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 연극 동호회 '의극회'
‘존말코비치 되기’라는 영화를 보고나서 단 하루만이라도 좋으니 필립 카우프만-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상상을 한적이 있다. 여기 단지 머리가 아닌 그 사람을 통체로 뒤집어 쓴 사람들이 있다. 6개월을 연습하고 고작 2시간이지만 다른 인격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동호회 창립 40주년 기념 공연을 하는 서울의대 의극회를 만나기 위해 대학로로 향했다.
대학로의 ‘시민의적’이라는 플래카드가 먼저 시선을 끌었다.
그들을 만나러 간 그시각. 그들은 무대위에서 막바지 공연 준비에 매우 분주해 보였다.
외부인 등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기에 몰두하는 이들이 있었다.
술주정뱅이역을 맡은 김성수(봄빛병원) 회원은 작은 배역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확히 소화하기 위해 소홀히 하지 않았다.
메인 음악을 들을 때 마다 가슴이 뛴다는 김성수 회원은 “오랫만에 무대위에 서서 너무 좋다. 20년전 학창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라며 바쁜 와중에도 너무 행복하다”며 “요새처럼 많이 웃어본 적이 별로 없고 회원들간의 아껴주는 모습이 우리 의극회의 자랑”이라며 환한 미소를 짓었다.
또 그는 “무대에 올라서면 조명이 따뜻하게 느껴지고 시간이 지나면 관객이 보이면서 잘은 못하지만 연기의 맛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연극동호회인 만큼 회원들의 개성도 강해 보였다.
최인철(서울아산병원 마취과)회원은 이번공연에 아들 준수와 함께 출현하는 등 열성을 보였다.
최준수 군은 “아버지가 하라고 해서 했어요. 가장 좋아하는 건 컴퓨터 게임이지만 아빠가 좋아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연극연습에 빠지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의극회 자체로도 의미가 컸다.
동호회 창립멤버인 노준향(서울대 흉부외과 교수)회원의 폐암투병을 가슴깊이 아파하며 빠른 회복과 격려로 회원들은 그를 위해 무대위에서 혼혈의 힘을 쏟고 있었다.
노준향 회원의 절친한 친구이자 창립멤버인 이항 회원을 만났다.
“본과 1학년 때 국립극장에서 연극을 시작했어요. 의극회의 후배들이 이렇게 모여 연극을 할때 가슴이 벅차고 너무나 아름다워 보인다. 사실 연극을 하다보면 공부에 지장을 많이 받지만 회원들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열심이다”
그는 또한 이번 공연의 내용이 사회 속 의사역할에 대한 시사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의사의 참모습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이번 연극은 의사이기 때문에 더욱더 애착이 간다. 의사가 사회의 적이라는 게. 매도당하는게 안타깝다며 많은 의사들이 문화생활에 많이 참여하길 바라며 우리 회원들 연기 하나하나가 애착이 가며 연기속에 그들의 영혼이 보인다”
무대 밖에선 제작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이국현(서울의대 마취과 교수) 총무가 연습 마지막 날 공연 준비로 분주했다.
이국현 총무를 잠깐 만나 의극회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들었다.
“회원은 250명으로 73년 ‘멕베스’를 처음으로 76년엔 ‘슬픈카페의 노래’, 85년 ‘코뿔소’, 93년 ‘핵박사님의 배반’, 그리고 올해는 ‘시민의 적을 공연하게 됐다”며 “이 공연을 위해 6개월전부터 준비했고 모임 초기인 4개월동안에는 주말에, 12월부터는 매일 모임을 가졌다”
이국현 총무의 의극회 가입 동기는 남달랐다.
“고등학교때 명동에서 의극회가 공연한 ‘멕베스‘를 봤어요. 그때의 공연이 가입동기가 된 것 같아요. 대학에 진학하니 의극회가 있었고 그래서 바로 가입했어요”
그는 연극을 통해 ‘의사의 연극은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번 연극이 개인생활의 의미, 공동체적 의미, 그리고 연극 후 각자의 느낌 등 이런 두려움 때문에 다들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돼요. 특히 요즘 사회가 IT 계열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연극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쏟기가 그리 쉽지 않았을 거예요”
또 “93년 공연 이후로 OB와 YB가 이렇게 만나 허심탄회하게 얘기한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연극이기에 이게 가능한 것 같다”며 “앞으로는 10년이 아닌 3년에 한번씩 공연해 문화발전에도 힘쓰는 의사가 되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공연은 노르웨이 대사관의 아낌없는 후원을 받았으며 지난 5일에는 대사관을 위해 리셉션이 따로 열리는 등 그동안 힘들게 준비해온 연극이 성황리에 막이 올랐다.
끝으로 포항에서 비행기로 출퇴근하며 연극준비를 한 문상호(한동대 선린병원 정형외과) 회원은 약혼녀에 대한 사랑 전달해라고 기자에게 부탁했다. “희정아 사랑해”
이들은 삶의 주인공이 본인 스스로라는 것을 잊지 않고 일에도 연기에서도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 주어 갈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