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제품별 임상 지표 평가·보상 기간 단축 구상
의료계, 환자 부담 없는 검증 및 성과별 보상·퇴출 촉구

[메디칼타임즈=김승직 기자]의료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라 정부가 관련 수가체계를 마련 중인 가운데, 제품별 임상 지표를 통한 의료기관별 보상으로 안이 구체화했다. AI 제품별로 임상적 개선 목표를 사전에 설정하고, 실제 달성 여부를 평가해 보상하는 방식이다.
의료계에선 기관 단위 보상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임상적 유효성 검증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특히 AI의 시장 진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검증 비용이 환자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23일 대한의료인공지능학회 학술대회에서 보건복지부와 의료계, 산업계 전문가들이 의료 AI 전환(AX)에 따른 수가체계 개편과 상용화 전략을 논의했다.

정부, 제품별 임상지표 개선 평가 "기관 단위 수가 구상"
보건복지부 데이터진흥과 박정환 과장은 주제발표와 질의응답을 통해, 의료 AI의 임상적 성과에 기반한 기관 단위 수가체계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개별 환자에게 AI를 사용한 횟수에 따라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기관이 AI 활용 기반을 마련하고 실제 진료 성과를 개선했는지 평가하겠다는 방향이다.
구체적인 평가 요소로는 ▲보안 및 표준화 등 기본 인프라 구축 ▲의료기관 내부 거버넌스 확보 ▲제품별 임상적 지표 개선 여부 등을 제시했다.
특히 의료 AI마다 목표로 하는 임상적 효과가 다른 만큼, 제품별로 서로 다른 성과 지표를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기관이 특정 지표의 개선을 목표로 사전에 계획을 제출하고, 실제 달성 여부에 따라 보상하는 방식이다.
평가 기간도 가능한 한 단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장기간의 치료 결과보다 비교적 단기간에 확인할 수 있는 임상지표를 활용해 의료기관이 AI 투자에 따른 효과를 조기에 체감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박 과장은 "의료 인공지능의 사용량에 비례하게 하지 않겠다는 게 제 생각이다. 그보다는 어느 정도로 의료적 성과가 개선됐는지가 중요하다"며 "특정 제품에서 임상적 지표가 개선되도록 사전에 계획을 제출하고 실제로 이행됐다면 돈을 받을 수 있다. 제품마다 임상적 지표가 다르게 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의 시장 진입 부담을 줄이는 방안도 제시했다. 현재 의료 AI 기업들은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이후 건강보험 수가를 확보하기까지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정식 수가가 마련되기 전에도 의료기관과 기업이 협력해 임상 근거를 축적할 수 있는 경로를 구상하고 있다는 것. 초기 단계에서 환자 본인부담금을 활용하는 방안도 언급했으며, 효과가 확인되면 정식 보상체계로 진입하도록 하겠다는 설명이다.
다만 관련 수가와 구체적인 비용 부담 방식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박 과장은 이 같은 정책 방향을 의료 AI 확산을 위한 '골든 패스'로 제시했다. 정부는 GPU와 네트워크, 보안 등 공통 인프라를 제공하고 의료기관이 AI의 도입과 활용을 주도하는 구조다. 기업은 제품 성능과 검증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역할이다.
의료 AI가 대형병원에 집중돼 지역 의료격차를 확대할 가능성도 우려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의료적 성격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 의료기관에 AI 활용 바우처를 지원, 공공 보건의료 AI 고속도로 활용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박 과장은 "AI가 절실한 곳에서 먼저 도입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인력과 예산이 충분한 병원에서 빠르게 도입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의료격차를 발생시킨다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며 "시장을 먼저 작게라도 만들어주고 의료기관의 필요가 제품 개발로 반영되는 선순환 구조를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계 "기관 단위 보상 공감…검증 비용 환자 전가 안 돼"
이어진 주제발표에서 대한의료인공지능학회 박창민 회장 역시 기존 행위별 수가의 한계를 지적, AI 활용 목적에 따른 보상체계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정부가 구상하는 조기 시장 진입 및 임상 근거 축적과 관련해선, 검증에 따른 환자 부담을 최소화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현재 국내 AI 기반 의료기기는 약 550개에 달하며 이 중 45개 제품이 수가 적용 단계에 진입했다. 하지만 실제 의료현장의 활용은 아직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박 회장이 제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의사들의 AI 사용 경험은 97%에 달했지만, 소속 의료기관에서 AI 의료기기를 활용한다는 응답은 20%에 미치지 못했다. 사용 중인 AI의 83%는 영상 판독에 집중됐다. 특히 개별 진료행위의 효율을 높이더라도 전체 진료 과정의 개선으로 연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실제 영국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흉부 엑스레이에 AI를 도입한 이후 판독 보고서 작성 시간은 47시간에서 34시간으로 줄었다. 하지만 최종 폐암 진단과 치료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유의미하게 감소하지 않았다.
