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운영 3월이 분수령…위기 맞는 상종 의료시스템
25일 교수 사직 후 역대급 위기 우려…'임금체불·권고사직' 임박
전공의가 병원을 떠난 지 한 달이 지났다. 수술을 축소하고 경증 외래환자를 줄이며 의료공백 방지에 집중해 온 대학병원들은 이미 경영 한계를 넘어서 파산 직전까지 가는 위기다.
병원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유사 진료과끼리 병동을 통합하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무급 휴직 신청을 받는 등 비상경영체계에 돌입했지만, 뾰족한 묘수는 없는 상황.
일각에서는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인해 상급종합병원이 응급·중증환자에 집중하며 의료전달체계 정상화를 불러왔다고 얘기하지만, 아무런 사전준비 없이 급속도로 환자가 줄어든 병원들은 유례없는 경영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 "3월이 한계…25일 교수 사직 이후 걷잡을 수 없는 악화 우려"
대학병원 관계자들은 현 상황을 지난 3년간의 코로나19보다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병원별로 차이는 있지만 대형병원의 대다수는 전공의 이탈로 하루 10억~20억원의 손실을 보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희열 부천성모병원장은 "전공의가 병원을 나가며 외래나 수술이 40~50% 줄어 대부분 병원에 큰 고비가 온 것은 맞다"며 "일부 병원은 마이너스 통장까지 뚫어가며 노력하고 있다. 병원마다 버틸 수 있는 마지노선은 다르겠지만 심각한 위기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2월 첫 주 대비 3월 첫 주 상급종합병원의 일평균 입원 환자는 35.6% 감소했다.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빅5병원은 더욱 상황이 심각하다. 이들 병원 일평균 입원 환자는 2월 첫 주 대비 3월 첫 주 42% 감소했다.
상급종합병원 재무담당자협의회 관계자는 "지금은 코로나19 당시보다 매출감소폭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 속에서 각 병원이 버틸 수 있는 한계는 3월 말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병원은 조만간 교육부에 방문해 운영자금 대출에 대한 허가를 요청하고 복지부에도 지원대책을 문의할 예정"이라며 "현 상황이 지속된다면 가톨릭병원의 경우 산하 8개 병원 중 일부에 대해 폐원까지 고려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대형병원들이 병원 운영이나 미래 투자 등을 위해 적립하는 '고유목적사업준비금' 또한 현 상황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재무담당자협의회 관계자는 "병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은 세제 혜택을 위한 회계상 처리방식이지 실제 현금을 쌓아두는 개념이 아니다"라며 "대부분이 회계연도 말에 사라지기 때문에 현금처럼 쓸 수 없다"고 설명했다.
병원 측 피해는 25일을 시작으로 교수들이 개별 사직을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대학병원 외과 교수 A씨는 "교수들이 사직을 예고한 25일이 의료대란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며 "교수가 자리를 비우면 그야말로 의료공백이 아닌 의료정지 사태가 발생할 텐데 대학병원 역시 운영이 중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20년 이상 병원에서 의사 생활을 했지만 요즘처럼 병원이 한산한 적이 없었다"며 "정부가 의대증원이라는 강경책을 지속할 것이라면 이에 따라 병원이 입는 피해 역시 보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일부에서는 상급종합병원이 중증, 응급 환자에 집중하며 오히려 의료전달체계가 정상화됐다고 얘기하는데 아무런 준비 없이 수입의 60% 이상을 차지하던 외래 환자가 급감한 대학병원은 죽으라는 말과 다름없다"며 "의료 최후의 보루인 대학병원이 줄초상을 앞두고 있는데 어떻게 의료체계가 정상화되고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수도권 대학병원 보험심사부 관계자 또한 "수도권 대학병원은 모두 초진 환자를 원천 차단하는 등 외래 환자가 급감해 피해가 심각한 곳이 많다"며 "우리 병원은 다행히 외래환자 수에 큰 차이가 없어 병원 타격이 덜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전공의 빈 자리를 전문의가 메우기 위해 당직 다음 날 외래, 수술 일정을 소화하면서 업무 부담이 크게 늘었다"며 "아직까진 버텨주고 계시지만 언제까지 이어질 것이라 장담할 수 없어 이들의 사직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덧붙였다.
