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처방 금지 고시 폐기해야"

이동욱
발행날짜: 2008-10-02 09:36:12
  • 이동욱 대구시의사회 정책이사

10월 1일부터 동일성분 의약품의 중복 처방이 금지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의사들이 많다.

사건의 개요는 이러하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으로 환자들의 중복처방을 막기로 하고, 의약품 처방·조제 사전점검 시스템을 단계별로 구축하여 2010년까지 3단계에 걸쳐 대상 의료기관을 점진적으로 확대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사전점검 시스템이란 의사 또는 약사가 처방·조제 내역을 입력하면 사용금지 또는 중복처방 여부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전산 프로그램으로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DUR 시스템이라고 보면 된다.

계획대로 3단계까지 진행이 되면 다른 요양기관 간의 중복처방 점검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전국의 모든 요양기관에서 상호간의 의약품 중복처방 여부를 사전 점검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부는 관련된 법령 개정 작업을 추진하고, 심평원은 사전점검 프로그램 보급 및 전산장비와 서버 구축 등을 담당한다는 계획이다.

2008년 5월 13일자로 공포된 보건복지부의 중복처방 금지 고시는 이러한 일련의 조치 중 첫 번째 단계로 동일 요양기관에서 동일 성분의 의약품을 180일 기준으로 7일 이상 중복으로 처방하여서는 안 된다는 내용으로 이번 10월 1일부터 시행 예정이다.

'동일 성분 의약품' 이란 약제 주성분 코드를 기준으로 주성분 일련번호인 1-4번째 자리와 투여경로를 의미하는 7번째 자리가 동일한 의약품을 말하며 중복처방 금지에는 경구용 약제만 대상이 된다.

물론 환자가 장기 출장 또는 여행을 하는 경우라든지 의약품 부작용, 용량 조절 등으로 약제변경이 불가피한 경우 같은 중복처방 금지 예외 조항은 있다.

하지만 이번 추석 연휴와 같이 연휴를 앞두고 만성질환 환자분들이 내원해서 처방약을 미리 타가길 원하는 경우, 과연 그 환자들에게 날짜가 안 되었으니 다음에 오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특히나 나이가 많은 어르신의 경우, 병원 한번 오기도 힘든 체력에 2번 오시라고 이야기하면 욕먹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중복 처방을 해주자니 진료비 삭감에 환자가 먹은 약값까지 우리가 대신 물어줘야 되고, 돌려보내자니 환자가 진료거부 한다고 의료법 위반으로 시비를 걸 소지가 있으니 난처할 따름이다.

실제 진료현장에서 약제가 소진되기 전 조기 처방을 하는 경우는 의사의 사정보다는 환자의 편의를 위해 환자가 요구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사가 일부러 나서서 중복처방을 하는 것도 아닌데, 모든 책임은 의사가 지고 금전적인 손실도 의사가 져야 된다는 점은 넌센스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의협은 이번 보건복지부 고시가 의료법과 약사법에서 보장하는 의사의 고유 처방권을 제한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고, 상위법인 국민건강보험법이 정하고 있는 위임 범위도 일탈하는 등, 고시 자체가 법 위반으로 원천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고시를 근거로 중복 처방된 약제비를 삭감할 경우, 최근 원외처방 약제비 환수 소송 건에서 재판부가 급여기준을 초과하여 약제비 처방한 것을 위법 행위로 볼 수 없으므로 이를 환수하는 것은 무효라고 판정한 바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도 중복 약제비 삭감과 환수 조치는 위법이라고 할 것이다.

중복처방이 그렇게 문제가 된다면 국가에서 직접 중복처방 많이 받는 환자들에게 환수 조치하면 될 것이지 왜 애꿎은 의사들만 욕먹고 희생양을 만들려는지 모르겠다.

우리 의사들이 바라는 것은 한가지이다. 정부가 낮은 수가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진료하는 우리 의사들을 전문가 집단으로 인정을 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자꾸 만들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신진료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국민건강을 지키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의사와 환자의 신뢰관계를 훼손하고 불필요한 의료비 상승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는 이번 중복처방 금지 고시는 폐기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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