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명 의료경제팀 기자
수술실을 운영하는 의료기관이라면 다음 달 25일까지 CCTV를 꼭 설치해야 한다. 의료법에 나와 있는 내용을 보면 CCTV 설치 대상 기관은 전신마취 등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시행하는 의료기관이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를 담고 있는 의료법 38조의2는 2021년 9월에 만들어지고 2년의 유예기간까지 두고 있었지만 여전히 명확하지 않은 모습이다.
법 시행이 불과 한 달밖에 안 남았지만 법 조항 첫 줄부터 의료기관의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 해당 조항의 정확한 내용은 "전신마취 등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시행하는 의료기관의 개설자는 수술실 내부에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련 법령에 따른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설치해야 한다"다.
특히 전신마취 다음에 나오는 단 한 글자 '등'은 오히려 의료기관을 더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법 조항에서 유연성을 두기 위해 심심찮게 등장하는 글자이긴 하지만 의료 행위에서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가 꼭 전신마취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면마취도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 들어가는데 이를 CCTV 설치 의무화 대상에 넣으면 그 숫자가 눈에 띄게 늘어난다. 내시경 시술이 대표적이다.
그렇다 보니 법 시행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아직도 CCTV를 설치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심하는 의료기관의 민원이 관련 의사단체에 이어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혼란을 의식한 듯 보건복지부는 최근 법의 적용 범위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을 내놨다. 환자 의식이 없는 상태에 해당하는 마취에 수면마취도 포함하되 수술실을 의료법 시행규칙에 나와 있는 시설로 제한한 것이다. 의료법 시행규칙 34조는 의료기관의 시설 기준 및 규격을 정하고 있는데 여기에 나와 있는 '수술실'의 조건을 충족한 곳에만 CCTV를 설치하면 되는 것이다.
이 안내 대로라면 의료법 시행규칙에서 말하는 수술실이 아닌 장소에서 수면마취로 수술 및 시술을 했을 때 해당 공간은 CCTV 의무 설치 공간이 아니라는 소리다. 즉, 시술실, 검사실 같은 명패를 달고 수면마취를 하면 법에 저촉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의료기관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혹여나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에서 CCTV 유무는 주요 쟁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술과 시술의 개념도 명확지 않은 상황에서 실손보험금 지급 문제와 연결됐을 때 환자 민원에 시달릴 수도 있다. 복지부의 해석을 참고해 수술실에서 이뤄진 것만 '수술'이라고 보고 이외의 장소에서 일어난 수술과 시술에 대해서는 보험금 지급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의료기관 입장에서 CCTV 설치는 그냥 돈 좀 들여서 카메라 하나만 달면 끝날 문제가 아니다. 설치 이후 기록을 관리하는 등의 시스템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행정력이 뒤따르기 때문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부담을 국회와 정부도 알기에 CCTV 설치를 위한 비용을 의료기관의 전적인 책임으로 맡기지 않고 일부를 지원하는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도 CCTV 설치 범위를 확대하면 재정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한 외과계 의사회 임원은 아예 수면마취도 CCTV 설치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일말의 혼란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A4 용지 한쪽에 불과한 짧은 내용의 복지부 공문 한 장은 여전히 의료기관의 불안을 해소해 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무책임하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등' 한 글자가 불러온 불안감을 없애려면 복지부는 남아있는 유예기간 한 달 동안 현장 의견을 들어보고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해석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