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제이피아이헬스케어 김진국 대표
"이동형 CT 개발 등 니치 전략으로 입지 구축…구조적 성장"
[메디칼타임즈=최선 기자] 4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글로벌 엑스레이 그리드 시장을 선도해 온 제이피아이헬스케어(JPI Healthcare)가 부품 전문 기업을 넘어 완제품 시장에서도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국내외 굴지의 의료기기 기업들에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전략적 파트너'로서, 제이피아이헬스케어는 고객사와 직접 경쟁하는 대신 시장의 공백을 메우는 틈새 전략을 택했다.
김진국 대표는 "우리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기존 고정형 CT가 닿지 못하는 모빌리티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런 원칙은 출발점일 뿐, 실제 핵심은 '경쟁이 덜한 곳에서 더 높은 기술 장벽을 쌓는 것'에 가깝다. 비어 있는 지점을 파고들어 오히려 더 강한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는 방식. 김진국 대표를 만나 자사의 경쟁력과 미래 비전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고정형은 가라"…모빌리티로 무장한 이동형 CT
제이피아이헬스케어의 비즈니스는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운영된다. 엑스레이 그리드(Grid)를 중심으로 하는 부품 사업부, 이동형 CT와 같은 완제품 사업부, 그리고 80년 설립 이후 구축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트레이딩 사업부다.
부품 사업의 핵심인 그리드는 영상의 산란선을 제거해 해상도를 높이는 필터 역할을 한다. 최근 영상 장비의 해상도가 급격히 올라가면서 고사양 그리드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김진국 대표는 영상 장비가 조밀해질수록 그에 맞는 높은 해상도의 그리드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영상 장비가 좋아질수록 그리드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며 "디텍터 해상도가 올라가면 그에 맞는 고성능 그리드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쪽은 가격도 괜찮고 이익률도 괜찮은 시장"이라며 "반대로 일반 엑스레이 시장은 가격 경쟁이 치열해서 수량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눈에 띄는 변화는 산업용 시장 확장이다. 과거 의료용에 머물던 그리드 기술이 보안, 식품, 산업 검사 영역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김 대표는 "예전에는 산업용 영상이 '이물질 보이느냐' 정도였다면, 지금은 '얼마나 정확하게 보이느냐'로 바뀌고 있다"며 "그래서 의료 수준의 영상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 유럽 대형 업체들과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조만간 시장이 크게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 흐름을 '틈새의 확장'으로 봤다. 처음에는 작은 시장처럼 보이지만, 기술이 쌓이면 그 시장 자체가 커진다는 것. 완제품 사업 역시 같은 전략 위에 있다.
JPI가 선보인 이동형 하이브리드 CT는 기존 CT와 정면으로 경쟁하지 않는다. 김 대표는 "저희 제품은 전신 CT가 아니라 팔, 다리 중심의 정형외과 영역에 맞춰져 있다"며 "엑스레이보다 훨씬 선명하고, 토모 기능으로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는 게 강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작년 시카고 전시회에서 선보인 이동형 하이브리드 CT는 국내 정형외과와 동물병원 시장에서 이미 20여 대가 판매되며 가능성을 입증했다. 올해는 작년 대비 3배 이상의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존 CT가 육중한 크기와 고전압 전력 시설을 요구하며 특정 공간에 고정돼 있었다면, 제이피아이의 제품은 일반 벽전원(220V)만 꽂으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플러그 앤 플레이(Plug & Play)' 방식을 구현했다. 로봇 휠 메커니즘을 적용해 좁은 수술실이나 병실에서도 힘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김진국 대표는 이동형 CT의 수요가 생각보다 훨씬 방대하다고 강조한다. 야전 병원이나 선별 진료소처럼 장비가 직접 환자에게 찾아가야 하는 환경에서 그 진가가 드러난다.
특히 정형외과에서는 전신을 찍을 필요 없이 팔, 다리 등 국소 부위의 골절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아, 엑스레이보다 월등히 깨끗한 영상을 제공하면서도 이동이 간편한 이 제품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단순히 이동만 편한 것이 아니다. 이 장비는 일반 영상, 동영상, 그리고 단층 영상(토모)까지 세 가지 기능을 하나로 통합했다. 유지 보수 비용 역시 일반 CT 대비 5분의 1에서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춰 중소 병원의 진입 장벽을 허물었다.
■AI는 하드웨어의 적이 아닌 파트너…'피지컬 AI'로의 진화
최근 의료기기 시장에서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영상 개선 기술이 화두다. 일각에서는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인 그리드의 역할을 대체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김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소프트웨어 처리는 기존 데이터 값을 가공해 스무딩(Smoothing)하는 것이지, 없던 정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지멘스나 GE 같은 글로벌 하이엔드 기업들이 여전히 정밀한 물리적 그리드를 고집하는 이유도 고객에게 왜곡 없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제이피아이헬스케어 역시 5년 전부터 AI 팀을 별도로 운영하며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키워왔다. 다만 이들의 AI는 그리드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드로 얻은 양질의 데이터를 더욱 최적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김 대표는 올해 연말 하드웨어와 AI를 접목한 시너지를 보여주고, 내년에는 '피지컬 AI' 단계로 넘어가 진단의 정확도를 극대화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저선량으로도 CT급 영상을 구현해 재촬영 없이 한 번에 정확한 진단 보조가 가능하게 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국내 의료기기 업체들이 겪는 공통적인 어려움은 외산 장비에 익숙한 국내 대학 병원의 높은 문턱이다. 젊은 의사들이 수련 과정부터 글로벌 대기업의 장비에 길들여져 있어, 국산 신제품이 성능이 좋아도 선택받기 쉽지 않다.
제이피아이헬스케어는 이를 타파하기 위해 초기 교육 단계부터 침투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최근 서울대 치과병원과 협력해 학생들과 함께 영상을 개선하고 장비를 활용하는 연구를 시작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 대표는 "당장 임상을 위해 투입되는 연구용역비가 부담스럽긴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롱런을 위한 길"이라며 "더뎌 보여도 뚜벅뚜벅 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인터뷰 내내 김 대표가 강조한 점은 '차별화'다. 남들이 다 하는 일반 엑스레이 시장에서 가격 경쟁을 벌이기보다, 기존 장비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불편함을 찾아내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제이피아이의 생존 방식이다. 이는 부품을 공급받는 고객사들과의 상생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선택이다.
의료영상 산업에서 JPI가 보여주는 행보는 명확하다. 틈새를 선택했지만, 그 틈새를 키워 결국 주류 시장으로 끌어올리는 전략. 그리고 그 중심에는 '경쟁하지 않으면서도 더 강해지는' 역설적인 성장 방식이 자리하고 있다.
"부품 사업에서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완제품 시장에서도 '제이피아이가 만들면 다르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 김진국 대표는 이것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