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청구 의사가 새 병원을 개원할 때 문제점

전진표 변호사(법무법인 진솔)
발행날짜: 2023-11-27 05:00:00

요양급여비용을 부당하게 청구하거나 거짓으로 청구한 의사가 그 업무정지 처분을 피할 목적으로 기존 의원을 폐업하고 새로운 의원을 개설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국민건강보험법 제98조 제3항은 업무정지 처분의 효과가 요양기관 양수인에게 승계된다고 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요양급여비용 부당청구에 따른 업무정지 처분이 요양기관에 대한 처분(대물적 처분)인지 아니면 요양기관의 원장에 대한 처분(대인적 처분)인지에 대하여 다툼이 있다. 대물적 처분이라고 볼 경우 이전 의원에서 이루어진 부당한 행위에 대한 처분이 “요양기관”에게 승계될 것이고, 대인적 처분이라고 볼 경우 “의사”에게 승계될 것이다. 이에 대한 판례를 소개한다.

의사 A는 2011년경부터 서울 용산구에서 의사 B와 함께 C의원을 공동운영하였다가, 2014년 5월 7일경 C의원을 폐업하였다.

A의사는 이후 2014년 7월 5일경 세종시에서 D의원을 개설하여 운영하였다. 보건복지부는 2017년 5월 29일경 A의사가 재개설한 D의원에게 ‘2011년 5월부터 2011년 9월까지 C의원을 운영하면서 260여만 원 상당의 건강보험 요양급여비용을 부당청구하였다’라는 이유로 업무정지 10일의 처분을 하였다.

이에 대해 A의사는 폐업한 요양기관(C의원)에서 발생한 위반행위를 이유로 새로 개설한 요양기관(D의원)에 대하여 업무정지 처분을 한 것은 법적 근거가 없어서 위법하다고 주장하면서 업무정지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하였다. A의사는 1심에서 승소하였고 이후 대법원을 거쳐 최종적으로 승소판결을 확정받았다.

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요양기관이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자에게 요양급여비용을 부담하게 한 때에 받게 되는 업무정지 처분은 의료인 개인의 자격에 대한 제재가 아니라 요양기관의 영업 자체에 대한 것으로서 대물적 처분의 성격을 갖는다고 판단하였다.

○ 국민건강보험법은 ‘요양기관’이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자에게 요양급여비용을 부담하게 한 때에 ‘요양기관’의 업무정지를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요양기관’을 처분대상으로 하고 있다.

○ 국민건강보험법은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 등’을 요양기관으로 정하고 있고, 의료법에 비추어 보면, 의료기관의 개설 신고는 의료기관의 시설. 운영 등에 관한 사항 등을 준수하여야 하는 대물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 국민건강보험법은 요양기관 업무정지 처분의 효과가 그 처분이 확정된 요양기관을 양수한 자에게 승계되고, 업무정지 처분의 절차가 진행 중인 때에는 양수인 등에 대하여 그 절차를 계속 진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제재사유의 승계를 제한적으로 한정하고 있다.

○ 나아가 보건복지부는 의료인이 속임수 등 부정한 방법으로 진료비를 거짓 청구한 때에는 의료법에 따라 의료인의 면허자격을 정지시킬 수 있으므로, 진료비 거짓 청구에 관하여 의료인 개인에 대한 제재수단이 별도로 존재한다.

이에 따라 법원은,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자에게 요양급여비용을 부담하게 한 요양기관이 폐업한 때에는 그 요양기관은 업무를 할 수 없는 상태일 뿐만 아니라 그 처분대상도 없어졌으므로, 그 요양기관에 대하여는 업무정지 처분을 할 수 없고,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업무정지 처분에 갈음한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거나 업무정지 처분의 대상 요양기관을 폐업한 개설자가 새로이 개설한 의료기관을 국민건강보험의 요양기관에서 제외할 수 있을 뿐이라고 판단하였다. 다만, 당초 요양기관과 새로이 개설된 요양기관의 개설 주체·진료과목·시설 규모·인력·환자 등을 고려할 때, 당초 요양기관의 폐업이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여 두 요양기관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경우에는 새로이 개설된 요양기관에 대하여도 당초 요양기관의 부당청구를 이유로 업무정지 처분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C의원은 의사 A와 B가 서울 용산구에서 공동개설한 의원이고, D의원은 원고가 세종시에서 단독으로 개설한 의원이라는 점, 위 두 의원의 개설 주체와 위치, 환자 등을 고려할 때, 위 두 의원은 실질적으로 다른 의원으로 보인다고 법원은 판단하였다. 결국 보건복지부가 이미 폐업한 C의원의 요양급여비용 부당청구를 이유로 의사 A가 새로이 개설·운영하는 D의원에 대하여, 요양기관 업무정지 처분을 하기 위해서는 C의원과 D의원이 실질적으로 동일하여야 하는데 그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유로 법원은 이 사건 처분이 다른 요양기관에 한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판단하였다.

위 1심 판단에 대하여 보건복지부가 항소하였는데, 항소심 법원은 다시 한번 의사 A의 손을 들어주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추가적인 의견을 제시하였고, 대법원 또한 같은 취지로 판단하였다.

○ 침익적 행정행위의 근거가 되는 행정법규는 엄격하게 해석·적용하여야 한다.

○ 국민건강보험범이 업무정지 처분의 대상을 ‘요양기관’으로 명시하고 있으므로, 업무정지 처분의 대상은 ‘요양기관’에 한정된다.

○ 물론 제재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폐업한 요양기관에서 발생한 위반행위를 이유로 새로 개설한 요양기관에 대하여 업무정지 처분을 할 필요성도 없지 않으나, 의료인 개인에 대한 제재수단이 별도로 존재하므로 이러한 필요성은 상당 부분 충족되고, 이를 초과하는 부분은 입법으로 해결함이 타당하다.

○ 오히려 요양기관의 대표자가 실제 위반행위자가 아닌 경우도 있을텐데, 이러한 경우까지 제한 없이 새로 개설한 요양기관에 대하여 영업정지를 할 수 있다고 본다면, 요양기관 대표자의 책임이 지나치게 확대된다.

결론적으로 요양급여 부당청구에 대한 행정처분은 요양기관에 대한 대물적 처분이므로 요양급여비용 부당청구를 한 의사가 폐업한 후 새로 의원을 개설한 경우 그 새 요양기관에 대해 행정처분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폐업이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여 두 요양기관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경우에는 새로이 개설된 요양기관에 대하여도 당초 요양기관의 부당청구를 이유로 업무정지 처분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하여야 한다.

한편 이번 판례는 ‘업무정지처분에 갈음한 과징금 적용기준’ 고시가 변경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위 고시는 요양기관이 “행정처분 절차 중”에 폐업하여 업무정지처분이 실효성이 없는 경우에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었는데, 그 규정에서 “행정처분 절차 중” 부분이 “행정처분 확정 전”이라고 변경된 것이다.

행정절차가 개시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아직 행정처분이 내려지기 전에 폐업한 경우에 과징금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과징금 처분대상을 확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대법원이 요양급여 부당청구에 따른 행정처분이 대물적 처분이라고 보았다는 점에서 위와 같이 고시가 변경되었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 과징금 부과의 대상이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법리적 논란이 생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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