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료정책학교 장재영 교육연구처장

[메디칼타임즈=대한의료정책학교 장재영 교육연구처장] 하루가 멀다 하고 지역의 열악한 의료 인프라를 꼬집는 소식들이 들려온다.
그 해법 중 하나로 「필수의료 강화 지원 및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를 위한 특별법」, 이른바 지역필수의료법이 내년부터 시행된다. 이 법은 담배 개별소비세의 55% 등을 재원으로 무려 연간 1조 원 이상의 특별 회계 설치를 포함한다.
지역보건법,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등 유사한 내용을 다루는 법안이 있음에도 새로운 특별법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이는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 흔히 '지필공(지역, 필수, 공공)' 영역에 대한 적극적인 국가 개입을 주문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재원이 현장에 제대로 쓰인다면, 지역에서 묵묵히 일하는 의료진에게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고 환자에게도 더 나은 의료 접근성이 보장될 수 있다. 전공의의 입장에서 추후 몸담아야 할 지역의 의료환경을 떠올리며 법안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단순한 파견 근무의 확대는 의료진의 참여를 위축시킬 수 있다
법 제10조와 제14조에는 필수의료 인력의 파견 및 지원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왕성히 활동 중인 타지역 의사를 해당 지역으로 유입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많은 부분은 지역거점의료기관 (공공의료기관 혹은 대학병원)의 의료진이 파견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이때의 원칙은 '파견은 일시적 방편이며, 그 지원은 충분하게'가 되어야 한다.
국내외 연구는 지역 내 교육/수련 경험이 지역 잔류의 핵심 요인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재의 전공의나 젊은 전문의들은 의과대학 교육 및 수련 과정 중 실제 지역사회 의료와 충분히 접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파견 근무가 전문적 성장의 기회가 아니라 부족한 인력을 임시로 메우는 방식으로 운영된다면, 참여 의지를 높이기보다 오히려 기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의과대학 교육에서 지역사회 접촉을 늘리는 것이 장기 과제라면, 이미 통과된 지역의사제와 국립의전원을 통해 의무복무해야 하는 인원들이 실제 남을 수 있는 경로를 만드는 것은 중기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파견 수련은 그 전까지의 단기적인 해결책으로 접근해야 하며, 파견수당 및 체류비 지원, 하나의 커리어패스로서 인정되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필수의료 진료권의 탄생, 하지만 환자가 오지 않는 권역에는 발전도 없다
지역필수의료법에서 말하는 '필수의료 진료권'은 1998년 폐지된 의료보험 진료권과는 다르다. 환자의 이동을 제한하려는 장치라기보다, 행정 단위로 진료권을 설정해 권역 내 의료기관 간 연결성과 책임성을 높이려는 개념에 가깝다.
그러나 진료권을 설정하는 것만으로 환자 흐름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해당 권역 안으로 환자가 유입되고, 또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진료받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2024년 기준 서울 소재 의료기관에서 진료받은 환자 중 타지역 환자는 41.5%에 이른다. 환자가 없는 곳에는 의료진도 모이기 어렵고, 의료진이 없는 곳에서는 교육과 연구도 축적되기 어렵다. 이에 정부는 진료의뢰·회송 시범사업과 최근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을 통해 지역으로의 환자 분산과 의료전달체계 회복을 시도하고 있다.
이와 연계하여 새로운 재원은 지역거점병원의 인프라 구축뿐 아니라, 환자가 지역 안에서 치료를 이어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에도 쓰여야 한다. 필수의료 분야의 회송환자 관리료를 신설하고, 환자가 지역에서 필요한 보건의료 자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바우처를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방정부의 역량 및 역할 확대도 함께 되어야 한다
지역필수의료법은 국가 차원의 종합계획뿐 아니라 시도별 시행 계획을 두고, 지역에는 필수의료위원회를 신설해 정책 수립과 조정 과정에 지자체의 참여를 제도화하는 구조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정책 역량이 필요함은 자명하다. 하지만 지방정부가 그 여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웅기 외(2024)의 경기도공공보건의료지원단 보고서는 경기도처럼 규모가 큰 지자체에서조차 보건의료 분야의 지방정부 전문성이 취약하고, 지역보건의료심의위원회 등 기존 상설 기구가 형식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한다.
따라서 지역의 자체 정책 수행능력을 키우기 위해 특별회계 사업 항목에 지자체 내 보건의료 정책 전담인력 확충, 지역 의료이용 데이터 분석 지원,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의 보건의료 정책역량 강화 프로그램 등이 명시될 필요가 있다. 지역필수의료법의 숨은 전제는 실행력 있는 지방정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역필수의료법은 출발점에 서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재원이 단순한 인력 파견, 장비 보강, 병원 지원에 머물지 않고 지역에 지속 가능한 의료역량으로 남도록 설계하는 일이다. 의료진이 일할 수 있고, 환자가 믿고 머물 수 있으며, 지방정부가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지역필수의료법이 진짜 성과로 이어지는 길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