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찬 구스 COO, 단순 시장 넘어 글로벌 협력 거점 주목
인큐베이터 '코랩 커넥트' 출범…스타트업 육성 본격화
[메디칼타임즈=문성호 기자]"이제 한국은 단순한 시장(Market)의 개념을 넘어, 글로벌 혁신을 견인하는 핵심 거점(Hub)으로 자리매김했다."
글로벌 빅파마 바이엘이 한국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층 더 격상됐다. 한국의 R&D 역량과 과학적 수준을 높이 평가하며, 단순한 의약품 판매처가 아닌 오픈 이노베이션의 핵심 파트너로 낙점한 것이다.

26일 바이엘 제약사업부 세바스찬 구스(Dr. Sebastian Guth) 글로벌 최고운영 책임자(Worldwide COO)는 메디칼타임즈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 시장의 R&D 경쟁력을 평가하며 협력 의지를 드러냈다.
한국 시장 '혁신 견인 거점'으로 격상
세바스찬 구스 COO에게 한국은 각별한 도시다. 그가 제약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던 25년 전(2002년), 생애 첫 해외 출장지로 방문했던 곳이 바로 한국이기 때문이다.
그는 "2002년 당시와 비교하면 현재 한국의 과학계와 의료 시스템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며 "그 역동적인 성장 과정을 꾸준히 지켜봐 왔기에 한국 시장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운을 뗐다.
실제로 바이엘이 평가하는 한국 제약 시장의 객관적 지표는 독보적이다. 2024년부터 2029년까지 한국 제약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 전망치는 7.6%로, 글로벌 평균 성장률인 5.1%를 크게 상회한다. 다국적 제약사들의 국내 R&D 투자 규모 역시 2019년 약 4836억 원에서 2023년 8729억 원으로 2배 가까이 급증했다.
구스 COO는 "현재 한국은 제약사 주도 임상연구 건수 기준으로 전 세계 6위, 아시아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신약 개발 후보 물질 수 기준으로는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며 "국가별 혁신 생태계를 평가하는 5가지 핵심 요소인 ▲과학의 질적 수준 ▲벤처 캐피탈 자금 접근성 ▲규제 체계의 안정성 ▲지적 재산권 보호 ▲혁신에 대한 보상 체계 등 모든 면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이러한 확신을 바탕으로 바이엘은 최근 국내 바이오제약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글로벌 인큐베이터 네트워크인 '바이엘 코랩 커넥트 서울(Bayer Co.Lab Connect Seoul)'의 공식 출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독일 베를린, 미국 케임브릿지, 일본 고베 등에 이어 한국을 글로벌 혁신 거점 도시로 공식 인정한 셈이다.
구스 COO는 "한국의 신생 스타트업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자본이나 실험 공간이 아닌, 글로벌 수준의 전문성"이라며 "바이엘이 가진 규제 체계 노하우, 비즈니스 모델 구축, 약가 및 시장 접근 전략 등의 전문성을 전수해 한국의 우수한 과학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무대로 도약할 수 있도록 직접 이끌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아순덱시안' 등 차세대 파이프라인 자신감
이날 인터뷰에서 구스 COO는 바이엘이 겪은 좌절과 이를 극복해 낸 '과학에 대한 확신'을 공유하며, 향후 회사의 성장을 견인할 핵심 파이프라인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바이엘은 최근 '파마 미디어 데이'를 통해 역대 가장 강력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현재 종양학, 심혈관·신장 질환, 신경학, 희귀 질환, 면역학을 5대 핵심 치료 영역으로 삼고 총 33개의 임상 프로그램(1상 19개, 2상 6개, 3상 8개)을 가동 중이다.
특히 주목받는 자산은 차세대 혈액응고인자 XIa(factor XIa) 억제제인 '아순덱시안'이다. 아순덱시안은 지난 2023년 심방세동 환자 대상 3상 임상이 중단되며 한차례 큰 좌절을 겪은 바 있다.
구스 COO는 "제약 산업에서 임상 후보 물질의 90%가 실패하며, 신약 하나에 10~15년의 시간과 26억 달러 이상의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며 "2023년 당시 좌절이 있었지만, 우리는 포기하는 대신 과학적 근거를 처음부터 다시 면밀히 재검토했다. 생물학적 기전이 옳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정면 돌파를 선택한 바이엘은 '2차 뇌졸중 예방'으로 방향을 선회했고, 최근 발표된 3상 임상 연구에서 2차 뇌졸중 발생률을 26% 감소시키는 전례 없는 성과를 도출해 냈다.
구스 COO는 "1차보다 치명적인 2차 뇌졸중은 미충족 수요가 매우 큰 분야"라며 "현재 글로벌 규제 기관과 승인 논의를 진행 중이며, 새로운 치료 기준을 제시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 외에도 바이엘은 ▲박출률 보존 심부전(HFpEF)으로 적응증을 확장한 만성 신장병 치료제 '케렌디아' ▲전립선암 치료제 '뉴베카' ▲황반변성 치료제 '아일리아 8mg'을 전면에 내세워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나아가 전이성 거세 저항성 전립선암(mCRPC)을 타깃으로 하는 방사성 리간드 치료제(RLT) '225Ac-PSMA Trillium', 당초 기대보다 빠르게 3상 임상에 진입한 파킨슨병 세포 치료제 '벰다네프로셀' 등 차세대 모달리티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그는 "특허 만료와 제네릭 경쟁이라는 도전적인 환경 속에서도 바이엘의 핵심 제품들은 외부 전망치를 상회하는 강력한 모멘텀을 보이고 있다"며 "2027년부터는 4~6%대의 성장세를 회복하고, R&D와 회사 운영 전반에 AI 및 머신러닝을 적극 도입해 2030년까지 영업이익률을 30%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했다.
"혁신 신약 가치 인정 고민…치료제 적기 공급에 최선"
한편, 다국적 제약사들이 한국 시장에서 공통적으로 직면하는 '약가 및 가치 인정' 등 시장 접근성(Market Access) 이슈에 대한 제언도 잊지 않았다. 국내 의료 재정의 한계와 혁신 신약의 도입 속도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함께 배석한 바이엘 코리아 이진아 대표는 "중증·희귀 질환 분야에서 혁신 신약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으나, 현재의 경제성 평가(ICER) 기준이 신약이 가진 진정한 가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면서도 "다행히 현 정부가 약가 개편 등을 통해 문제를 인지하고 있고, 관련 논의가 진전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진단했다.
세바스찬 구스 COO 역시 "제약 산업은 큰 위험을 감수하고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만큼 혁신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특허 보호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의약품이 제공하는 가치는 특허 만료 이후에도 오랫동안 사회와 환자들에게 지속적인 혜택으로 남는다"며 혁신성과 접근성의 공존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 임상 전문가들과의 긴밀한 파트너십을 지속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번 방한 기간 중에도 그는 초대형병원 심부전 및 임상 전문가들을 만나 케렌디아 등 신약의 임상적 유용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미국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케렌디아의 만성 심부전(HFpEF) 적응증을 승인한 국가이기도 하다.
구스 COO는 "신약이 승인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 진료 현장의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치료 혜택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며 "한국은 임상 연구 및 개발 프로그램에서 엄청난 강점을 지닌 국가인 만큼, 바이엘의 미래 핵심 파이프라인 추진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과 기여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