■ '임금체불·권고사직' 코 앞…"4월부터 사립대병원 대다수 위기"
병원의 경영난이 불거지며 도산 위기에 놓이자, 직원들은 연차강요, 무급휴직을 넘어 임금체불과 권고사직까지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보건의료노조 곽경선 사무처장은 "아직 대학병원에서 근로자 임금을 체불한 사례는 없지만 현 사태가 지속된다면 머지않아 발생할 수 있다"며 "큰 병원도 사정이 어려운데 그보다 규모가 작은 곳은 하루하루가 위기다. 특히 25일을 시작으로 교수들이 사직하면 더 큰 고난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대학병원 상당수는 인건비 절감을 위해 간호사 등에게 무급휴가 등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전공의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들을 권고사직해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다.
곽경선 사무처장은 "경영난이 악화되면 병원은 병동을 축소하며 부담이 큰 인건비부터 줄이려 할 것"이라며 "병동을 폐쇄하면 이를 담당하던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업무를 잃으며 권고사직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이어 "또한 전반적인 환자 수가 줄다 보니 과거에는 미화 업무 담당자가 한 개 병동만 담당하던 것에서 이제는 2~3개를 담당하고 있다"며 "미화 등 비정규직 근무자는 병원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인데 의사 집단행동이 이들에게까지 영향이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지 않는다면 지난 코로나19 유행 당시보다 병원 사정이 어려워질 것이라 경고했다.
곽경선 사무처장은 "코로나19 당시 공공병원은 코로나전담병원으로 운영된 반면 사립병원은 외래환자도 같이 보며 운영해 어느 정도 수입을 유지할 수 있었다"며 "경영난 측면에서 본다면 지금이 더욱 사태가 심각하다. 특히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병원일수록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재무담당자협의회 관계자 또한 "당장 4월부터는 800병상 이하 사립대병원 대부분이 직원에게 월급을 지급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뾰족한 대책 없이는 대학병원에서 임금이 체불되는 사태가 연이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 종합병원 수익 120%까지 증가…"의료전달체계 정상화"
상급종합병원에 경증환자가 감소하며 오히려 인근 2차병원은 환자가 늘어 운영이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수도권 대학병원에 집중되던 환자가 다양한 병원으로 분산되며 호재를 맞은 것.
대한종합병원협의회 등에 따르면 종합병원 매출은 전공의 집단사직 후 전반적으로 10%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종합병원 관계자는 "3월 이후로 외래환자와 입원 환자 모두 예년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며 "특히 신규환자가 많아 2차 병원도 베드가 부족한 상황 등이 발생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에서 초진 환자를 받지 않기 때문에 환자가 증가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종합병원이 의료대란 사태를 피해 갈 수 있었던 데는 전공의 의존율이 대학병원에 비해 월등히 낮은 점 등이 꼽힌다.
전국 3387곳 2차 병원 중 전공의 수련병원은 17%인 201곳뿐으로, 대다수는 전문의 중심으로 병원이 운영된다.
또 다른 수도권 종합병원 관계자는 "코로나19 위기 때 병원이 경영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환자가 많이 몰리고 있다"며 "역설적이지만 이번 전공의 사태로 의료전달체계가 정상화되는 면이 분명히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특혜마저 대학병원과 유사한 응급실 및 중환자실을 갖춘 소수의 종합병원에만 해당는 실정이다.
대한병원협회 고도일 부회장은 "전공의 사태 후 종합병원은 120%까지 수익이 증가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그 외 병원들은 사정이 비슷하다. 특히 전문병원은 찾아올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환자가 증가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