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스페인으로 간다
스페인 미술애호가들의 자존심, 프라도 미술관(2)
프라도가 대표작들을 소장하고 있는 벨라스케스와 고야는 많은 점에서 대비가 된다. 스페인의 황금시대였던 17세기를 살았던 벨라스케스와 달리 고야가 활동했던 18세기 후반의 스페인은 나폴레옹의 식민지배를 받는 등 사회적으로 어수선했다. 세비야출신으로 천재적 재능을 일찍 꽃피운 벨라스케스가 24살에 궁정화가로 발탁되어 펠리페4세의 총애를 받으며 작품활동을 했던 것과는 달리, 아라곤의 푸엔데토도스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고야는 인정받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수없는 좌절과 실패를 겪어야 했다.
사라고사에서 프란시스코 바예우라는 스승을 만나 화가 수업을 받고 이탈리아 여행을 상품으로 주는 마드리드의 산 페르난도 왕립 아카데미에 그림을 여러 번 보냈지만, 선정되지 못하고 결국은 자비로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요즈음으로 치면 자비로 이탈리아 그림연수를 다녀온 셈이다.
20대 후반에서야 태피스트리용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궁정에 들어간 고야는 당시의 지식인이나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면서 초상화가로서 입지를 굳혀나갔다. 그의 초상화는 인물의 특징이나 성품을 잘 드러낸다는 평판을 얻었고 결국에는 왕실의 초상화가가 되었다. 1808년 나폴레옹 군대가 스페인을 침략하여 호세 보나파트르가 스페인 왕이 되었을 때도 고야는 왕실화가였는데 프랑스의 자유주의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1814년 독립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페르난도7세가 다시 왕위에 올랐을 때 고야는 운 좋게도 궁정화가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그리하여 고야는 카를로스 3세, 카를로스 4세, 프랑스의 호세 보나파트르, 그리고 페르난도7세에 이르기까지 4명의 왕을 겪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고야의 말년은 그리 행복하지는 못했다.
1819년 마드리드 외곽에 산 집을 ‘귀머거리의 집’이라고 불렀는데, 46살이 되던 해 심하게 앓은 열병으로 청력을 잃었던 그가 친프랑스파로 간주되어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 고립되어있던 시기였다. 그는 ‘귀머거리의 집’의 회칠한 벽에 직접 유화물감을 칠해 모두 열네 점의 그림을 남겼는데, 검은색을 주조로 하였기 때문에 ‘검은 그림’이라고 부른다. 적장의 목을 자르는 '유딧', 불길한 느낌을 주는 '마녀의 연회', 양발을 땅에 묻은 채 죽을 때까지 싸우는 '곤봉으로 서로 때리는 사람들',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인간의 생사를 희롱하는 '운명의 마녀들', 지금 당장이라도 모래 속에 파묻혀 버릴 것 같은 모습의 '개', 그리고 '제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등이 있다.
기존의 회화문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려진 이 그림들은 ‘귀머거리의 집’이 철거되면서 소유주가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하려 했지만 거절당하면서 프라도로 오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 무렵 고야가 그린 그림들은 주문을 받지 않고 그린 것들로 스스로의 의지와 예술적 영감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그린 것들로 현대미술과 맥이 통하는 점이라고 한다.
‘검은 그림’ 연작 가운데 '제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가 관람객들의 시선을 끈다. 로마신화의 농경의 신 사투르누스는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와 동일하다. 크로노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하늘의 남신인 우라노스와 땅의 여신인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12명의 티탄족 가운데 막내이며 지도자인 남신이다. 우라노스는 자식들을 지옥인 타르타로스에 감금하였는데, 결국은 크로노스가 어머니 가이아와 함께 연대하여 우라노스를 몰아내고 세상의 왕이 된다.
하지만 가이아와 우라노스는 크로노스에게 자신의 자식에게 폐위당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크로노스는 아내 레아 사이에서 태어난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의 5명의 자녀를 낳는 족족 삼켰는데, 제우스를 낳게 된 레아는 가이아의 도움을 받아 제우스를 구하게 된다. 결국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물리치고 이미 삼킨 형제들을 구한다는 것이 신화의 내용이다.
