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에서 배운 생명나눔의 숭고함(16화)

박찬송 은평성모병원 간호사
발행날짜: 2024-09-23 05:00:00 수정: 2024-10-21 08:50:25
  • 박찬송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특수간호팀 신경계중환자실 간호사

[메디칼타임즈 & ‘김수환 추기경 기념’ 장기이식병원 공동기획]

장기 기증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나, 여전히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실정입니다. 일선 현장의 의료진들이 경험한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장기 기증 인식률을 높이고, 이를 촉진하는 공동기획 시리즈 ‘오늘, 장기이식병원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6회] 중환자실에서 생명나눔의 숭고함을 알게 되다

박찬송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특수간호팀 신경계중환자실 간호사

‘장기이식’에 대해서는 “대의적으로 여러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이로운 것이다” 혹은 “언젠가는 나도 장기이식 공여자로 등록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막연하게나마 가져왔던 것 같다. 신경계중환자실에서 근무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곳에서 근무를 한 지 6년 차에 접어드는 지금, 우리 부서의 간호사들은 장기이식 수혜자보다는 공여자들을 주로 돌보게 된다. 신경학적으로 뇌사상태가 되는 경우, 환자는 동공 반사를 포함한 모든 자극에 반응이 없어지고, 뇌압이 한계 없이 치솟기도 하며, 활력징후가 불안정해지고, 자가 호흡이 완전히 사라져서 인공호흡기 없이는 숨을 쉴 수가 없는 상태가 된다.

이러한 환자들을 대할 때, 특히 갑작스러운 발병 혹은 사고로 하루 아침에 급격하게 의식이 저하되어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보호자들이 환자의 소생 가능성에 대해 물어볼 때마다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난감한 순간이 찾아온다.

보호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무엇일지, 의식이 깨어 걸어서 병원을 나갈 수가 없다면? 살게 된다 하더라도 말 그대로 식물인간 상태로 평생 연명만 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쉽사리 말을 꺼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는 것 또한 의료진의 몫이 된다.

보호자들은 현재의 치료를 유지할지 중단할지에 대한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결정을 안내 받게 된다. 요즘에는 인식이 많이 바뀌어서 생전에 연명치료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표현하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까지도 미리 등록한 분이 많아지는 추세인데, 그러면 보호자들의 마음의 짐은 조금이나마 덜어질 것으로 으레 짐작은 된다. 이 상황에서 또 한 가지 제안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장기이식에 대한 설명이다.

주치의는 의식이 호전될 여지가 없는 부분에 대해 현재의 뇌 상태를 보호자들에게 설명하고, 연명 중단에 대한 내용과 장기이식에 대해 언급을 한다. 보호자들은 그 내용을 듣고 가족들과 상의를 거쳐 우리에게 결정된 내용을 전달한다. 이 상황을 오롯이 전달해야 하는 교수님의 무거운 마음도, 그것을 결정해야 하는 더 무거울 보호자들의 마음도, 중간에서 의사소통을 하는 우리 간호사들의 마음을 조금 더 신중하고 겸허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이식은, 의미 없이 환자를 포기하는 것보다 조금 더 희망적인 대안이 되기도 한다. 환자의 죽음을 그저 슬프고 안타까운 것으로만 생각하기보다는, 한 생명의 죽음이 여러 사람에게 새로운 생명을 선물하고, 나의 혈육이 어딘가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희망 또한 보호자들에게 선물하고, 조금이나마 의료진들의 어려운 마음을 내려둘 수 있는 여지가 되어 준다.

본원에 ‘김수환 추기경 기념’ 장기이식병원이 생기고, 이후 TV 매체에서 다뤄진 이야기와 과정을 보고 들으면서, 우리가 알 수 없었던 장기이식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장기이식운영팀 선생님들이 겪게 되는 수많은 감정 또한 나에게 와닿았다. 그 과정 중 일부를 담당하는 우리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어떤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면 좋을지 좀 더 고민해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 모든 것들을 감당해내는 우리에게 자부심도 느낄 수 있었다.

어제, 오늘, 이틀에 걸쳐 장기이식이 결정된 환자의 1차, 2차 뇌사 조사와 사망 선언, 그리고 보호자 면회 후 수술방에 보내드리기까지, 이 모든 과정을 함께하면서 우리가 환자분들을 잘 돌보아서 공여하는 그날까지 안녕히 잘 보내드리는 것 또한 간호사로서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들 중에 하나였음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오늘도 장기이식을 준비한 모든 팀원들과 함께 ‘뇌사 장기기증자를 위한 기도문’을 읽으며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진정한 기도를 드리고 숭고한 마음으로 환자분을 보내드렸다. 담당 간호사로서의 나의 마음도 조금은 홀가분해지는 하루였다. 그리고 장기이식에 대한 나의 생각은 나와 동떨어진 그저 막연한 일이 아니라 나도, 우리 부모님도, 사랑스러운 내 아이도,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마지막 순간에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꼭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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