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외과의사회 이세라 명예회장

60대 여성 환자가 내원했다. 서울시 강서구 소재 의원에서 1000리는 떨어졌을 지역에서 오셨다. 외음부의 농양(고름) 때문이었다. 지난 2년 동안 고통을 받아 왔단다. 초기 발병 때, 거주지 소재 의원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절개를 하자마자 출혈이 너무 심해서 농양을 절개만 했단다. 인체 중에 다쳤을 때 출혈을 많이 하는 부위가 바로 이 부위다. 농양을 절개해서 배농한 뒤에도 고름은 지속되었다. 원인이 제대로 제거된 것이 아니다.
시쳇말로 농의 심, 심지가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이다. 환자는 해당 지역의 대학병원도 여러 군데 찾았다. 대학병원들은 외래로 한 달에 한 번 항생제만 처방했다고 한다. 대학병원 의사들은 수술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고, 환자에게 권고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수술을 하고 알게 되었지만 나 역시도 이렇게 어려운 사례는 수술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약을 먹으면 좀 좋아졌지만 그럼에도 거의 매일 외음부는 고름으로 젖었다.
팬티를 하루 세 번씩 갈아입어야 했다. 자신이 운영하던 자영업장도 양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환자는 일상의 불편을 느꼈다. 결국, 서울로 가서 치료를 받겠다고 결심했다. 지역의 어느 대학병원에서는 서울로 가겠다는 환자의 이야기를 듣더니 "잘 치료받고 오시라"며 격려(?)했단다. 그런 절박함으로 나를 찾은 환자. 문진(問診)으로는, 표피낭이 종기로 되었거나, 바톨린선에 낭종이 생겨 고름이 나오는 것으로 추정했다. (Bartholin's glands. 질 입구 바로 아래쪽, 소음순 안쪽에 양쪽 하나씩 위치한 것으로, 성관계 때 윤활을 돕는 점액을 분비한다) 하지만 막상 눈으로 살폈더니 내 예상과는 달랐다. 대음순에 염증이 있었다. 바톨린선 낭종이 아니었다. 그리고 촉진을 해 보니, 질 입구부터 시작해서 안쪽으로 약 3cm 그러니까 길고 깊게 단단한 섬유화가 느껴졌다. 흔히 보이는 질환이 아니었다.
짐작이 가는 질환이 있었다. 하지만 직접 묻기가 곤란했다. '성(性)'과 관련한 질문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질문을 하더라고 '우회'할 수밖에 없다. 환자에게 과거 병력을 다시금 물었다. CT나 MRI를 찍은 일이 있는지, 복부나 항문이나 기타 질의 위치와 비슷한 곳에 다른 수술을 받은 일이 있는지 등을 물어보았다. 환자는 없다고 했다.
'이 환자가 솔직하지 않구나' 아니면 '그런 수술이 기억이 나지 않거나 아니면 그런 수술로는 이 고름(농양)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수술이든 치료든, 솔직하지 않은 환자를 대하는 것은 항상 어렵다. 한데 어쩌겠는가. 가족에게조차 말하기 힘든 것이 이런 류의 '성'(性) 관련 문제다.
여튼 환자의 병력도 참고해서, 수술에 따르는 여러 부작용, 특히 출혈에 대한 부작용을 설명하고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 환자의 이 질환에서는 더욱 섬세한 수술을 해야 한다. 최소한의 절개창을 냈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상처가 커서 좋을 것은 없으니까. 왜 이리 더울까. 땀이 비 오듯 흐르는 것 같았다. 한참의 시간을 병변을 찾는데 보냈다. 출혈을 하게 되면 환자도 의사도 고생을 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부위는 지혈도 마음 놓고 하기 어려운 부위이기에 '조심' '조심' '조심' 을 몇 번을 되뇌이면서 천천히 수술을 했다. 수술 기구를 상처 절개창 안에 넣고 촉진했을 때 기구 끝에 느껴지는 이상함이 있었다. 골반이나 괄약근과 연결된 듯 질기고 단단한 조직이 있다. 그렇게 깊은 곳에서 단단하고 이상한 촉감을 느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비정상적인 조직'을 끄집어 낼 수 있었다. 봉합용 실이었다. 이 봉합사는 환자가 과거에 무엇인지 모를 수술을 받은 흔적이다.
