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환자, 진료 문화 반기 "의사 불신 위험 수위"
|사례1|
환자 A씨는 소화불량으로 한 동네의원을 방문했다. 의사는 처방을 하면서 내시경 검사를 해 볼 것을 권했다. 그러나 A씨는 처방전에 적힌 처방약을 보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평소 들어보지 못한 제약사 의약품만 처방했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는 그 의원을 방문하지 않았다.
|사례2|
B씨는 심평원이 의료기관의 항생제 처방률 등 병원 평가 정보를 공개한다는 사실을 TV 광고를 통해 알게 됐다. 그는 아이 진료를 위해 다니던 소아청소년과를 검색해보고 경악했다. 항생제 처방률이 너무 높았던 것이다. 아이의 병을 잘 고친다고 소문이 났지만 그 후로는 다른 동네의원을 이용하고 있다.
환자들이 의사를 '선생님'으로 부르며 순응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의사와 병원을 나름의 평가 잣대 위에 올려놓고 선택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더 나아가 환자들이 진료 문화까지 바꾸고 있다.
무한 선택권 가진 환자들의 반란
환자들이 다양하게 의료기관을 평가하고 있다. 친절한지, 신속하게 진료를 하는지, 첨단 의료장비가 있는지, 의사가 어느 의대를 졸업했는지 모든 게 평가 대상이다.
의사들은 KTX가 운행된 이후 수도권 병원으로 환자들이 더 몰리고 있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그러나 환자들은 생각이 다르다. KTX는 단지 환자들의 선택권을 조금 더 보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환자들은 병·의원 뿐 아니라 의료행위와 처방약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유명제약사 의약품 처방을 원하고, 의사에게 특정 의료행위를 요구한다.
서울의 한 개원의는 "환자가 TV 광고에 나온 위장약을 왜 처방하지 않느냐고 묻더라"면서 "의약품 개수까지 줄여야 할 것 같아 부담이 될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환자들에게 진료비 역시 협상 대상이 되고 있다.
피부과의원 김모 원장은 "어떤 환자는 100만원에 피부레이저 3회에다 다른 레이저 시술을 추가해 달라고 먼저 가격협상을 요구한 적이 있다"면서 "요즘 환자들의 적극성에 놀랄 때가 많다"고 말했다.
한국적인 진료 문화를 거부하는 환자들
전통적이고, 관행적인 진료 문화도 도전 받고 있다.
전공의들이 수련을 받기 위해 분만을 참관한 것은 오랜 전통이다. 환자들 역시 대한민국 의료 발전을 위해 당연시 해 왔다.
그러나 환자들이 '인권'을 외치기 시작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전공의들의 분만 참관을 항의하는 글을 올리고, 해당 의료기관에 따지기 시작하면서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회까지 환자를 거들고 나서면서 환자 동의 없이 수련교육 참관을 금지하는 법안까지 발의됐다.
진료실 안에 또 다른 환자가 대기하는 '공개진료'. 이를 논란의 중심에 세운 것도 환자들이다.
3분 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의료현실. 대학병원들은 빠른 진료를 위해 진료실 안에 다른 환자가 대기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하지만 환자들은 이보다 인권, 개인정보 보호를 더 중시한 것이다.
결국 국민고충처리위원회는 복지부에 '공개진료'를 개선하라고 요구했고, 복지부는 의료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금지시켰다.
환자단체 관계자는 "선택진료비, 임의비급여 등도 환자와 국민들이 문제 제기한 이후 불합리한 점이 개선되고 있다"면서 "이제는 환자들이 의료의 변방이 아니라 중심축으로 변신하고 있다.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환기시켰다.
의사 불신하는 환자들, 위험하다
|사례3|
환자 C씨는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다. 주치의에게 자세한 상담을 받고 싶지만 대학병원의 진료 시간은 짧기만 하다. 이 때문에 그가 선택한 것은 인터넷이다.
국민들은 이제 진료실에서 잠깐 만난 의사가 제공하는 의료정보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소위 '3분 진료'에서 채우지 못한 갈증을 인터넷 등 병원 밖에서 획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중앙대병원 임인석 교수는 "정보의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틀린 내용도 있을 수 있는데, 그대로 믿고 의사를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의사들을 불신하는 환자들은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정확한 의료정보인지 판단할 수 없는 환자들이 가장 쉽게 현혹되는 게 민간요법. 그러다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지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는 게 의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국복합통증증후군환우회 이용우 회장은 "환자들이 믿지 못할 인터넷 정보들을 공유하면서 스스로를 망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면서 "의사들에게 자문을 받지 않고 자의적으로 취사선택하는 것은 부정적 측면이 많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