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적 기만, 의료인력 추계의 민낯

경남의사회 마상혁 공공의료위원장
발행날짜: 2026-01-05 05:00:00
  • 경남의사회 마상혁 공공의료위원장

최근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이하 추계위)가 내놓은 '2040년 의사 1만 1136명 부족'이라는 성적표는 대한민국 보건의료 정책 거버넌스의 파산을 알리는 조종(弔鐘)이나 다름없다.

전문가들이 참여했다는 형식적 명분 뒤에 숨어, 이미 정해진 증원 숫자를 향해 달려간 이번 과정은 '과학적 근거'라는 수사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오용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국가 백년대계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정책이 졸속과 기만으로 점철된 것은 의사이기 이전에 정책 전문가로서 참담함을 금치 못할 일이다.

가장 먼저 지적해야 할 점은 절차적 정당성의 완전한 상실이다. 추계위는 미래 정책을 결정함에 있어 턱없이 촉박한 일정에 쫓겼다. 15차례의 회의는 심도 있는 논의의 장이 아니라 정부의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전문가 단체들이 위원으로 참여했으나, 이들이 현장의 복잡한 변수들을 피력하고 이를 추계 모델에 반영하는 실질적인 피드백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식 발표 전, 확정되지 않은 수치를 언론에 흘려 여론을 선점하려 한 행태는 정책의 투명성을 스스로 훼손한 행정 편의주의의 극치다. 이는 전문가를 정책의 동반자가 아닌 ‘들러리’로 세워 국민을 기만한 명백한 거버넌스의 실종이다.

기술적 측면으로 들어가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번 추계의 주력 모델로 활용된 ARIMA(자기회귀누적이동평균) 모형은 과거의 패턴이 미래에도 반복된다는 가정하에 단기 예측에 최적화된 도구다. 20년 뒤의 장기 수요를 ARIMA로 도출하는 것은 기상청의 일주일 예보 모델로 20년 뒤의 기후 변화를 맞히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학술적 난센스다.

보건의료 환경의 구조적 변화와 AI 도입에 따른 생산성 변화, 정책적 개입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모델을 국가 정책의 근거로 삼는 것은 방법론적 파산 선고나 다름없다. 내부 위원들 사이에서조차 “학부생 보고서 수준”이라는 비판이 쏟아진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러한 행태는 과거 윤석열 정부 초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연)의 편향된 보고서를 근거로 증원을 밀어붙였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당시 감사원 감사에서도 지적되었듯, 특정 수치를 만들기 위해 데이터를 재산출하고 가공했던 보사연은 이번에도 과학적 중립성보다는 권력의 입맛에 맞는 결과물을 내놓는 데 급급했다. 이제 보사연은 국책연구기관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심각하게 자문해야 한다. 객관성이 결여된 연구 결과는 정책적 조언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독소가 될 뿐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장기적인 숫자 놀음에 매몰되어 당장 눈앞의 단기적 정책 보완은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40년의 수급 불균형보다 무서운 것은 현재 진행 중인 필수의료의 붕괴와 지역의료의 공동화다. 정부의 계획대로 대규모 증원을 강행한다면, 그들을 가르칠 교수 요원 확보와 천문학적인 예산 확보는 어떻게 할 것인가? 교육 인프라의 한계를 무시한 숫자의 밀어붙이기는 의학 교육의 질적 파탄을 초래하고, 결국 국민 건강권에 대한 심각한 위해로 돌아올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숫자'라는 신기루에서 깨어나야 한다. 과학의 가면을 쓴 정치적 폭거를 멈추고, 의료계와 실질적인 신뢰 회복을 위한 거버넌스 재구축에 나서야 한다. 불확실한 모델에 근거한 졸속 발표를 철회하고, 장기 전망과 단기 처방이 조화를 이루는 정교한 정책 설계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추계는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을 붕괴시킨 '통계적 기만'의 역사적 증거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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