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은 인재, 법원 "부실 관리한 병원에 책임있다"

발행날짜: 2014-05-21 06:03:03
  • 투석실 환자 사망 배상 명령…"응급처치 의무 소홀했다"

매년 여름 전력수급 문제로 병의원이 애를 먹고 있는 가운데 정전으로 인한 투석 환자의 사망에 대해 법원이 환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정전은 '천재지변' 등 예측할 수 없는 범위에 들어간다는 주장과는 달리 정전에 대비한 비상발전기의 동작 유무나 환자에 대한 즉각적인 처치를 하지 못한 과실은 병원 측에 있다는 것이다.

최근 광주지법은 전남 지역에서 혈액 투석치료를 받다 정전으로 인한 쇼크사를 당한 사례에 대해 병원 측이 1억원의 돈을 배상할 것을 명령했다.

당뇨, 고혈압 등으로 신장 기능 저하를 겪고 있던 원고는 전남 지역의 모 병원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투석을 받아왔다.

문제의 발단이 된 것은 작년 8월. 혈액 투석을 받다가 갑작스런 두 번의 정전 사태가 찾아왔다.

오전 7시 42분에 18초 가량의 정전이 있었고 8시 15분에 재차 정전이 발생했다. 병원은 갑작스런 정전에 대비해 자가발전 시설을 갖추고 있었지만 이날따라 투석기에 전원은 계속 들어오지 않았다.

긴급히 간호사가 투입돼 투석기를 수동으로 돌렸지만 투석 직후 환자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15분이 지나서야 응급실에 도착한 해당 환자는 자발호흡이 없는 심정지 상태에서 의식불명에 빠져들었다.

이 사건에 대해 병원 측은 갑작스런 정전에 대비해 자가발전 시설을 갖추고 24시간 전력이 끊기지 않도록 '무정전 전원장치'를 설치했지만 동작이 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특히 정전은 예측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기 때문에 환자의 의식불명은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의 범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법원은 정전에 대비한 기계 시설의 점검이나 정전 사태 이후 의료진이 적절한 조치가 미흡한 과실로 중증 저산소성 뇌손상에 이르게 됐다며 손해배상의 책임은 병원에 있다고 판시했다.

쓰러진 환자에 대한 응급처치에 15분이나 걸렸을 뿐 아니라 만약 심부정맥이 관찰되면 제세동기 치료 등 적절한 처치가 시작되고 안정이 된 다음 응급실이나 중환자실로 옮겨야 하지만 그런 조치도 없었다는 것.

원고 측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서로 최종원 변호사는 "매년 여름 병의원의 전력 수급 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면서 "특히 정전에 대비한 자가발전 시설을 갖춘 곳이 많지 않아 해당 사건과 유사한 건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해 보건산업진흥원이 입원실을 둔 병의원 252곳을 조사한 결과 병원 전체에 비상전력체계를 갖춘 곳은 8%에 불과한 실정. 수술실처럼 전력 공급이 중요한 곳에 전력 안전망을 설치한 곳은 절반에 불과하다.

최 변호사는"과거에도 투석전문 병의원에서 정전이 나서 수동으로 투석기를 돌리는 일이 발생한 적이 있다"면서 "전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곳에서는 환자들이 투석을 받다가 집단으로 의료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있어 환자나 병의원 모두 주의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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