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할 것"

박양명
발행날짜: 2011-10-18 06:54:09
  • 유규형·한성우 교수, 학자의 양심 지키다 4년간 '고난의 길'

“다시 3년 반 전의 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의심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을 겁니다. 그것이 의과학자의 기본이니까요.”

건국대병원 흉부외과 송명근 교수의 카바수술(종합적 대동맥 근부 및 판막성형술) 부작용 사례를 고발했다가 해임된 같은 병원 심장내과 유규형, 한성우 교수.

이들은 17일 <메디칼타임즈>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다시 그런 상황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학자로서의 신념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환기시켰다.

유규형, 한성우 교수는 2008년 5월 송명근 교수로부터 카바수술을 받은 후 발생한 치명적 관상동맥 합병증 환자 7명에 대한 조사와 함께 조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수술을 중지해 달라고 건국대병원에 정식 요청했다.

새로운 의료기술에 대해 의학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임무라고 판단했다. 새로운 의료기술, 약이나 연구결과에 대한 피어리뷰(Peer Review, 동료 학자들의 검증)는 과학의 기본전제이기 때문.

그러나 건국대는 두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병원의 대외 신뢰도를 실추시켰다며 해임 결정을 내렸다.

한성우 교수
한성우 교수는 "대학 교수라면 의학적 견해나 소신을 피력하고,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 좌절감을 많이 느꼈다"고 토로했다.

그는 "새로운 의료기술이 소개되면 선풍적으로 대중적 인기를 끌 수 있는데 모든 주장이나 연구결과에 대해 우선은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바라보는 것이 의학자로서 옳은 시각"이라고 못 박았다.

유규형 교수도 "카바수술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은 나중의 문제이고 새로운 수술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첫 발을 내딛은 것 밖에 없다"며 "해임 조치는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봤을 때 충분히 할 수 있는 오해일 수 있지만 피어리뷰는 학자로서 당연한 과정"이라고 환기시켰다.

한성우 교수는 '바이옥스(성분명 로페콕시브)'와 '로보토미'를 예로 설명했다.

미국 머크사가 개발한 진통소염제 '바이옥스'는 아스피린 발명 이후 가장 획기적인 약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켜 시장에서 퇴출됐다.

전두엽백질절제술이라고 불리는 '로보토미(lobotomy)'는 1935년 포르투갈의 신경학자가 개발한 뇌수술이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여동생이 수술을 받음으로써 대중에게 알려지고, 노벨생리의학상까지 수상했다.

그러나 인격 변화 등 심각한 부작용 발생에 의심을 품은 과학자들의 끈질긴 피어리뷰 과정 속에서 결국 수술이 중단됐다.

당시 이 수술을 시행하던 의사들은 아주 특별한 기술이고, 숙련된 사람이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 대표적인 두가지 사례는 의료기술이 가져올 경제적, 임상적 이득보다 환자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 교수는 "보호해야 할 의료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서 "검증과 비판을 받고, 올바른 윤리적 방법으로 이를 극복할 때 새롭고 가치있는 의료기술, 주장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가장 큰 힘은 동료들의 무한 신뢰

유규형, 한성우 교수가 '해임'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3년 5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동료들의 지지였다.

지난 13일 서울행정법원은 건국대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상대로 청구한 해임처분취소결정 취소소송을 기각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후 두 교수는 긴 시간 동안 관심을 가지고 도와준 많은 동료와 학회에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한 교수는 "법원 판결 후에도, 또 그 전에도 동료들의 격려전화를 많이 받아 힘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유규형 교수도 법원 판결 직후 전화통화에서 "인내하고 기다리는 시간은 도를 닦는 수준이었다"며 "많은 사람들이 염려해주고 걱정해줘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지난해 건국대가 두 교수를 해임하자 대한심장학회는 즉시 성명서를 발표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나섰다.

대한고혈압학회,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등도 성명서를 통해 해임의 부당성을 비판하면서 학자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고난의 길을 선택한 두 교수의 버팀목이 됐다.

"그 당시 두려웠던 것은 해임과 같은 행정처분이 아니었다. 훗날 다른 학자들에 의해 문제가 불거졌을 때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당신들은 바로 옆에서 뭐하고 있었냐'고 물어보는 것이 두려울 뿐이었다."

한성우 교수가 기자에게 던진 마지막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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