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학교 의대 본과 1학년 노정연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일생 동안 우리와 함께하는 것들은 몇이나 될까? 수많은 만남과 이별이 공존하는 삶 속에서도, 아주 어린 시절부터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우리와 함께하는 것. 오늘은 그중 하나인 '이야기'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누구나 어린 시절 동화책 속 이야기를 접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신비로운 요정과 동물, 아름답고 용감한 왕자님과 공주님이 등장하는 수많은 이야기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한편, 말랑한 내용 속에 여러 사회의 규율들을 숨기고 이를 아이들에게 각인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성장하면서 우리는 더욱 많은 이야기를 접한다.
다양한 예술 작품은 물론, 직간접적으로 접하는 수많은 사람의 사연을 듣고, 스스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기도 하면서 우리 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에 겹겹이 쌓인다.
지나가 버린 '오늘'이 우리의 기억 속에 '어제'로 남을 때에도, 이 또한 '이야기'의 형식으로 남아 우리의 기억 속에 자리한다. 우리의 인지 체계가 송두리째 바뀌지 않는 이상은, 우리는 이 거대한 '이야기 세계관'을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항상 우리와 함께하는 만큼 이야기가 가지는 의미를 늘 염두에 두기는 어렵겠지만, 얼마 전 우연히 이야기가 가지는 힘을 실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바로 낭독회 참석을 계기로 김연수 작가님의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게 된 것이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눈이 푹푹 나린다."(백석, 『백석 전 시집-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스타북스, 2023) 와 같이 한국 문학계에서 널리 회고될 작품을 여럿 남긴 백석임에도, 광복 이후 월북하여 그의 말년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일곱 해의 마지막』은 여러 자료를 토대로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기록되지 못한 백석의 말년을 담아냈는데, 그의 행적뿐 아니라 세세한 내면 묘사까지 담고 있어 읽다 보면 '시인'으로서의 백석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백석을 알아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에게 '백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교과서나 시험지 속 문학 작품에 표기된 이름이었다. 그의 대략적인 행적과 얼굴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왜 그랬을까? 나는 단 한 번도 나와 같은 '한 사람'으로서의 백석을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그는 항상 멈춰 있는 사진과 작품 속 '인물'이었을 뿐이므로. 나는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고 나서야, 그가 불과 수십 년 전에 나와 같은 땅을 밟고 살아갔던 '인간'이라는 것을 비로소 실감했다. 이 책에는 완성된 작품 속 백석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 또 살아가기 위해 고뇌하는 백석이 있었다.
어쩌면 이야기가 가진 가장 큰 힘은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에게 공감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겉모습보다는 상대방의 내면을 마주할 때 비로소 따뜻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 이런 '마주함'이 있어야 우리는 비로소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이야기의 특별한 점은 어쩌면 평생 만날 수 없었을 사람을 '마주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너무 멀리 있거나, 어쩌면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고 해도, 나와 공통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괜찮다. 책장을 펼치고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된다.
'숏폼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난다. 밖으로 직접 나가지 않아도, 유튜브나 틱톡, 인스타그램 속에서 스크롤만 하면 수 초 내에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
바야흐로 소통의 르네상스가 도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지만, 과연 정말 그럴까? 우리가 하루 동안 접하게 되는 사람들 중 몇이나 진심으로 '마주할' 수 있을까? 단편적인 만남이 너무 쉬워진 나머지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에는 오히려 소홀해진 것이 아닐까?
점점 골이 깊어만 가는 집단 간 갈등과 끊이지 않는 각종 혐오 범죄들을 보며 고민이 길어지는 요즘, 우리가 다시금 주목해야 할 대상은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인생은 그동안의 삶이 만든 흐름 속에서 이어진다.
마찬가지로 모든 것들은 맥락 속에서 읽힐 때만 빈틈없이 이해되기 마련이다. 어쩌면 인류가 가진 가장 큰 가능성 중 하나는 타인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그동안 인류가 만들어 낸 사회의 큰 변혁들은 대부분 타인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이에 공감하여 변화를 위해 연대할 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속에서 과연 '나'는 어떤 이야기의 조각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누구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었는지 한 번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