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평준화 '명의' 무의미...고령화, 취업 문턱 높아져
[특별기획] 홀대받는 정년 퇴임 의대교수들새해 첫 날이 되면 대학병원 교수들은 해당과의 거두로 불리는 일명 ‘빅 가이’인 명예교수에게 신년인사를 드리기 위해 방문하는 것을 관례로 여기고 있다.
정년퇴임한 교수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30여년간 대학병원에 몸담은 채 학문발전과 후학양성에 전념해온 노(老) 교수들은 과거 은퇴한 선배들이 보여준 화려함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대학병원 교수진의 무한경쟁이 이미 시작된 가운데 정년교수를 모셔가는 ‘전관예우’는 옛 얘기가 된지 오래이다. 건강함을 유지한 대다수의 노년층은 정년을 앞두고 차후 진로에 대한 고민의 기로에 서있다. 이에 메디칼타임즈는 정년교수들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고 고령사회에 직면한 의사직종이 준비해야 할 부분을 고민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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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교수사회 권위주의 버리자
②선진국 교수제도에서 배우자
③젊은 교수진 미래를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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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과장부터 전임강사까지 교수들이 ‘뒷방 늙은이‘로 알려진 정년 교수들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스승에 대한 고마움을 전달하기 위한 도덕적 예의가 상당부분을 차지하겠지만 이면에는 노쇠하긴 했지만 ‘빅 가이’들이 병원이나 진료과에 미치는 영향력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처럼 퇴임 후 진료과의 정신적 지주로 알려진 정년교수들은 예전 같으면 많은 대학병원에서 서로 모시기 위한 치열한 경쟁속에 어느 곳을 선택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었으나 현재는 반대의 입장에 놓여있다.
소위 명문대로 불리는 대학병원이나 지방대병원 모두, 일간지나 방송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질환별 ‘명의’나 ‘최고 의사’ 등의 순위매기기가 무의미하다는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는 곧, 서울대병원에서 제주대병원까지 한국의 모든 교수진이 미국 유명병원 연수를 통해 익힌 표준화된 술기와 지식을 토대로 환자 진료와 연구에 적용, 발전시키고 있어 매스컴의 등수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 박사‘ 퇴색된지 오래...자리싸움 치열
이로 인해 예전처럼 ‘간 박사’ ‘암 박사’ ‘당뇨 박사’ 등 유명병원 교수에게 자연스럽게 따라붙던 ‘○○ 박사’라는 별칭이 퇴색되고 있어 몇 해 전까지 회자되던 ‘정년교수 모시기’는 흘러간 노래로 알려진지 오래이다.
여기에 이미 타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선배 정년교수들이 건강함을 유지한 채 자리굳히기에 들어가고 있어 정년교수 사이에서 보직을 잡기 위한 보이지 않은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대병원 외과계 한 노년교수는 “정년이 2년여 남은 지금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솔직히 고민된다”고 토로하고 “과거 같았으면 지금쯤이면 해당병원 진료과를 키우기 위해 ‘얼굴마담’으로 모셔가곤 했으나 이제 대학병원들이 평준화에 접어들고 있어 젊은 교수들 채용하기에 바쁘다”며 정년 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피력했다.
정년을 5~10년 앞둔 시니어 교수진에게 ‘정년 후 무엇을 하겠냐’는 질문에 상당수는 “정년은 아직도 먼 미래일 뿐”이라며 “부부동반으로 여행을 즐기는 편안한 생활을 하고 싶다”고 답변해 정년이 지닌 의미와 자신과의 관계를 무관하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정년이 닥쳤을 때 이들이 답변이 그대로 유지될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40여년간 환자 진료에만 전념한 의사직종의 특성상 몇 달간의 여유로운 생활은 가능할지 모르나 진료와 떨어진 새로운 생활은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는게 정년을 앞둔 교수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정년교수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높은 급여나 유명 대학병원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존중하고 예우해주는 ‘보직’이나 ‘명예’를 원하고 있다.
20년 넘게 생활한 퇴임교수들은 300만원 남짓한 공무원 연금이나 사립학교 연금으로 어느 병원의 봉직의가 되더라도 급여가 이 금액을 초과하면 연금이 삭감되는 제도의 특성상 물질적 대우는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다는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정년교수 "보직과 명예 원한다"
정년 교수들의 사회진출 문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요즘, 이들을 위한 의료계 구조가 새롭게 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조금씩 힘을 얻고 있다.
다시 말해 전문성을 방치하지 말고 쉬고 있는 인재를 십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통해 한국 의료계의 경쟁력과 사회적 발전을 모색해보자는 뜻이다.
물론, 이같은 공론에는 교수사회가 동의할지 모르나 정년을 앞둔 시니어 교수들이 간과해서는 안 될 사항은 자신의 권위와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관료주의와 권위주의로 군림하던 교수상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후배를 위해, 대학을 위해, 병원을 위해 자신을 낮추는 해탈의 모습으로 변화해야 한다.
서울대병원 한 중견교수는 “정년교수의 장점을 활용해 교육과 진료에 활용하는 것에는 동의하나 지금과 같은 권위주의가 지속된다면 이를 받아들이는 교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퇴임 후에도 욕심을 버리지 않고 군림하기를 원한다면 후배들이 겉으로는 고개를 숙일지 모르나 과거와 같은 존경의 대상에서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며 정년교수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몇 몇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교수정년제에 대한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교수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가부장적 족보체제와 상명하복식 구태가 여전히 남아있는 지금, 매년 교정을 떠나는 50여명이 넘는 퇴임교수를 위한 대비책은 논의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