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정권' 떠올린 의료계…의정갈등 최고조 국민은 불안

발행날짜: 2024-02-22 05:30:00
  • 윤석열 대통령·한덕수 총리·조규홍 장관·박민수 차관 '말말말'
    법적 처벌·구속수사 등 연일 의료계 자극 발언 이어가는 정부

의과대학 2000명 증원을 둘러싼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정부는 하루도 빠짐없이 법적 처벌 및 구속을 언급하며 의사를 압박하고 있고, 의료계 또한 집단행동 규모를 키워가며 '강대강' 대응을 이어가는 상황. 복지부는 전공의 집단 사직을 두고 '대국민 상대 협박', '환자를 죽음으로 몬다', '국민을 인질로 삼았다' 등의 과격한 표현을 일삼고 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수위를 높여가는 정부의 강경 대응이 오히려 의료계에 투쟁 의지를 불어넣는 모습이다.

의료계는 전공의 개인번호를 수집하고 명확한 불법행동 이전부터 구속과 처벌 등을 언급하는 정부를 지적하며, 과거 칼과 총으로 시민을 찍어 누르던 '군사독재시설'과 다름없다고 비판한다.

의대생부터 전공의, 개원의까지 한마음으로 정부 의료개혁 추진에 격양된 반응을 보이며 집단행동에 뛰어들고 있다.

끝을 보기 전까진 별다른 출구전략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의료계의 공분을 키운 정부 인사들의 발언을 모아봤다.

■ 윤석열 대통령 "지난 정부처럼 물러나지 않는다"

정부는 지난 6일 2025학년도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2000명 증원한다고 발표했다. 28차례 진행한 의료현안협의체가 끝에 의료계와 합의에 이르지 못한 정부가 기습적으로 발표한 숫자다.

의료계는 예상치 못한 규모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정부를 향해 의대증원을 비롯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전면 재검토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흔들림 없이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강경한 대응에 의료계도 결국 '집단행동'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공의 집단 사직을 중심으로 한 의료계 집단행동은 지난 19일부터 전국적으로 확산하며 가시화됐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실 참모진들로부터 전공의 집단사직 등 의료계 반발 현황을 보고 받고 "지난 정부처럼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일부 발언과 관련해서는 "의료계는 국민을 이길 수 없다"고 언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의료계는 '의료계는 정부와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정책을 막으려는 것이다', '정부는 싸운다는 생각을 버리고 의료계와 진정한 대화에 참여해달라' 등의 반응을 보였다.

20일, 전공의 6415명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이 중 25% 수준인 1630명은 근무지를 이탈하는 등 의료계 저항이 거세지자 윤 대통령은 다시 한번 증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일각에서는 2000명 증원이 과도하다며 허황한 음모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숫자도 턱없이 부족하다. 2000명 증원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확충 규모"라고 밝혔다.

■ 한덕수 국무총리 "의료개혁, 국민뿐 아닌 의사 위한 것"

지난 19일부터 의료계 집단행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한덕수 국무총리는 '의료계 달래기'에 나섰다.

의대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는 국민뿐 아니라 의사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면이 많다는 주장이다.

한 총리는 지난 19일 의료계 집단행동 대응 관계장관회의에서 "의료개혁은 국민뿐만 아니라 의사들을 위한 것"이라며 "정부는 언제든 더 좋은 대안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한덕수 총리는 "정부가 발표한 4대 필수의료 패키지에는 의료계가 오랫동안 요구해 온 내용이 폭넓게 포함돼 있다"며 "정부는 의대 교육의 질을 높이고, 전공의의 근무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약속드린다"고 전했다.

그 전날에는 대국민 담화를 통해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의료 개혁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의대증원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이같은 정부의 태도를 의사들의 자율 행동을 억압하기 위한 '명분 쌓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의사들이 반대하는 정책을 추진하며 환자 곁을 지켜달라는 것은 부탁을 가장한 겁박"이라며 "의사라는 전문직을 악마화하면서 마녀사냥하는 정부의 행태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 큰 실망감이 든다"고 말했다.

■ 조규홍 장관 "의대정원 협상하는 나라 어디에도 없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대 증원 규모 발표 직후 "의대 정원을 의사와 협상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고 밝히며 의료계를 자극했다.

조 장관은 지난 6일 "정부는 의료계를 존중했기 때문에 다른 이해관계자하고는 별도로 의료현안협의체를 운영하여 28차례 논의했다"며 "그럼에도 의료계가 불법행동에 나선다면 원칙과 법에 의해서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박민수 차관 또한 지난해 12월 "정부가 의사 수를 증원하는데 의사와 합의할 이유는 없다"고 밝히며 의료계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이에 의료계는 "28차례에 걸친 의료현안협의체는 모두 정부의 '쇼'였다"고 규탄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1년이 넘도록 의정이 한 자리에서 회의를 이어왔지만 2000명이라는 규모는 단 한 차례도 언급된 바 없기 때문이다.

지난 19일을 기점으로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 가시화되자 원칙적 법적대응을 천명했다.

조규홍 장관은 "의협 비상총회에서 대화가 아닌 투쟁을 결정한 것에 대해 유감"이라며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은 법률에 규정된 원칙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최대집 전 대한의사협회장과 임현택 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 등은 조규홍 보건복지부장관과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을 형사고발하고 나서며 맞대응했다.

■ 박민수 차관 "전공의 빈자리, PA인력 적극 활용"

보건복지부는 의료계 단체행동 움직임에 긴밀하게 대응하기 위해 설 연휴 이후 언론브리핑을 정례화해 의료계 상황을 발표하고 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지난 8일 업무개시명령 등을 위해 전공의 1만5000명의 연락처를 확보한다고 언급하며 젊은 의사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애당초 전공의들은 의대 증원 정책에 개별 사직서를 제출하며 '조용한 움직임'을 보일 생각이었지만, 박민수 차관의 발언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의 사퇴 등이 연달아 발생하며 이들의 단체행동을 촉발했다.

이후 전공의 빈 자리를 PA인력 등을 활용해 대응하겠다는 박 차관 발언 또한 전공의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박 차관은 지난 15일에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전공의 파업으로 병원 기능에 문제가 생긴다면 비대면진료를 전면 확대하고, PA인력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만들겠다"고 발언했다.

비대면진료 전면 확대와 PA 지원인력 합법화는 모두 의료계 반대가 극심한 정책들이다.

이에 의료계는 "애초에 전공의가 없다고 간호사에게 의사 잡을 주는 것이 정상이냐", "복지부가 불법의료를 조장한다", "전공의 없이 어디 해봐라" 등의 반응을 보였다.

또한 박 차관은 지난 20일 여성의사 역할을 격하하는 발언으로 의료계 분노를 가중시켰다.

박민수 차관은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의과대학 정원 증원 근거 논문에 대해 설명하며 "여성의사 비율 증가, 남성 의사와 여성 의사의 근로시간 차이 등 여러 가정을 넣어 분석했기 때문에 매우 세밀한 모델을 가지고 추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서울의대 함춘여자의사회는 성차별 발언이라 주장하며 고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한국여자의사회 또한 "박 차관의 발언은 여성 의사의 전문성과 노력을 폄훼하고, 성별에 따른 차별적인 시각을 조장한다"며 "여성 의사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어려움과 도전을 외면하는 것일 뿐 아니라 성별 간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적 노력에도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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