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의료의 위기는 언제까지?

서울특별시의사회 송정수 부회장
발행날짜: 2025-12-15 05:00:00
  • 서울특별시의사회 송정수 부회장

대한민국의 의료는 지금 거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 오랜 시간 세계 최고 수준의 진료 역량과 국민건강보험 체계를 바탕으로 '의료 접근성 세계 1위'라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그 이면에는 심각한 균열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필수의료 붕괴, 지방의료 공백, 저수가 구조, 필수 의료인력의 부족, 그리고 정부와 의료계의 불신과 불통이 복합적으로 얽혀 우리 사회의 근본적 의료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필수의료 인력의 붕괴다. 산부인과, 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등 생명을 다루는 분야는 업무 강도와 위험도는 높지만 보상은 턱없이 낮고, 법적·사회적 책임은 가혹하도록 과중하다.

젊은 의사들이 이러한 분야를 외면하면서 필수 진료 공백은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지방 중소병원은 인력 확보에 실패해 분만실, 응급실, 중환자실 운영이 중단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의료계 내부 문제가 아니라 국민 생명과 직결된 사회적 위기다.

최근 쟁점이 되는 ▲한의사 X-ray 사용 허용 ▲성분명 처방 의무화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 고시 ▲의료기사 단독개원 허용법안 추진 등의 문제는 의사들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전문가 집단인 의료계와 아무런 합의 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는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국회는 의료계와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강력하게 추진하는 실정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의약분업, 의학전문대학원제도, 의대정원 2000명 증원 등 의료계와 합의 없이 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진행된 대부분의 의료정책은 원래 목적했던 그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또한 역대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저수가 구조와 과도한 규제는 병의원의 경영난을 심각하게 만들었다. 현재의 건강보험 중심의 의료체계는 국민에게 우수한 진료에 저렴한 진료비를 제공하는 장점이 있지만, 의료기관에는 치솟는 인건비와 시설투자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남긴다.

특히 중소병원과 개원가는 인력비 상승과 물가 부담 속에 하루하루 버티기조차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의료가 공공재라고 부르는 정부는 그 명분 아래 지속 가능한 보상 구조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필수의료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의료 생태계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치권과 의료계의 불신과 대립도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의료인력 확충, 공공의료 강화, 지역의료 강화, 의료비 절감 등을 명분으로 여러 정책을 추진하지만, 의료계는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하지도 않고,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만을 고려하고, 현장의 현실을 외면한 일방적 접근이라고 반발한다.

또한 정부와 정치권과 일부 이익단체는 의사들의 반발을 밥그릇 싸움이나 집단이기주의로 내몰며 의사들을 매도하고 있으며 의사집단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의도적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의료정책은 대립과 감정이 아닌, 과학적 근거와 상호 신뢰 위에 세워져야 한다. 생명을 다루는 의료는 정치적 실험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결과로 다루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의료에는 여전히 희망의 불씨가 살아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진과 의료기술과 IT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보여준 의료진의 헌신과 대응력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디지털 헬스케어, 인공지능 진단, 정밀의학 등 새로운 기술혁신이 의료의 효율성을 높이고 접근성을 확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크다. 특히 AI 기반 영상진단, 맞춤형 유전자 치료,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질병 예측 등은 의료현장의 부담을 덜고, 환자 중심의 치료로 나아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분명하다. 첫째, 필수의료 인력에 대한 실질적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위험수당, 전담 인력 확충, 근무환경 개선 등 현실적인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둘째, 의료수가의 합리적 조정과 지속 가능한 보상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단순히 인력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의료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의료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소통 강화가 절실하다. 정부는 의료계와 진정성 있는 대화로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의료의 본질은 생명을 지키는 일이며 그 중심에는 항상 사람, '환자와 의료인'이 있다. 정부의 정책도, 의료계의 노력도 결국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한 목표 아래 만날 때 의미가 있다. 대립과 불신을 넘어 협력과 신뢰로 나아간다면, 대한민국 의료는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는 때로 새로운 도약의 출발점이 되는 기회가 된다. 지금이 바로 그 변화를 위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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