▲제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좌:고야 作) <출처:위키피디아. Museo del Prado>(클릭시 관련 페이지 이동)
▲제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우:루벤스 作) <출처:위키백과. 크로노스>(클릭시 관련 페이지 이동)
그런데 프라도 미술관에는 루벤스의 '제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도 있어 두 작품을 비교해볼 수 있다. 루벤스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투르누스는 검은 구름에 올라탄 백발의 노인이다. 왼손으로 안은 아이의 가슴에 막 입을 대고 놀란 아이는 몸을 제키면서 바둥대는 모습이다. 사투르누스의 전신이 안정되어 있는 모습과 아이의 신체가 손상되어 있지 않은 탓인지 그렇게 끔찍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반면에 고야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투르누스는 아이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머리부터 게걸스럽게 씹어 삼키고 있다. 없어진 아이의 머리, 손가락 사이를 흐르는 피는 아이의 생명이 이미 끊어진 것을 암시한다. 이렇게 아이를 먹어치웠다면 나중에 제우스가 사투르누스를 토하게 만들었대도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까 싶다. 나카노 교코는 '무서운 그림'에서 두 그림의 차이를 사투르누스의 눈에서 볼 수 있다고 했다.
루벤스의 사투르누스는 ‘지적이고 노회하며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비정함과 냉혹한 계산이 번득이는 지배자의 눈’을 가졌는데 반하여 고야의 사투르누스는 ‘축생도에 떨어진 자의 눈을 가지고 있어, 얼굴과 몸이 녹아 허물어지듯 머릿속, 정신까지도 무너져 버렸음이 튀어나온 눈에서 느껴진다.’라고 적었다.
고야에 이어 프라도 미술관의 하이라이트라고 하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펠리페4세의 가족)'를 보았다. 책에서만 보던 그림을 실물로 보는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스페인 미술관 산책'은 무려 9쪽을 할애하여 파격적으로 이 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다.’고 눙치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작품이 수많은 화가, 시인, 소설가들에게 이야깃거리를 주었기 때문이란다.
피카소만해도 이 그림을 리메이크한 작품을 수도 없이 그렸는데,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최경화작가는 '시녀들(펠리페4세의 가족)'을 볼 때, 우선 5미터 정도 떨어져서 등장인물들을 꼼꼼히 살펴볼 것을 권한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는 졸고 있는 개를 빼놓고는 왠지 모르게 굳어 있는 듯이 보인다. 마치 ‘얼음 땡’에 걸린 것처럼 말이다.
조형진 가이드는 고야의 초기 작품까지 설명을 하고는 개인적으로 더 보고 싶은 작품을 볼 수 있도록 약 45분간의 자유시간을 주었다. 톨레도에서 예기치 않은 사고 때문에 지체한 것도 있었겠지만, 보고 싶은 작품은 많았고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처음 간 미술관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 보니 보고 싶은 작품이 어디에 걸려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시간여유가 있다면 처음부터 차근차근 보면 되겠지만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 골라서 보아야 한다. 다행히 프라도 미술관에서 준비해놓고 있는 우리말로 된 ‘미술관 안내’ 팜플릿을 보면서 거의 뛰다시피 했다.
폴 퀸네트가 말하듯 마치 스미소니언박물관에서 조깅을 하거나 루브르박물관 안을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달리듯 했다. “우리는 자식들에게 속독을 가르친다. 아이들이 셰익스피어 작품을 한나절에 다 읽기를 바란다. 대문호의 작품을 그렇게 읽는 것은 스미소니언박물관에서 조깅하는 것이나 루브르 박물관 안을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달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난 해 성탄절에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열린 운보 김기창 화백의 작품점 ‘오, 홀리 나잇!(O, Holy Night!)’에서 예수의 일생에 관한 30점의 연작을 관람했던 기억 때문에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에 대한 이야기로 프라도 미술관 이야기를 정리한다.
‘수태고지’는 ‘그리스도의 책형’, ‘성모자’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유럽회화와 조각 작품들의 주제라고 한다. 누가복음서에 나오는 수태고지란 대천사 가브리엘이 처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그대는 하느님의 은혜를 입었다. 보아라, 그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는 위대하게 되고 더 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라고 고하는 장면을 말한다.
수태고지를 그리는 데는 몇 가지 약속이 있다고 한다. 필수적인 세 가지 요소는 대천사 가브리엘, 성모 마리아, 그리고 성령의 비둘기이다. 그밖에 성모의 무구함을 상징하는 백합, 성모가 예루살렘의 신전에서 사제의 의복을 짰다는 전설을 뒷받침하는 실감개, 또는 털실을 담은 바구니, 펼쳐진 책장 등이 있다. 수태고지의 모습에는 세 단계가 있는데, 천사의 방문에 놀란 마리아, 수태하리라는 말을 듣고는 당혹스럽고 두려워하는 마리아, 그리고 마침내 수태한 사실을 수긍하는 마리아이다. 많은 화가들이 「수태고지」를 그렸지만,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는 정밀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한다.
