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받은 존엄사 입법논의…아직 갈길이 멀다

장종원
발행날짜: 2009-05-22 06:30:53
  • 연명치료 중단 신중 접근…복지부 "국민 공감 우선"

|긴급 점검=대법원 존엄사 인정과 과제|

대법원이 21일 세브란스병원에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 모씨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회복 가능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연명치료로 인해 환자와 가족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불필요한 의료비 낭비를 막을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그러나 말기환자들이 품위 있는 죽음을 맞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와 의료계가 해야 할 과제와 역할도 적지 않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존엄사 인정 판결 불구 입법 논의 험난
(2)품위있는 임종, 의사가 나서야 한다
지난 1998년 속칭 '보라매 사건'으로부터 촉발된 국내 존엄사 허용 논의가 대법원의 첫 존엄사 인정판결로 인해 더욱 활발해 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존엄사법 제정과 같은 제도적인 절차가 마련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21일 대법원 판결 이후 국회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존엄사법' 입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신상진 의원은 이날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입장을 내고 '존엄사법안'에 대한 입법을 본격 논의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에 따라 전국의 병원에서 연명치료를 중단하겠다는 환자 가족이나 당사자의 요구를 이어질텐데, 제도적 장치가 조속히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개개의 사례들을 모두 소송사건화 해 일일이 법원의 판단을 받게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면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일정한 기준과 치료중단에 이르기까지의 절차·방식·남용에 대한 처벌이 포함된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복지위 변웅전 의원 역시 "대법원 존엄사 인정을 계기로 법제화에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중요함을 원칙으로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18대 국회에는 경실련의 입법청원을 거쳐 신 의원이 발의한 '존엄사법안'이 올해 초 제출돼 현재 계류중이다. 때문에 입법기관인 국회가 법 제정을 서두를 경우 이른 시간내에 존엄사법이 제정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존엄사법 제정 논의는 걸음마단계

하지만 적극적인 입법 추진 움직임에 비해 존엄사법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법 제정에 대한 진행 상황은 걸음마단계에 불과하다.

국회에 계류중인 존엄사법은 의학적 기준에 따라 2인 이상의 의사에 의해 말기상태 진단을 받은 환자로 의학적 판단으로 회복 가능성이 없고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에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의해서만 연명치료를 보류하거나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적극적으로 안락사를 시도하거나 말기환자의 자기결정에 반해 연명치료를 중단하거나 계속하는 경우 징역과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쟁점이 한 둘이 아니다.

법안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했지만,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환자의 의사표시가 불분명한 상황임에도 이를 추정해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한 것으로 법안의 내용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복지부는 또 말기환자 진단에 있어 2인 이상의 의사의 판단이 아닌 제3의 의료기관이나 병원윤리위원회 등 중립적 기구의 검증절차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연명치료 중단 허용이 자칫 장기밀매와 같은 부작용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하는 등 점검할 사항이 적지 않다.

만약 존엄사법안에 대한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된다면 종교단체를 비롯해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자연스레 논란거리로 부상할 전망이다.

보건복지가족위원회 관계자는 "판결 이전에 존엄사법에 대한 복지위의 이해수준과 관심도 높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존엄사법안이 상정돼 소위에서 논의에 들어가면서 관심도가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우선"

복지부도 대법원의 판결이 곧바로 법 제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면서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법률이 아닌 판례나 의료관련 지침 방식으로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하고 있는 만큼 법 제정을 서두르기 보다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사회적 논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전 장관은 이날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존엄사법을 입법하기 위해서는 국민과 신중히 토론하고 많은 논의를 거쳐야 한다"면서 "국민의식과 외국사례를 보고 법으로 허용할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현재 존엄사에 대한 국민의식을 알아보기 위한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졌지만 '존엄사법'이라는 공식적인 제도로 인정받기까지는 더 많은 논의를 통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불가피하다.

세브란스병원이 존엄사 3단계 기준을 마련한 것과 같이 일선 병원들도 우선 대법원 판결에 근거한 자체기준을 마련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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