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와 추행의 경계, 대법원 기준은?

임원택 변호사(법무법인 문장)
발행날짜: 2025-07-01 06:59:18
  • 임원택 변호사(법무법인 문장)

의료행위는 환자 신체에 대한 직접적 접촉을 동반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환자나 민감 부위를 진찰할 때는 촉진의 필요성과 범위에 대해 충분한 설명과 동의가 선행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설명 없이 이루어진 접촉이나 기록되지 않은 행위는 환자에게 수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이는 형사 책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2025년 6월 5일 선고된 대법원 2022도9676 판결은 의료인의 신체 접촉이 강제추행죄가 될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 사례다. 진료실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의료인은 철저한 설명과 절차를 지켜야 함을 강조한 이 판결은, 모든 의료인이 반드시 새겨야 할 교훈을 담고 있다.

피고인은 한의사로, 여성 환자의 복통 및 기타 증상을 진단하는 과정에서 가슴과 음부 부위를 손가락으로 접촉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피고인은 '치료 목적의 정상적 접촉'이었다고 하면서 음부가 아닌 치골 부위를 눌렀을 뿐이라며 오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피해자는 피고인이 명확히 가슴과 음부를 접촉했다고 진술하였고, 검찰 의료자문위원도 역시 '치골 부위는 직접 촉진하지 않아도 진료가 가능하고, 오해의 소지가 크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진찰하지 않는다'고 의견을 밝혔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기준에 따라 원심의 유죄판결을 확정하였다. 먼저 의료 목적의 신체 접촉이라도 행위의 경위, 방법, 환자의 반응, 사전 설명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보아 객관적으로 환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한다면 추행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의료인은 보통 민감 부위 접촉할 때는 사전에 설명과 동의를 구하는데, 피고인은 간호사를 입회시키거나 피해자로부터 동의를 구한 적이 없다.

피해자는 한의원 진료 경험이 많은데, 피고인의 당시 행동과 피해자의 심리를 구체적으로 진술하였고, 무고할 이유도 없다. 마지막으로 피고인은 소화불량과 허리 통증 때문에 가슴, 치골 부위를 촉진했다고 하는데, 진료기록에 그러한 내용이 전혀 없다.

이번 판결에서 주목되는 점은 피고인과 피해자가 진료실에 둘만 있었다는 점이다. 성범죄는 폐쇄된 공간에서 은밀히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번 사건처럼 피해자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 증거가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대법원은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 경우 "피해자의 진술 내용의 주요한 부분이 일관되고 구체적인지, 진술 내용이 논리와 경험칙에 비추어 합리적이고 진술 자체로 모순되거나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나 사정과 모순되지는 않는지 또는 허위로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환자인 피해자는 피고인의 접촉 부위, 방식, 당시의 감정 상태까지 구체적으로 진술했으며, 진료 전 사전 설명이나 동의가 전혀 없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였다. 특히 피고인은 "환자가 치골과 음부를 착각한 것"이라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피해자의 진술이 신빙성이 높고, 치골과 음부는 명확히 구분되는 부위이므로 피해자가 오해하였을 가능성이 낮다고 보아 피고인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진료실 안에서 의료인이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예방 지침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첫째, 민감 부위를 진찰하기 전에 반드시 진료 목적과 접촉 부위,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명시적인 동의를 구해야 한다. 단순히 "진찰하겠습니다"라는 포괄적 말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 부위를 눌러보겠습니다. 괜찮으신가요?"와 같이 직접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둘째, 환자와 의료인의 성별이 다른 경우에는 간호사 등 제3자를 입회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도 성적 오해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권장되고 있으며,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법적 판단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셋째, 탈의는 필요한 범위 내에서 최소화하고, 커튼이나 가운, 담요 등을 활용해 환자의 신체 노출을 줄이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넷째, 신체 접촉은 최소한으로, 반드시 진료 목적과 관련된 부위에 국한해 시행하고, 반복적이거나 넓은 범위에 대한 접촉은 지양해야 한다. 환자가 불편함을 표현하거나 표정·행동에서 불쾌감을 보일 경우 즉시 중단해야 하며, 공감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진료기록에는 접촉의 필요성과 환자의 증상, 설명 및 동의 여부 등을 간단하게라도 반드시 기재해야 한다. 이러한 기록은 추후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방어 수단이 된다.

진료는 환자와 의료인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다. 진료 목적이라 해도 환자의 신체에 이루어지는 접촉은 의학적 필요성, 대체 수단의 존부, 설명과 동의, 객관적 기록이라는 네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법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단순히 한 의료인의 형사처벌을 넘어서, 모든 의료인에게 진료실이라는 공간이 결코 '면책의 장'이 될 수 없음을 상기시킨 사례다. 환자의 감정과 인권을 존중하는 진료가 진정한 의료행위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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