이에 박 회장은 개별 진단 보조를 넘어 환자 선별과 의료진 호출, 진단 및 치료가 연계되는 전체 진료 흐름에 보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가체계 역시 행위별 수가와 기관 단위 수가, 국가 인프라 지원 방식으로 구분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일례로 환자 상태 악화 예측 AI나 의무기록 오류 검증 시스템과 관련해 기존 행위별 수가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관련 솔루션은 실제 위험이나 오류가 발견되는 사례가 적어, 모든 환자에게 비용을 청구하기보단, 기관 단위 보상이 적절하다는 설명이다. 반면 국가건강검진이나 보건소에서 활용하는 AI는 국가가 직접 구매하고 관리하는 방식이 적절하다고 봤다.
의료기관 질 관리 평가에 검증된 AI 활용 여부를 반영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를 통해 환자 본인부담금을 늘리지 않으면서 병원의 투자 유인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
박 회장은 "실제로 중환자실로 올라가는 환자가 100명 중 한 명도 안 되는데 그 한 명을 위해 나머지 99명이 돈을 내야 하느냐는 질문이 생길 수 있다. 이게 행위별 수가제의 함정이다"며 "이런 것들은 기관 단위의 서비스가 필요하다. 질 관리 항목에 검증된 AI 사용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행 의료 AI 선진입·후평가 제도의 보완도 촉구했다. 임상적 유효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기술의 한시적 비급여 사용이 장기화하면서 환자 부담과 신뢰 저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검증을 위해 전문의가 있는 의료기관으로 사용을 제한하면, 정작 해당 기술이 필요한 의료기관에서는 활용하기 어려워진다는 우려다.
이에 그는 신속한 시장 진입을 허용하더라도 안전성과 임상적 유효성, 비용 효과성을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효과가 확인된 제품에는 충분히 보상하되 그렇지 못한 제품은 퇴출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다.
박 회장은 "빨리하는 건 좋다. 하지만 빨리하더라도 검증은 분명하게 해야 한다"며 "이 검증은 환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으로 해서는 안 된다. 검증된 AI에는 충분히 보상하고 검증하지 못한 AI는 시장에서 퇴출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증권가 "의료 AI 상용화 관건은 임상 근거·보험제도"
미래에셋증권 김충현 수석연구위원은 국내외 의료 AI 기업의 사례를 통해 상용화 과정에서 임상 근거 확보와 보험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의료 AI 기업 하트플로우다. 관상동맥 CT 영상을 분석하는 이 회사는 2015년경 시장에 진입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임상 근거를 축적하고 보험 보장 확대를 추진해 왔다.
국내에선 씨어스테크놀로지의 성장에 주목했다. 기존 외래환자 중심의 웨어러블 심전도 검사에서 입원환자 모니터링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면서 새로운 상용화 모델을 구축했다는 평가다. 새로운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를 확보하는 대신 기존 행위와의 동등성을 입증해 보험제도에 진입하고, 대웅제약과의 유통 협력을 통해 현금 흐름을 확보한 점을 주요 성장 요인이라는 것.
다만 국가별 보험제도에 따라 동일한 기술이라도 상용화 성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짚었다. 의료 AI 기업들은 임상 근거와 사업 기반 확보에 상당한 자금이 필요한 만큼, 지속적인 투자와 성과 입증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김 연구위원은 "의료 AX는 기본적으로 헬스케어의 산업화 논법과 굉장히 유사하게 간다. 의료 AX의 국제화는 그 나라 정책에 따라 다르게 변한다"며 "자금 조달은 꾸준히 일어나야 한다. 기업들은 자금을 충분히 잘 활용하고 있다는 걸 꾸준히 증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