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의사들의 마음

허대석 교수
발행날짜: 2015-01-02 05:58:59
  • 서울의대 내과학교실 허대석 교수

한 유명 연예인의 사망과 의료사고와의 관련설로 언론이 시끄럽던 와중에 음주진료사건이 발생했고, 리베이트 수수혐의 의사 1900여명에게 '사전 처분통지서'가 발송되었다. 이러한 사건들을 부도덕한 개인문제로 단순하게 치부할 수만 없는 것이 우리나라 의사들의 딜레마다.

원가이하의 수가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의료기관을 운영해야하는 의사들의 고충을 이해하는 국민은 거의 없고, 언제부터인가 환자는 진료뿐 아니라 더 나은 서비스까지 요구하는 '고객님'이 되었다. 의료비는 수 만원만 받도록 정해져있는 시술도 의료분쟁 배상액은 수억 원으로 한계 없이 올라가고 있다. 정부와 국민, 의사 세 톱니바퀴로 굴러가는 의료제도가 삐꺼덕거릴 때마다 정부와 언론은 모든 책임을 의사들의 부도덕함으로 몰아 의사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조장한다.

필수의료일수록 건강보험수가를 낮게 통제하고 있어 의사들의 어려움은 해가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 의료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의사들에게 폭언과 폭력으로 표출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지친 젊은 의사들은 스스로 감정노동자로 비하하며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자긍심도 보람도 찾지 못하고 규제를 적게 받고 의료분쟁 위험이 적은 영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최고 의료시설에서 최상의 서비스를 바라면서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헌신적인 의사를 기대하는 사회의 의사에 대한 이중 잣대는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한계에 근접하고 있다.

정부의 투자와 책임 하에 의료기관이 운영되고 의사가 공무원으로 일하는 유럽국가와 달리, 우리나라 의료기관은 의사의 자영업 형태로 시설투자가 이루어졌고 의사들 사이의 무한 경쟁을 통해 발전해왔다.

현재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수준 높은 의료 환경은 수익의 재투자를 통해 지속적인 발전을 추구했던 민간의료기관의 치열한 노력이 큰 역할을 했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공공의료 기능의 대부분을 수행하면서 의료를 발전시켜온 의사들의 공로를 자신들의 업적인 것처럼 생색내는데 익숙해진 정치권과 공무원들은 의사들에 대한 온갖 불합리한 통제와 간섭도 모자라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려 하고 있다.

의료행위는 고도의 전문지식이 요구되는 분야로 전문직의 고유기능을 살려 일관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의견을 거의 반영할 수 없고 전문적인 임상연구결과를 근거로 시행되는 특정 시술이나 신약의 보험급여여부조차 공무원이 결정하며, 의료계가 판단해서 정리해야 할 '갑상선암 검진 권고안'까지도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장관이 국정감사에서 논쟁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30-40년을 되돌아보면, 주요의료정책은 정부나 국민을 대변한다고 자처하는 이익단체에 의해 주도되었고, 의사들이 국가의료정책을 능동적으로 변화시킨 전례는 찾아볼 수 없다.

몇 년 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의료계가 각 정당에 요구할 공약사항을 논의하는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의사협회, 병원협회의 의견이 달라 회의는 겉돌았고, 정치권에 요구할 내용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끝났다. 이런 의사단체의 내분은 의사들이 정치권에 이용되기만 할뿐 의료정책을 이끌어갈 힘을 갖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안정과 복지를 원하는 시대로 전환되고 있음을 직시하고, 사회 안에서 의사들의 정체성을 재정립해야할 시점이다. 의사들의 이익이 아닌 국민들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제도를 제안하고, 실현하기위해 뜻을 모아야한다. 어떤 직종보다 믿음이 중요한 의사들의 직무를 위해서는,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내부정화를 강화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의사라는 직업이 생긴 이후, 오늘날만큼 의료가 일반 대중과 밀접한 관련을 맺었던 적은 없다. 임신, 출산부터 사망까지 생로병사가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사회의 의료화 현상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앞으로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의료문제에 관하여 의사가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한다.

언제까지 정치논리에 의한 공무원들의 의사결정에 끌려 다닐 것인가? 무작정 정부 탓만 하기 전에 의사들이 소속된 수많은 학회와 협회가 해야 할일을 하고 있는지 먼저 돌아보는 자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직역간의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의료제도를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능동적으로 나서야 한다. 새로운 시대를 위한 의료계의 개혁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의료문제의 본질을 가장 잘 아는 의사들이 함께 힘을 합쳐야만 이룰 수 있다. 이러한 공동목표를 위해 의사들은 언제쯤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그들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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