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지·기피과 의사에게 물었다④제주대병원 흉부외과 이석재 교수
"지방 환자위해 시작한 11년, 정작 심장수술 할 수 없어 허탈"
취약지, 기피과 의사들에게 물었다"정부가 할 일은 의료전달체계 개선입니다. 그걸 하지 않으면서 의사 수를 늘리겠다는 것은 종기를 치료하지 않고 밴드만 붙여 원인을 보이지 않게 하는 정책에 불과합니다."
"의대증원·공공의대 정책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부는 의료취약지 및 기피과 의료공백을 채우기 위한 대책으로 의대 정원 확대와 더불어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했지만 의료계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쳤다. 메디칼타임즈는 현재 취약지에서 기피과로 일선 의료현장을 지키고 있는 의사들에게 정부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접 물어봤다. <편집자주>
①목포한국병원 김재혁 센터장
②홍천 아름다운병원 정후연 원장
③칠곡경북대 어린이병원 소아중환자실 김여향 교수
④제주대병원 흉부외과 이석재 교수
제주대병원 흉부외과에서 11년째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이석재 교수(서울의대 89년졸)는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의대 설립, 의대정원 확대를 두고서 '적반하장'격의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이유가 뭘까.
4일 메디칼타임즈와의 인터뷰에 응한 이석재 제주대병원 흉부외과 교수(사진)는 공공의료 확충을 위해선 의사 수 확대가 아닌 정부지원 여부에 달려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9년부터 제주대병원 흉부외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서울의대를 나와 충북대 교수를 거쳐 미국 장기연수를 통해 심장 이식과 심실보조 공부를 하고 온 소위 잘나가는 '칼잡이' 의사였다. 그러던 중 '제주도에 심장수술 할 사람이 없다'는 후배의 전화 한 통에 당시 새로 이전한 제주대병원으로 내려오게 됐다.
이석재 교수는 가족과 떨어져 11년째 제주도 환자를 돌보는 생활을 두고서 '사명감'이 없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가족 모두가 서울에 있는 상황에서 혼자 제주도 생활을 하고 있다"며 "이곳에 올 때만 해도 환자들이 위험하게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가지 않고 제주도에서 수술하고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2009년 심혈관센터를 제주대병원이 유치하면서 상당한 투자가 이뤄져 기대하고 내려왔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11년이 지난 현재, 이 교수는 자신의 전공인 심장수술을 1년에 10례를 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서울 대형병원 근무 시절 폐와 심장수술을 합해 최대 360례를 했던 그였지만 최근 2~3년 전부터 환자들이 급격하게 줄었다.
이 교수는 "심장수술이 주 전공인데 한 달에 한 케이스도 없을 때도 있다. 폐와 혈관수술도 하지만 여기에 온 이유가 있기에 솔직히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며 "대부분의 환자들이 서울 대형병원으로 쏠리는 상황이다. 의료전달체계 자체가 무너진 상황"이라고 허탈함을 토로했다.
즉 제대로 된 공공의료 확충 방안은 공공의대 설립이나 의사 수를 늘릴 것이 아니라 의료전달체계를 바로 세우는 것이란 지적이다. 이 교수는 정부가 추진 중인 정책을 두고서 농양(종기)의 치료원칙을 말하며 '기본'부터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그는 "의학에서 기본적으로 배우는 것이 농양의 치료원칙이다. 배농 후 항생제를 쓰고 새살이 차게 해줘야 한다"며 "공공의대를 설립하고 의사를 늘리는 것은 치료원칙을 무시하고 농양에 밴드를 붙여 보이지 않게 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농양을 치료하지 않고 밴드만 붙이면 같이 썩기 마련이다. 결국 심해지면 절단이 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며 "현재 정부 정책이 이와 같다. 새살이 자라 나오게 의료전달체계가 작동하게 해줘야 하는데 그걸 하지 않고 겉으로 덮기만 하는 정책"이라고 일갈했다.
"정부 정책이 필수의료 해법? 투자부터 해라"
최근 몇 달 동안 이 교수는 심장수술이 꼭 필요한 환자들이 와도 할 수 없었다. 심장수술에 있어 핵심적인 기기인 체온조절기가 고장이 났기 때문인데, 서울에 초대형병원처럼 마땅한 예비 장비도 없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자신의 열악한 상황을 설명하며 이 교수는 필수의료의 해법이 의사 수 확대 보다 적극적인 정부 투자가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필수의료 부족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적어도 지방 국립대병원이나 공공의료기관에는 적어도 의료기기 구입이나 유지, 예비 장비를 걱정 없이 구축해놔야 할 것이 아닌가"라며 "정부는 공공의료라고 말하면서도 제대로 된 투자를 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정부는 공공병원을 만들어 놓고 운영은 벌어들인 수익으로 운영하란 방식"이라며 "결국 운영은 어렵고 이로 인해 장비 구입조차 못하는 악순환이 되는 것이다. 공적지원이 안된 상태에서 의사만 늘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현재와 같은 의사 수 확대가 아닌 공적지원 확대로 정부 정책 방향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41개 의과대학의 교육 목표를 보면 공공의료에 대한 사명감을 교육받고 나온다"며 "정부가 공공의료를 위한 행정적인 지원을 제대로만 한다면 의사들은 언제든지 나설 수 있다. 그 지원조차 하지 않으면서 의사만 늘리겠다고 하는 것은 적반하장 정책이 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