원과 패키지로 갈 것이라고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 회장은 "정원 증원에만 의존하지 말고 젊은의사가 필수의료에 지원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라며 "의사 증원 문제에 대해 의료계가 논의를 회피하는 게 아니다.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획기적인 대책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이라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