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협, 정책 단체로 환골탈태 해야"

박진규
발행날짜: 2003-10-17 09:23:43
  • 16일 회의, 상근부회장제 도입 등 다양한 의견 쏟아져

병원협회의 16일 상임이사 및 시·도병원장 합동회의에서는 14일 문을 연 서울대병원 강남 건강검진센터와 정부의 경제특구 내국인진료 허용 추진 문제에 논의의 초점이 모아졌다.

올바른 의료정책 추진을 유도하기 위해 병협 회무에 대한 강도 높은 쇄신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날 회의는 당초 구범환 전 부회장, 강신영 전 학술위원장 등 이임 임원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만찬을 함께 하는 비교적 가벼운 자리로 마련됐다.

그러나 회무보고에 이어 시작된 자유발언 시간에 김광태 회장이 “강남 건강검진센터에 가서 보니 잘 꾸며져 있더라”는 발언을 하면서 난상 토론에 불이 붙었다.

이에 대해 박용현 부회장(서울대병원장)은 “건진센터 개설을 두고 일부 의료계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수익이 목적의 전부는 아니지만, 병원 운영비를 일부 충당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진료나 강남권 병·의원의 수익을 좀먹을 생각 없다. 건진은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고 생각한다. 건진을 통해 얻어지는 정보를 이용해 국민 건강검진 모델을 제시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백성길 정책이사(수원백성병원장)은 “미국 하버드 의대는 오직 훌륭한 의료진을 배출하는데 신경 쓴다. 부속병원은 없다. 주위의 유수한 병원과 관계 맺고 의료진을 훈련 시킨다”며 “그러나 서울대는 이런 역할을 하는데 힘쓰기보다 의료계를 말살 · 쇠퇴시키려는 행태를 보이는 것 같아 유감스럽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강남구 원지동 추모공원 일대에 건립될 예정인 국가중앙의료원과 관련해서도 “강남과 수도권 남부 지역에 있는 중소 병원이 궤멸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일부 참석자는 정부의 경제특구 내국인 진료 허용과 의료시장 개방에 대한 병협의 대응책 마련을 주문했다.

노성일 경영이사(미즈메디병원이사장)는 “경제특구에 외국 병원이 설립되는 것에 대해 병협의 입장이 세워지지 않았다”며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15일 삼성서울병원과 미즈메디병원에 독일의 민간보험회사 관계자가 방문한 일이 있다”며 외국 자본의 국내 민간의료보험시장 진출이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부산시병원회 조평래 회장(해동병원이사장)은 “서울대 병원의 건진센터는 작은 문제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경제특구내 외국병원이 진출하는 것”이라며 “부산 경남지역 병원급 의료기관은 경제특구 문제로 잔뜩 긴장하고 있다, 외국 병원 진출에 대한 병협의 대응책은 뭐냐”고 따져 물었다.

백성길 이사도 “인천 경제특구에 존스홉킨스병원 등 외국 병원이 들어오면 인접해 있는 길병원, 인하대병원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며 협회 차원의 치밀한 분석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건춘 기획위원장(서울아산병원의료원장)은 "의료시장 개방 움직임이 복지부의 생각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밀려서 하나씩 허용하는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 사회주의 의료방식이 고수되는 한 외국 의료자본이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급변하고 있는 의료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병원협회가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이 나왔다.

조평래 회장은 "매번 회의에 참석하지만 돌아가서 회원들에게 전해줄 얘기가 없어 허탈하다. 회원들에게 희소식을 전달해 줄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힘들어진다"며 진부한 회의 내용에 불만을 터트렸다.

구범환 전 부회장(고려의대)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젊어지고 전문화되어야 한다. 의협처럼 상근부회장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건춘 위원장은 "의료계가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파이'를 키우려는 노력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의협, 병협을 막론하고 전 의료계가 하나로 똘똘 뭉쳐야 한다. 지금 같은 분열상황은 공멸을 부를 것"이라며 회장단이 의협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일 것을 주문했다.

윤충 기획이사(경희대의료원장)는 "병협이 격을 높여야 한다"며 국가의 정책에 병협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라고 지적했고, 김광문 표준화·수련이사(영동세브란스병원장)도 윤 충 이사의 지적에 동감을 표시하며 "정책을 개발할 수 있는 고급 브레인을 영입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이에 대해 이석현 보험위원장(고대구로병원장)은 "병협은 그동안 의료기관 평가 수탁, 법정단체화 근거마련, DRG문제 해결, 입원요율 25% 인상등 성과를 얻어냈다"며 질타보다 힘을 보태줄 것을 당부했다.

김광태 회장은 “당장 죽어가는 중소병원에 대해 응급처치를 못하고 있는 것이 협회의 현실임을 인정한다. 병협이 힘을 키우려면 우선 회비가 잘 걷혀야 한다“며 ”여러 의견을 겸허히 수용해 협회의 전문화를 꾀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를 영입하는데도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병원협회의 대정부 정책과 관련해서도 김 회장은 “평화로 가는 길은 가시밭길이고, 전쟁으로 가는 길은 아스팔트 길이라고 생각한다”며 “병협은 평화로 갈 것이며, 그에 따른 고통도 감내할 것”이라고 말해 정부와의 대결 구도로 회무를 몰아가지 않을 방침임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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