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원 전병율 대외협력본부장(전 질병관리본부장)
지난 6월, 메르스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누구보다 바쁜 하루를 보내던 사람 중 한명이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전병율 교수다.
방송, 신문 등 여러 매체가 연일 그의 입을 빌려 메르스 사태를 진단했다. 일각에선 그가 다시 공직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연대의대(예방의학과) 보건학박사 출신으로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을 거쳐 보건정책팀장, 보험평가팀장을 두루 역임하고 지난 2007년 질병관리본부 전염병대응센터장을 지냈다.
또한 의사 출신 첫 복지부 대변인에 이어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내며 업무수행 능력을 인정받아왔다.
그러나 그는 예상을 뒤엎고 지난 9월 1일자로 차병원그룹 대외협력본부장(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교실)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를 직접 만나 그 이유와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차병원그룹 성장 가능성 커, 제2의 인생 시작"
공직생활에 잔뼈가 굵은 그의 이력과 차병원그룹은 동떨어진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전병율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공직에 몸 담고 있으면서 늘 목말랐던 부분이 있었다. 이를 차병원그룹에서 마음껏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그동안 제도를 만드는 일을 해왔다면 앞으로는 일선 현장에서 정부의 제도를 실행하고 이를 통해 국부를 창출해내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그는 지난 공직생활을 거치면서 의료산업화를 통한 국부창출이 현재 보건의료계의 나아가야할 방향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에 차병원그룹은 최적화된 환경을 갖췄다는 게 그의 생각.
차병원그룹은 대학과 병원 그리고 바이오 벤처 등 기업을 아우르고 있어 말 그대로 산·학·연 협력이 가능하다.
"차그룹 내 새로운 건강관리 트랜드를 만들고 있는 차움, 줄기세포 연구 특화를 통한 맞춤치료 연구 등 향후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본다."
그는 수십년 간 공직생활을 하던 사람이 현장에 잘 적응할 수 있겠느냐는 시선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봤다.
실제로 그는 공직에 몸 담으면서도 빠른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일사천리로 일을 밀어부쳐왔다.
신종플루 후속 대책은 물론 가습기 살균제 피해보상 논란이 붉어졌을 당시에도 즉각적으로 이를 추진해 사태를 진정시켰으며 태안 기름유출 사고가 터졌을 때에도 당시 질병관리본부장으로서 재빨리 초기 피해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지난 공직생활에서의 경험은 오히려 차병원그룹에서의 활동에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의료산업화 가시화로 보건의료 먹거리 창출해낼 것"
차병원그룹에서 그가 맡은 보직은 대외협력본부장.
일단 정부, 국회, 보건의료 유관 단체 및 기관 등과 교류하며 차병원그룹의 추진 사업을 널리 알리는 것이 주 업무다.
이와 더불어 제2, 제3의 차병원그룹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그의 역할 중 하나다.
다만, 그는 '의료산업화=영리병원'으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선 경계했다.
"영리병원과는 무관하다. 의료를 산업으로 키우자는 얘기다. 작지만 고부가가치의 기업 즉, 의료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부가가치 높은 아이템을 발굴하자는 것이다."
보건의료 분야에 새로운 먹러리를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의료산업화의 성공 모델을 만드는 게 그의 목표.
그는 시간이 흘러 '의사출신 공무원이 의료산업화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단다.
공직생활을 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전병율 교수는 의료산업화 주역으로 출발선에 섰다.
방송, 신문 등 여러 매체가 연일 그의 입을 빌려 메르스 사태를 진단했다. 일각에선 그가 다시 공직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연대의대(예방의학과) 보건학박사 출신으로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을 거쳐 보건정책팀장, 보험평가팀장을 두루 역임하고 지난 2007년 질병관리본부 전염병대응센터장을 지냈다.
또한 의사 출신 첫 복지부 대변인에 이어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내며 업무수행 능력을 인정받아왔다.
그러나 그는 예상을 뒤엎고 지난 9월 1일자로 차병원그룹 대외협력본부장(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교실)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를 직접 만나 그 이유와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차병원그룹 성장 가능성 커, 제2의 인생 시작"
공직생활에 잔뼈가 굵은 그의 이력과 차병원그룹은 동떨어진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전병율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공직에 몸 담고 있으면서 늘 목말랐던 부분이 있었다. 이를 차병원그룹에서 마음껏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그동안 제도를 만드는 일을 해왔다면 앞으로는 일선 현장에서 정부의 제도를 실행하고 이를 통해 국부를 창출해내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그는 지난 공직생활을 거치면서 의료산업화를 통한 국부창출이 현재 보건의료계의 나아가야할 방향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에 차병원그룹은 최적화된 환경을 갖췄다는 게 그의 생각.
차병원그룹은 대학과 병원 그리고 바이오 벤처 등 기업을 아우르고 있어 말 그대로 산·학·연 협력이 가능하다.
"차그룹 내 새로운 건강관리 트랜드를 만들고 있는 차움, 줄기세포 연구 특화를 통한 맞춤치료 연구 등 향후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본다."
그는 수십년 간 공직생활을 하던 사람이 현장에 잘 적응할 수 있겠느냐는 시선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봤다.
실제로 그는 공직에 몸 담으면서도 빠른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일사천리로 일을 밀어부쳐왔다.
신종플루 후속 대책은 물론 가습기 살균제 피해보상 논란이 붉어졌을 당시에도 즉각적으로 이를 추진해 사태를 진정시켰으며 태안 기름유출 사고가 터졌을 때에도 당시 질병관리본부장으로서 재빨리 초기 피해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지난 공직생활에서의 경험은 오히려 차병원그룹에서의 활동에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의료산업화 가시화로 보건의료 먹거리 창출해낼 것"
차병원그룹에서 그가 맡은 보직은 대외협력본부장.
일단 정부, 국회, 보건의료 유관 단체 및 기관 등과 교류하며 차병원그룹의 추진 사업을 널리 알리는 것이 주 업무다.
이와 더불어 제2, 제3의 차병원그룹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그의 역할 중 하나다.
다만, 그는 '의료산업화=영리병원'으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선 경계했다.
"영리병원과는 무관하다. 의료를 산업으로 키우자는 얘기다. 작지만 고부가가치의 기업 즉, 의료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부가가치 높은 아이템을 발굴하자는 것이다."
보건의료 분야에 새로운 먹러리를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의료산업화의 성공 모델을 만드는 게 그의 목표.
그는 시간이 흘러 '의사출신 공무원이 의료산업화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단다.
공직생활을 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전병율 교수는 의료산업화 주역으로 출발선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