수술실로 환자 보호자를 불러 들였다. 보호자에게 말했다.
"환자 분 몸 속에 이물질이 있었습니다."(차마 봉합용 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환자는 여전히 주저했다. 하지만 덮는다고 덮어지겠는가. 환자는 결국 힘들게 말했다.
"그 수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질 성형술. 속칭 '이쁜이 수술'이다.
환자, 아니 여전히 여자이고 싶은 여인에게 이 말했다.
"이물질 때문에 고름이 계속 나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단정할 수는 없고, 앞으로 경과를 잘 지켜봐야 합니다. 출혈은 없는지, 고름이 계속 나오는지 등을요. 길게 봐서 앞으로 6개월 동안 잘 추적해야 합니다. 저도 힘껏 도울 테니, 언제라도 연락주세요." 수술 후 주사를 맞고 한동안 안정을 한 뒤 출혈이 없는 것을 확인하였다. 환자는 통증도 별로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환자와 보호자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아직 완전하지 않지만 나 역시도 기분이 좋았다.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환자에게 조금 더 '신경'을 썼다면, 이 환자가 지난 2년 간 겪었던 고통은 없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먼 곳에서 방문했기에 환자는 다음 주에 병원을 방문하기로 하고 귀가하였다. 물론 여러 주의 사항을 알려 주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가는 환자와 보호자를 지켜보면서 불현듯 든 생각. 어쩌면 외과 의사의 숙명일 수도 있는. 합병증이 생각났다. 사실 합병증이 발생하면 더 머리가 아프게 된다. 수술과 관련된 부작용에 대해 잘 설명은 했지만 그래도 항상 의사로서 환자의 건강한 회복은 기원한다. 하지만 '수술 뒤 더 악화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다음 날 환자에게 전화를 했더니 상태가 매우 좋다고 한다. 통증도 없고 분비물도 줄었다고도 한다. 그리고 수술 후 7일이 지나 다시 환자를 만날 수 있었다. 장거리를 진료비보다 더 비싼 교통비를 들여 하루 반나절을 투자하면서 찾아온 것이다. 환자 상태는 더 좋았다. 약간의 염증은 있으나 부종은 많이 사라진 상태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더 좋아지기를 기대할 수 있었다.
정부는 의사 특히 응급한 상태를 치료하는 의사나 외과나 외과계 의사가 진심을 다한 의료 행위 특히 수술 행위에 대해 싸구려를 강요하는 제도를 지속하고 있다. 또 의료행위를 안해도 처벌하고 비난하며 의료행위의 결과가 잘못되면 의사에게 법률적 책임과 경제적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사회가 의료인들을 억압한다면 이런 환자는 몇 년 더 심지어는 죽을 때까지 고름주머니를 달고 살아야 할 것이다.
이 사례는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돈이 안되는 일을 구태여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잘못하면 욕먹는 수술을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것을 나무랄 수도 없다. 환자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또는 살기 위해 먼 곳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간다. 교통이 발달했으니 찾아가지 못할 갈 지역도 없다.
환자는 이렇게 고생한 질환을 해결해 준 의사를 고마워 할 것이다. 그러나 환자는 이렇게 잘해 준 의사 개인에게는 감사하지만 의사 전체에 대해서는 적개심을 가질 수도 있다. 우리나라 의료제도가 잘못 설계되었고, 의사들도 일부 책임을 다하지 못한 면이 있으나 무엇보다 사회와 언론이 이런 불신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