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항 의료와사회포럼 정책위원장
북한의 화폐개혁은 극단적 관료주의 사회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을 것이다. 북한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시장으로 인해 관료통제에서 벗어난 중산층의 비중이 점점 커지게 되자, 통제 유지를 위한 화폐개혁은 필연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극단적 관료주의 사회의 기본 정신은 사회 구성원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동시에 모든 것을 공급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기본 정신과 다르다. 관료주의 체제가 사회 구성원의 모든 것을 공급해줄 수 없다. 그래서 북한 전체의 생산성이 떨어지면 식량을 공급받지 못하는 하층 계급은 굶기 마련이다.
극단적 관료주의 체제는 생산에 대한 개인적 욕망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결국 관료체제 몰래 비밀리 불법 생산을 하거나 아니면 무임승차를 바라며 오직 관료의 비위에 맞추려 노력할 뿐이다. 그래서 부패와 무임승차가 늘어나게 된다.
극단적 관료주의 의료제도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건강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기본 정신 아래서 모든 의료를 통제하게 된다. 치료방법에 대한 통제뿐만 아니라 치료약에 대한 통제도 강화하게 된다. 어떤 수술방법은 안되고 어떤 치료약은 사용이 금지된다. 이번 여러 의학 관련 학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뇌졸증 예방과 치료에 필요한 일차약으로 아스피린만 허용하는 정책 등이 좋은 예이다.
극단적 관료주의 의료제도에서의 건강에 대한 개인적 욕구는 공식적으로 제한된다. 이러한 제한은 비보험이라는 형태로 의료제도 밖으로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관료들은 자연발생적 비보험마저 제한하기위해 각종 통제장치를 마련하게 된다. 가장 손쉬운 제한 방법은 의료인을 통제하는 것이다. 의료인에 대한 통제는 의료인을 통하여 실현할 수밖에 없는 건강 욕구를 제한하는 결과를 만든다. 이러한 통제가 강할수록 불법적 시술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구소련의 의료제도가 그러하였다.
완벽한 의료제도가 있을 수 없지만 극단적 의료제도는 피해야 한다.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자유방임적 의료제도도 위험하지만 모든 것을 통제하는 극단적 관료주의 의료 역시 위험하다. 그래서 우리의 의료제도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어디쯤 와있는지 이해해야한다.
우리의 의료제도는 어떤 지점에 있을까? 항암제 사용과 뇌졸증 치료약이 의료인의 상식과 다르게 통제되며, 오직 사회전체 의료비용에 의미를 두고 개인적 건강 욕구를 제한한다. 이것은 욕구가 제한된 일부 사람들은 사회전체의 의료비용을 위하여 희생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그 사회는 점점 평균적 건강상태를 기준으로 의료제도가 수정되며 양 극단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이 아닌 사회의 강제에 의해 희생될 것을 요구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의료제도는 극단적 관료주의 의료체계로 ‘향’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건강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건강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회피하게 된다. 관료주의에 깊이 빠져든 의료 정책들은 환자와 의료인의 자율적 결정이 아니라 복지부의 통제를 더욱 강조하는 것이다.
즉 복지부의 통제에 정당성을 부여하여 통제에서 벗어나는 행위들을 불법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통제가 강화될수록 불법들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불법은 나쁜 사람들에 의해 생기기도 하지만 제도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것이 관료주의 의료제도의 숙명인 것이다.
국가가 개인의 ‘모든 건강’을 책임질 능력은 없다. 건강하고자하는 개인의 욕구는 인간의 생존본능이라서 죽음에 도달할 때까지 끝없이 추구한다. 건강하고자하는 생존욕구를, 국가가 의료인들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통제해도 관료주의 의료제도 밖에서 비밀리에 그리고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의료시장을 통제할 수는 없다.
