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경제팀 김승직 기자
정부가 2000명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고집을 꺾고, 각 대학교가 내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는 안을 내놨다. 의대를 보유한 6개 지역 국립대 총장·학장들의 제안을 수용한 결과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의료계 시선은 싸늘하다. 애초 의료계가 원했던 원점 재논의에 근접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정부가 강조해왔던 '과학적 근거'와 거리가 먼 결정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2035년에 1만5000명의 의사가 부족하다고 전망해왔다. 이 중 1만 명을 의대 증원으로 확충하고, 나머지 5000명을 필수의료 분야 유입 촉진, 고령층 건강 증진 등을 통한 의료 수요 감축으로 대응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또 그동안 정부는 의대 증원을 원점 재논의하라는 의료계 요구에 의대 증원 규모를 줄여야 할 과학적 근거를 가져오라고 맞서왔다. 하지만 국립대 총장들의 자율 모집안을 수용한 과학적 근거에 대해선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의료계에서 의대 증원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립대 총장들이 먼저 자율 모집을 제안한 것은 늘어난 의대 증원 분을 수용할 여건이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입장한 꼴이라는 것.
이는 대학별 수요조사를 통해 매년 2000명의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에 문제가 없다는 정부 주장에도 반하는 일이다.
이 같은 정책 변화로 또다시 부족해지게 된 의사 수를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도 아직이다. 관련해 정부는 "필수분야로 신규 인력이 추가 유입될 수 있게 해 부족분을 보완하겠다"는 답변만 내놨다.
이 같은 조치로 최대 1000여 명의 의사를 충당할 수 있었다면 왜 진작에 하지 않았을까 하는 물음표가 찍힌다. 의료계에서 정부가 예상한 2035년 의사 부족분에 근거가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현 상황만 보면 정부는 의대 증원분이 1만 명이든 9000명이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적인 혼란도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수험생·학부모들의 반발은 물론이고, 언론의 관심은 어떤 의대가 얼마만큼의 정원을 모집할지에 향할 전망이다. 의대 증원은 필수·지역의료 붕괴라는 담론과 더욱 멀어지게 된 것.
내용이 어찌 됐건 정부가 한발 물러선 모양새기 때문에, 원점 재논의 요구에 대한 의료계 부담도 커졌다. 정부가 원점 재논의를 수용하게 할 과학적인 근거가 무엇인지도 더욱 알 수 없게 됐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자율 모집안과 대통령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수용할 수 없다고 나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