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깡 전쟁'과 의료계

박경철
발행날짜: 2004-12-13 09:10:06
  • '시골의사' 박경철 (신세계 연합클리닉 원장)

미용사와 이용사협회의 바리깡 전쟁이 한창이다.

이 전쟁의 요지는 이렇다, 원래 이용사와 미용사는 그 수가 3 : 1 정도로 이용사가 많았지만, 이용사에게 주어진 법적 제한과 양 업조간의 비대칭적 규제로 인해 현재는 1 : 3 으로 그 수가 역전 되었다고 한다.

일반인이 이 전쟁을 보는 시각은 다분히 냉소적이다, 이용사들이 과거 소위 퇴폐이발소를 만들어 불법적인 영업을 남발함으로서 부모들이 자제들의 미용실 출입을 회피하였고, 이 때문에 이발소라는 환경을 접해보지 못한 신세대들 뿐 아니라, 일부 기성세대까지도 이용소를 외면하게 하였으므로 자업자득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시각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먼저 이용사 업계의 주장을 들어보면, 원래 이용사는 머리를 깎는 기술을 면허받은 것이고, 미용사는 머리를 다듬는 기술을 면허 받은것이므로, 머리를 깎는데 사용하는 도구인 소위 "바리깡"은 이용사의 고유 업무라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법규정은 이용사에게는 엄격하게 적용되어, 이용사는 머리를 깎거나 면도를 하는 행위 외에 퍼머나 탈색등의 다듬는 영업을 하거나 기술을 익힐 수 없었지만, 미용사들의 머리를 깎는 행위는 암묵적으로 허용됨으로서 양자간의 비대칭적 규제가 오늘의 이발소의 몰락을 초래하였다는 것이다.

사실 필자가 이 문제에서 누가 옳고 그르고의 판단을 내릴 위치에 있지도 않고, 또 그러고 싶지도 않지만,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번 분쟁의 승리자는 이용사도 미용사도 아니라는 점이다.

즉 보건복지부가 법대로 미용실의 바리깡 사용을 규제하겠다는 유권해석을 내리자, 이용학원이 붐비기 시작 한 것이다, 미용사들이 대거 이용사 자격증을 따러 이용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이 문제를 보는 미용사들의 입장은 명쾌하다.
어차피 이발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규정된 학원 수강과 형식적인 시험만 거치면 양쪽의 기술을 다 이용 할 수 있고 굳이 법적인 규제에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으므로 다소 번거롭지만 이용사 자격증을 같이 보유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사양업종이었던 이용학원이 난데없이 성황을 이루고, 이 사안의 진정한 승리는 이용학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얻고. 미용사는 새로운 자격증 획득을 위한 시간과 금전의 손실을, 이용사는 괜한 파문을 일으킨데 대한 여론의 질타를 받음으로서 결국에는 태산명동에 서일필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즉 이 문제는 앞으로 게임이론이나 사회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흥미롭게 연구해 볼 사안이 되어버린 셈이다.

사실 사안이 틀리고 경중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런식의 어리석은 분쟁들은 우리 의료계 주변에도 수없이 잠복해 있다,

가까이는 물리치료사의 단독 개원 문제도 그렇고 (사실 이 문제는 모든 의료 당사자들이 힘을 합쳐 불합리한 의료보험 제도를 먼저 고치지 않는 한 어떤식으로 마무리가 되던간에 의료기 업자만 살판나는 결과가 초래 될 것이다) 멀리는 양한방 일원화 문제도 그렇다.

양한방의 일원화 역시 앞으로 우리가 진지하게 다루어야 할 뜨거운 감자다.

원래 과학이란 진보를 전제로 하는 것이며 그중에서도 의학의 진보는 인간의 생명권이라는 측면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때문에 의학은 끊임없이 변신하고, 개혁하고 진보해야하며, 수없는 시도와 노력의 결과로서 겨우 일보의 진전을 이룰 수 있는 학문이기도 하다.

즉 의학은 치료의학을 발전시키는 것 못지 않게. 과거의 경험의학을 새롭게 검증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속에서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의료제도는 의학적 필요에 의해 시행된 행위라 하더라도, 양,한방간의 면허의 범위로 인해 무면허 의료행위가 될 소지가 있으며, 실제 임상에서는 한방병원에 입원한 뇌졸중 환자에게 서양의학적인 치료약물을 투여하기 위해서 형식적으로 일반의를 한두명 고용하거나, 한방병원내에 일반의원을 대리 개설함으로서 법적 규제를 피해나가고 있는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때문에 정부에서도 의료를 부가가치가 큰 산업으로 인정하고, 우리나라 의료를 구호만으로서가 아닌 실체적 의료허브로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기존의 규제 일변도의 정책보다는 양한방의 포괄적 교류와 협력, 나아가서는 의료 일원화를 통해, 우리나라가 미래의학을 이끌어 나갈 수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일대 전환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우기 이 문제를 접근하는 양 단체 역시, 기존의 기득권이나 밥그릇 싸움의 입장보다는 세계적 수준의 양한방 의료자원을 동시에 가진 우리나라의 강점을 살려, 향후 미래 의료를 우리가 주도 한다는 대의로 접근한다면 해법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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