강한 관료주의 의료제도일수록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을 때 비로소 제도의 문제들을 해결할 길이 생겨난다. 화폐 개혁이라는 강력한 통제를 동원하여 자연스럽게 생겨난 시장기능을 억지로 통제하면 언젠가는 더 큰 것을 분실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극단적 관료주의 숙명에서 벗어나야 미래를 위한 발전적 의료제도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극단적 관료주의 사회의 기본 정신은 사회 구성원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동시에 모든 것을 공급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기본 정신과 다르다. 관료주의 체제가 사회 구성원의 모든 것을 공급해줄 수 없다. 그래서 북한 전체의 생산성이 떨어지면 식량을 공급받지 못하는 하층 계급은 굶기 마련이다.
극단적 관료주의 체제는 생산에 대한 개인적 욕망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결국 관료체제 몰래 비밀리 불법 생산을 하거나 아니면 무임승차를 바라며 오직 관료의 비위에 맞추려 노력할 뿐이다. 그래서 부패와 무임승차가 늘어나게 된다.
극단적 관료주의 의료제도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건강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기본 정신 아래서 모든 의료를 통제하게 된다. 치료방법에 대한 통제뿐만 아니라 치료약에 대한 통제도 강화하게 된다. 어떤 수술방법은 안되고 어떤 치료약은 사용이 금지된다. 이번 여러 의학 관련 학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뇌졸증 예방과 치료에 필요한 일차약으로 아스피린만 허용하는 정책 등이 좋은 예이다.
극단적 관료주의 의료제도에서의 건강에 대한 개인적 욕구는 공식적으로 제한된다. 이러한 제한은 비보험이라는 형태로 의료제도 밖으로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관료들은 자연발생적 비보험마저 제한하기위해 각종 통제장치를 마련하게 된다. 가장 손쉬운 제한 방법은 의료인을 통제하는 것이다. 의료인에 대한 통제는 의료인을 통하여 실현할 수밖에 없는 건강 욕구를 제한하는 결과를 만든다. 이러한 통제가 강할수록 불법적 시술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구소련의 의료제도가 그러하였다.
완벽한 의료제도가 있을 수 없지만 극단적 의료제도는 피해야 한다.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자유방임적 의료제도도 위험하지만 모든 것을 통제하는 극단적 관료주의 의료 역시 위험하다. 그래서 우리의 의료제도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어디쯤 와있는지 이해해야한다.
우리의 의료제도는 어떤 지점에 있을까? 항암제 사용과 뇌졸증 치료약이 의료인의 상식과 다르게 통제되며, 오직 사회전체 의료비용에 의미를 두고 개인적 건강 욕구를 제한한다. 이것은 욕구가 제한된 일부 사람들은 사회전체의 의료비용을 위하여 희생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그 사회는 점점 평균적 건강상태를 기준으로 의료제도가 수정되며 양 극단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이 아닌 사회의 강제에 의해 희생될 것을 요구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의료제도는 극단적 관료주의 의료체계로 ‘향’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건강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건강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회피하게 된다. 관료주의에 깊이 빠져든 의료 정책들은 환자와 의료인의 자율적 결정이 아니라 복지부의 통제를 더욱 강조하는 것이다.
즉 복지부의 통제에 정당성을 부여하여 통제에서 벗어나는 행위들을 불법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통제가 강화될수록 불법들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불법은 나쁜 사람들에 의해 생기기도 하지만 제도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것이 관료주의 의료제도의 숙명인 것이다.
국가가 개인의 ‘모든 건강’을 책임질 능력은 없다. 건강하고자하는 개인의 욕구는 인간의 생존본능이라서 죽음에 도달할 때까지 끝없이 추구한다. 건강하고자하는 생존욕구를, 국가가 의료인들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통제해도 관료주의 의료제도 밖에서 비밀리에 그리고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의료시장을 통제할 수는 없다.
강한 관료주의 의료제도일수록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을 때 비로소 제도의 문제들을 해결할 길이 생겨난다. 화폐 개혁이라는 강력한 통제를 동원하여 자연스럽게 생겨난 시장기능을 억지로 통제하면 언젠가는 더 큰 것을 분실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극단적 관료주의 숙명에서 벗어나야 미래를 위한 발전적 의료제도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