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춰선 길에서 균형을 찾다

조선의대 4학년 한민형
발행날짜: 2024-08-12 05:00:00 수정: 2024-08-12 08:28:46
  • 의대생신문 교정편집국 조선대학교 본과 4학년 한민형

예상치 못한 의정 갈등 사태로 8개월째 휴학 중인 본과 4학년 학생입니다. 이야기에 앞서서 잠시 제 소개를 해볼까요. 저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학교생활을 해온 학생입니다. 상위권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공부하고 실습을 돌며 3년을 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뿌듯함도 컸지만 많은 순간을 긴장한 채로 살았고, 아토피가 심해져서 얼굴이 벌게진 모습을 보며 울음을 터트렸던 때도 있습니다. 예과 때는 운동, 옷, 피어싱 등 예쁘게 치장하는 걸 좋아하기도 했었는데 어느샌가 모든 것이 뒷전이 되고 경주마처럼 달렸었죠.

지난 본과 생활을 돌이켜보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포기하는 것도 있어야 한다며 독하게 마음먹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제 본과 4학년의 목표도 비슷했습니다. 마이너 실습과 국가고시 준비를 열심히 하고자 했는데 실습 시작 2주 후 의정 갈등의 여파로 갑작스럽게 중단되었습니다.

휴학은 제 삶의 방식을 많은 부분 바꿔놨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쁘게 나갈 준비를 하는 대신 햇빛을 보며 식탁에 앉아 여유롭게 아침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해요. 미뤄뒀던 운동을 열심히 하는 중이기도 합니다. 또 먹는 음식이 바뀌었어요.

평소에는 음식을 차리고 치우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져서 배달 음식을 먹거나 음식을 사 먹었었는데, 휴학을 한 뒤로는 어머니가 해준 집밥을 먹거나 직접 차려 먹습니다. 정말 신기했던 것이, 사 먹는 음식을 줄이고 건강하게 밥을 먹은 뒤로 아토피가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어요.

무엇이 달라졌나 생각해보니 밀가루와 유제품을 이전보다 확연히 덜 먹었길래, 속는 셈 치고 밀가루를 끊고 유제품 섭취를 줄여봤습니다. 그랬더니 항상 절 괴롭히던 아토피가 마법처럼 싹 가라앉았습니다. 유레카. 이건 정말 제 인생의 유레카였어요. 아토피가 악화될 때면 가려워서 밤잠을 설칠 때가 많고, 조금이라도 덥거나 건조하면 온종일 피부를 긁습니다.

이렇게 제 삶을 괴롭히던 아토피의 원인이 밀가루였다니. 평생 모를 뻔했던 제 아토피의 원인을 휴학을 통해 알았습니다.

휴학을 하니 아침부터 밤까지 온전히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어요. 저의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보낼 시간이 많아졌고, 다양한 추억을 쌓아가는 중입니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깊게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타인의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많이 접하니 저 자신에 대해서도 많이 돌아보게 됩니다.

평상시에 인간관계에서 느꼈던 저의 약점을 고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조금 더 자신감 있게 말하는 연습을 하는 등 사소하지만 중요한 연습들을 차근차근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의정 갈등 상황 때문에 의도치 않게 제 학업은 잠시 멈춤 상태입니다. 학업이 제 인생 대부분을 차지했었는데, 잠시 멈춰선 길에서 저는 이전에 미뤄뒀던 삶의 다른 가치를 발견하고 재정비하며 살아가는 중입니다. 그 과정에서 소중한 삶의 균형을 얻었습니다. 저의 신체적 건강, 정신적 건강을 챙기며 여유로움의 가치를 알아가는 요즘입니다.

이번 사태는 미래의 의학도로서 마음 아픈 부분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휴학의 기간이 저에게 또 다른 이정표가 되어 쉼표의 미학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사태가 해결되어 병원으로 돌아간다면, 또다시 바쁜 일상을 살면서도 휴학 기간에 찾은 균형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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