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자리에서

가톨릭관동의대 1학년 정지은
발행날짜: 2025-09-22 05:00:00
  • 가톨릭관동대학교 본과 1학년 정지은

복학한 지 이제 2주가 지났다. 강의실에 앉아 심장 순환 단원의 슬라이드를 따라가다 보면, 아직 몸이 학교의 리듬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음을 실감한다. 휴학 동안 느긋하게 흘러가던 시간과 달리, 다시 시작된 본과 생활은 빽빽한 강의와 수많은 개념들로 채워져 있다.

지금 배우는 것은 심장의 순환, 그리고 그와 관련된 임상적 주제들이다. 교과서 속 문장 하나하나는 명확하다. 심부전은 어떤 기전으로 발생하는지, 허혈성 심질환 환자에서 어떤 약물이 쓰이는지, 부정맥의 종류는 어떻게 나뉘는지.

정리된 표와 알고리즘은 마치 정답을 보장해 주는 지도로 보인다. 하지만 그 지도를 바라보면서도 자꾸 의문이 생긴다. 실제 환자 앞에서는 저 복잡한 알고리즘이 정말 그대로 작동할까? 그리고 그 순간, 좋은 의사라면 어디까지 이 이론을 끌어내어 쓸 수 있어야 할까?

복학 전, 나는 이런 고민을 깊게 하지 않았다. 주어진 커리큘럼에 따라 공부하고 시험을 치르는 일이 전부였다. 하지만 잠시 멈췄다가 돌아와 보니, 강의실 내에서 배우는 내용들은 단순히 '외워야 할 지식'이 아니라 '앞으로 써야 할 도구'라는 사실이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요즘은 강의 노트에 적힌 기전 하나를 보면서도 곧장 연결해 묻곤 한다. "만약 내가 의사가 된다면, 이 지식이 환자에게 어떤 의미로 쓰일까?"

심장내과 교수님들께서는 심장은 단순한 펌프가 아니라 전신과 연결된 복합적 기관이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심장 기능 하나가 흔들리면 폐, 신장, 간까지 연쇄적으로 무너진다고.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좋은 의사란 특정 기술 하나로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환자를 대하는 태도, 지식을 적용하는 능력, 동료와 협력하는 자세가 서로 맞물릴 때 비로소 역할이 완성된다. 어쩌면 의사의 길도 하나의 '순환'일지 모른다.

강의 중 다루는 증례 문제들은 이런 고민을 더 자극한다. 예를 들어, 흉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응급실에 왔을 때 어떤 순서로 진단하고, 어떤 치료를 먼저 시작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들이 있다. 이런 질문들의 답은 정해져 있고, 교과서에는 그 근거가 잘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문제를 풀면서 늘 망설이게 된다.

좋은 의사라면 단순히 정답을 떠올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환자의 상황에 맞춰 우선순위를 정하는 판단력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판단은 환자의 나이, 동반 질환, 경제적 여건과 같은 교과서 바깥의 요소까지 고려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직 본과 1학년인 나에게 이런 고민은 어쩌면 이른 것일 수 있다. 하지만 휴학 이후 돌아온 지금, 나는 이런 질문을 품는 것이 오히려 진정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험이 다가오면 성적이 우선순위가 되고, 점점 더 문제 풀이에 매몰되기 쉽다. 그럴수록 '좋은 의사가 무엇인지'라는 질문은 뒷전으로 밀린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이 2주 동안 배운 심장 수업 속에서, 의사로서 살아갈 긴 여정의 방향을 확인하고 싶다.

좋은 의사가 된다는 것은 아마 한 가지 정의로 고정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빠른 판단과 정확한 처치가 전부일 수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환자와의 신뢰와 대화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식만으로도, 마음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심장이 혈액을 보내고 받으며 순환을 완성하듯, 의사 또한 지식과 태도를 오가며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복학 2주 차, 나는 여전히 학교의 속도에 적응하느라 바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런 질문을 붙잡고 싶다. 지금 배우는 병리 기전과 약물의 작용 기전이 언젠가 환자를 살리는 순간에 어떻게 이어질지, 그리고 그때 나는 어떤 의사로 서 있을지를. 아마 그 답을 찾는 일은 시험보다 훨씬 오래 걸릴 것이다. 그러나 서둘러 정답을 내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질문을 잃지 않는 것, 그 질문을 품은 채 하루하루 배워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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