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제 개발 전략 놓고 회사와 전 임상본부장 충돌
잘못된 임상설계 주장 속 법원 "직무태만 보기 어려워"
[메디칼타임즈=김민건 기자] 글로벌 제약사 MSD의 키트루다 병용 협업 무산 책임이 전 임상본부장에 대한 핵심 징계 사유 중 하나가 돼 해고로 이어졌다.
판결문에는 바이오벤처가 개인에게 임상개발 성패의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수 있는지를 둘러싼 갈등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22일 메디칼타임즈 확인 결과, 김 전 본부장은 작년 10월 ABL바이오에 제기한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ABL바이오는 키트루다 병용 전략과 무상공급 협상 무산을 임상본부장의 업무 실패로 보고 징계·해고 사유로 삼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임상 설계의 미흡함은 일부 인정하면서도 '능력 부족과 해고할 수 있는 직무태만은 다른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현재 ABL바이오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로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이 진행 중이다.
김 전 본부장과 사측이 주요하게 충돌했던 지점 중 하나는 ABL바이오가 개발하던 항암 신약 후보물질과 키트루다 병용전략이었다.
ABL바이오는 2023년 7월 MSD로부터 신약 후보물질과 키트루다 병용을 논의하기 위한 피치미팅을 제안받았다. 키트루다 병용 가능성을 검토하고 키트루다 무상공급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자리였다.
김 전 본부장은 같은 해 8월 31일 미팅을 진행했지만, MSD는 10월 키트루다 무상공급 거절을 결정했다. 회사는 이 과정을 김 전 본부장의 핵심 징계 사유로 삼았다.
ABL바이오는 김 전 본부장이 피치미팅에서 표준요법에 맞지 않는 병용투여 디자인을 제시했고, 부서원들과 의견을 충분히 조율하지 않은 채 자신의 판단을 고집해 무상공급 기회를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기존 전임상 비용과 향후 임상개발 기회 등 유·무형의 손실을 입었다고 했다.
재판부도 당시 임상 디자인에 문제가 전혀 없었다고 보지는 않았다. 재판 과정에서 제출된 전문가 의견을 보면, 부적절한 대조군 설정과 서로 다른 환자군 간 치료요법 비교, 표준치료제가 다른 환자군을 하나의 병용요법 코호트에 포함한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또 다른 전문가는 "해당 연구 디자인이 중간 개발단계를 건너뛴 것으로 보이며 글로벌 제약사에 약물 공급 협력을 요청하기 위한 설계로는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은 임상 디자인의 한계와 키트루다 무상공급 거절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지 않았다. MSD가 당시 공급 거절의 주된 이유로 해당 후보물질이 유사한 접근법의 다른 프로그램과 비교해 차별성을 보여주는 근거가 제한적이라는 점을 제시한 것이 판단 근거였다.
임상개발 의사결정 구조도 재판부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ABL바이오는 연구개발 과정에서 DRC(Development Review Committee)를 통해 임상시험 디자인과 개발전략, 향후 계획 등을 논의했다. DRC에서 최종 승인 권한은 대표이사에게 있었다. 이러한 구조를 고려하면 키트루다 공급 거절 책임을 김 전 본부장 한 사람에게만 돌리기 어렵다는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신약 후보물질의 후속 병용전략을 둘러싼 DRC에서도 양측의 시각은 엇갈렸다. 회사는 김 전 본부장이 두 차례 열린 DRC에서 명확한 임상 전략을 제시하지 못했고,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면서 개발이 지연됐다고 주장했다.
회사 내부 관계자는 김 전 본부장이 DRC에서 "임상 디자인을 15개 정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식의 여러 선택지를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진술을 했다. 재판부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위한 DRC의 성격을 고려하면, 김 전 본부장 진행 방식이 회사가 요구하는 방향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봤다.
다만 DRC가 두 차례 열렸다는 사실 자체를 직무 태만의 근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논의 안건이 많아 시간이 부족했을 가능성이 있었고, 특정 병용약물을 제안한 것도 임상의 자문을 거쳐 팀 내부 논의 과정에서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봤다.
김 전 본부장이 후속 병용 전략으로 세툭시맙(제품명 얼비툭스)을 제안한 점도 회사가 문제로 삼은 부분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세툭시맙 제안이 외부 임상의 자문 결과 등을 토대로 팀 내부 논의 과정에서 나온 의견이었고, 이후 대표이사도 얼비툭스에 대한 추가 실험을 지시했다는 점을 고려해 직무태만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ABL바이오의 또 다른 신약 후보물질과 키트루다 병용전략에서도 비슷한 갈등이 이어졌다.
MSD가 피치미팅을 제안한 것은 2023년 12월 12일이었다. 일주일 뒤 열린 DRC에서 김 전 본부장은 키트루다 병용 부분을 한 장의 슬라이드에 'under discussion'이라고 표시했다. 이를 두고 "구체적인 임상전략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게 회사가 문제 삼은 부분이다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김 전 본부장이 해당 업무에서 배제된 이후 의학임상본부 소속 팀장이 2024년 1월 19일 MSD와 피치미팅을 진행했고, 키트루다 무상공급(예상 규모 1400만달러)을 승인받았다.
재판부는 MSD의 제안부터 DRC까지 준비 기간이 약 일주일에 불과했고, 김 전 본부장이 사흘 뒤 별도 DRC에서 상세한 병용전략을 다시 제시했다는 점을 고려해 김 전 본부장이 직무에 태만하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병용 전략의 설득력이 부족했다고 하더라도 "능력 부족으로 볼 수 있을 뿐, 직무 태만이나 직무상 의무불이행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회사 내부 평가에서 김 전 본부장은 저성과자 프로그램(PIP) 대상자였지만 당시 그가 총괄한 의학임상본부의 연간 목표 달성률은 100%였다. 이에 재판부는 일부 평가항목에 낮은 점수를 부여한 데 합리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ABL바이오는 MSD와의 협업 무산, DRC에서 전략 확정 지연을 임상본부장의 책임으로 본 반면 재판부는 임상개발 성패에 대한 평가와 개인에게 물을 수 있는 징계 책임은 구분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