프라도가 대표작들을 소장하고 있는 벨라스케스와 고야는 많은 점에서 대비가 된다. 스페인의 황금시대였던 17세기를 살았던 벨라스케스와 달리 고야가 활동했던 18세기 후반의 스페인은 나폴레옹의 식민지배를 받는 등 사회적으로 어수선했다. 세비야출신으로 천재적 재능을 일찍 꽃피운 벨라스케스가 24살에 궁정화가로 발탁되어 펠리페4세의 총애를 받으며 작품활동을 했던 것과는 달리, 아라곤의 푸엔데토도스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고야는 인정받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수없는 좌절과 실패를 겪어야 했다.
사라고사에서 프란시스코 바예우라는 스승을 만나 화가 수업을 받고 이탈리아 여행을 상품으로 주는 마드리드의 산 페르난도 왕립 아카데미에 그림을 여러 번 보냈지만, 선정되지 못하고 결국은 자비로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요즈음으로 치면 자비로 이탈리아 그림연수를 다녀온 셈이다.
20대 후반에서야 태피스트리용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궁정에 들어간 고야는 당시의 지식인이나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면서 초상화가로서 입지를 굳혀나갔다. 그의 초상화는 인물의 특징이나 성품을 잘 드러낸다는 평판을 얻었고 결국에는 왕실의 초상화가가 되었다. 1808년 나폴레옹 군대가 스페인을 침략하여 호세 보나파트르가 스페인 왕이 되었을 때도 고야는 왕실화가였는데 프랑스의 자유주의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1814년 독립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페르난도7세가 다시 왕위에 올랐을 때 고야는 운 좋게도 궁정화가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그리하여 고야는 카를로스 3세, 카를로스 4세, 프랑스의 호세 보나파트르, 그리고 페르난도7세에 이르기까지 4명의 왕을 겪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고야의 말년은 그리 행복하지는 못했다.
1819년 마드리드 외곽에 산 집을 ‘귀머거리의 집’이라고 불렀는데, 46살이 되던 해 심하게 앓은 열병으로 청력을 잃었던 그가 친프랑스파로 간주되어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 고립되어있던 시기였다. 그는 ‘귀머거리의 집’의 회칠한 벽에 직접 유화물감을 칠해 모두 열네 점의 그림을 남겼는데, 검은색을 주조로 하였기 때문에 ‘검은 그림’이라고 부른다. 적장의 목을 자르는 '유딧', 불길한 느낌을 주는 '마녀의 연회', 양발을 땅에 묻은 채 죽을 때까지 싸우는 '곤봉으로 서로 때리는 사람들',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인간의 생사를 희롱하는 '운명의 마녀들', 지금 당장이라도 모래 속에 파묻혀 버릴 것 같은 모습의 '개', 그리고 '제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등이 있다.
기존의 회화문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려진 이 그림들은 ‘귀머거리의 집’이 철거되면서 소유주가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하려 했지만 거절당하면서 프라도로 오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 무렵 고야가 그린 그림들은 주문을 받지 않고 그린 것들로 스스로의 의지와 예술적 영감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그린 것들로 현대미술과 맥이 통하는 점이라고 한다.
‘검은 그림’ 연작 가운데 '제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가 관람객들의 시선을 끈다. 로마신화의 농경의 신 사투르누스는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와 동일하다. 크로노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하늘의 남신인 우라노스와 땅의 여신인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12명의 티탄족 가운데 막내이며 지도자인 남신이다. 우라노스는 자식들을 지옥인 타르타로스에 감금하였는데, 결국은 크로노스가 어머니 가이아와 함께 연대하여 우라노스를 몰아내고 세상의 왕이 된다.
하지만 가이아와 우라노스는 크로노스에게 자신의 자식에게 폐위당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크로노스는 아내 레아 사이에서 태어난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의 5명의 자녀를 낳는 족족 삼켰는데, 제우스를 낳게 된 레아는 가이아의 도움을 받아 제우스를 구하게 된다. 결국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물리치고 이미 삼킨 형제들을 구한다는 것이 신화의 내용이다.
▲제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좌:고야 作) <출처:위키피디아. Museo del Prado>(클릭시 관련 페이지 이동)
▲제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우:루벤스 作) <출처:위키백과. 크로노스>(클릭시 관련 페이지 이동)
그런데 프라도 미술관에는 루벤스의 '제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도 있어 두 작품을 비교해볼 수 있다. 루벤스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투르누스는 검은 구름에 올라탄 백발의 노인이다. 왼손으로 안은 아이의 가슴에 막 입을 대고 놀란 아이는 몸을 제키면서 바둥대는 모습이다. 사투르누스의 전신이 안정되어 있는 모습과 아이의 신체가 손상되어 있지 않은 탓인지 그렇게 끔찍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반면에 고야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투르누스는 아이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머리부터 게걸스럽게 씹어 삼키고 있다. 없어진 아이의 머리, 손가락 사이를 흐르는 피는 아이의 생명이 이미 끊어진 것을 암시한다. 이렇게 아이를 먹어치웠다면 나중에 제우스가 사투르누스를 토하게 만들었대도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까 싶다. 나카노 교코는 '무서운 그림'에서 두 그림의 차이를 사투르누스의 눈에서 볼 수 있다고 했다.
루벤스의 사투르누스는 ‘지적이고 노회하며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비정함과 냉혹한 계산이 번득이는 지배자의 눈’을 가졌는데 반하여 고야의 사투르누스는 ‘축생도에 떨어진 자의 눈을 가지고 있어, 얼굴과 몸이 녹아 허물어지듯 머릿속, 정신까지도 무너져 버렸음이 튀어나온 눈에서 느껴진다.’라고 적었다.
고야에 이어 프라도 미술관의 하이라이트라고 하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펠리페4세의 가족)'를 보았다. 책에서만 보던 그림을 실물로 보는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스페인 미술관 산책'은 무려 9쪽을 할애하여 파격적으로 이 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다.’고 눙치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작품이 수많은 화가, 시인, 소설가들에게 이야깃거리를 주었기 때문이란다.
피카소만해도 이 그림을 리메이크한 작품을 수도 없이 그렸는데,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최경화작가는 '시녀들(펠리페4세의 가족)'을 볼 때, 우선 5미터 정도 떨어져서 등장인물들을 꼼꼼히 살펴볼 것을 권한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는 졸고 있는 개를 빼놓고는 왠지 모르게 굳어 있는 듯이 보인다. 마치 ‘얼음 땡’에 걸린 것처럼 말이다.
조형진 가이드는 고야의 초기 작품까지 설명을 하고는 개인적으로 더 보고 싶은 작품을 볼 수 있도록 약 45분간의 자유시간을 주었다. 톨레도에서 예기치 않은 사고 때문에 지체한 것도 있었겠지만, 보고 싶은 작품은 많았고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처음 간 미술관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 보니 보고 싶은 작품이 어디에 걸려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시간여유가 있다면 처음부터 차근차근 보면 되겠지만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 골라서 보아야 한다. 다행히 프라도 미술관에서 준비해놓고 있는 우리말로 된 ‘미술관 안내’ 팜플릿을 보면서 거의 뛰다시피 했다.
폴 퀸네트가 말하듯 마치 스미소니언박물관에서 조깅을 하거나 루브르박물관 안을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달리듯 했다. “우리는 자식들에게 속독을 가르친다. 아이들이 셰익스피어 작품을 한나절에 다 읽기를 바란다. 대문호의 작품을 그렇게 읽는 것은 스미소니언박물관에서 조깅하는 것이나 루브르 박물관 안을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달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난 해 성탄절에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열린 운보 김기창 화백의 작품점 ‘오, 홀리 나잇!(O, Holy Night!)’에서 예수의 일생에 관한 30점의 연작을 관람했던 기억 때문에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에 대한 이야기로 프라도 미술관 이야기를 정리한다.
‘수태고지’는 ‘그리스도의 책형’, ‘성모자’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유럽회화와 조각 작품들의 주제라고 한다. 누가복음서에 나오는 수태고지란 대천사 가브리엘이 처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그대는 하느님의 은혜를 입었다. 보아라, 그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는 위대하게 되고 더 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라고 고하는 장면을 말한다.
수태고지를 그리는 데는 몇 가지 약속이 있다고 한다. 필수적인 세 가지 요소는 대천사 가브리엘, 성모 마리아, 그리고 성령의 비둘기이다. 그밖에 성모의 무구함을 상징하는 백합, 성모가 예루살렘의 신전에서 사제의 의복을 짰다는 전설을 뒷받침하는 실감개, 또는 털실을 담은 바구니, 펼쳐진 책장 등이 있다. 수태고지의 모습에는 세 단계가 있는데, 천사의 방문에 놀란 마리아, 수태하리라는 말을 듣고는 당혹스럽고 두려워하는 마리아, 그리고 마침내 수태한 사실을 수긍하는 마리아이다. 많은 화가들이 「수태고지」를 그렸지만,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는 정밀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